“다시는 새미x 안 먹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직도 가끔 먹어. 그 집 알탕”
익숙한 식당 이름이 나오자 자리에 함께한 동기들이 모두 자지러진다. 얼마 전 고대신문사 제작부장 출신 허성태(토목환경과 02학번) 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혜윤씨에게 질문이 쏟아진다. 기현씨는 기자들 간 연애사가 생생한지 신이 난 목소리로 그 시절을 추억한다. “그때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해서 신문사에 암실이 있었어요. 혼자 현상을 해도 되는데 자꾸 둘이 들어가는거야. 그러면 100%였죠” 낯선 단어에 기자의 고개만 갸웃할 뿐 그들은 그 시절 그들만의 추억으로 즐거워보인다. 2003년 5월에 고대신문에 들어와 어느덧 10년차 후배기자를 맞는 고대신문사 0305기수를 만났다.

왼쪽부터 김기현(대학원·산업경영공학과), 이승은(국어국문학과 03학번), 최세아(문예창작학과 03학번),박혜윤(생명정보공학과 03학번), 박설수(대학원·정치외교학과), 조민아(영어교육학과 03학번), 곽래건(언론학부 03학번).

10년 사이 신문사도 많이 변했다. 당시엔 국장만 사용할 수 있었던 최신식 디지털카메라는 더 이상 출시되지도 않는 ‘유물’이 됐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교내소식을 취재하던 스무살 청춘은 가정과 사회에 자신의 기반을 닦는다는 서른살 이립(而立)을 앞두고 있다. 이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스무 살 자신의 기사는 무엇이었을까.
래건 씨는 자신의 기사보다 타인의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동거에 대한 본교인의 인식을 물었던 기사가 기억나요. 직접 쓴 기사는 아니었지만 설문조사를 맡아 열심히 뛰어다녔죠. 당시 40%정도의 학생이 동거를 가족의 형태로 받아들인다는 결과가 충격적이었는지 다른 언론에도 인용되어 놀랐어요.”

기자로 참여한 고연전의 기억도 혜윤씨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때는 고파스가 없어서 고대신문사이트인 쿠키에서 고연전 실시간 야구중계를 했어요. 중계를 제가 맡아서 했는데 야구룰을 잘 몰랐거든요. 그래서 일대영입니다. 이대일입니다. 하는 식으로 중계를 했다가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나네요.”

신문사 출신이라고 다 언론계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0305기수 중 언론인이 된 사람은 한 명 뿐이다. 0305동기들은 사무관부터 극작가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직업은 달라도 고대신문 활동은 그들에게 중요한 그 무언가를 남겼다.

유일하게 기자가 된 래건씨는 ‘인연’에 주안을 뒀다. “학보사 기자로 만날 때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성공한 사람들도 있어요. 우연찮게 일 때문에 그분들과 재회하면 저에게 성공한 뒤 만난 사람들보다 훨씬 잘해주세요. 지금이야 성공했지만 처음 만났을 때는 둘 다 아무것도 아닌 학생이었을 때니까 서로 특별하다고 느끼죠.”

10년째 안암을 누비게 될 줄은 몰랐다는 기현 씨는 삶의 태도를 이야기했다. “사물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특별한 사람들을 취재하다보니 남들이 모르는 분야도 많이 알게 되고, 저도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것을 겁내지 않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학부에서는 경영정보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는 산업경영공학을 전공하게 됐죠”
“그런데 정말 신문사 일 힘들지 않았니? 왜 지원했나 몰라” 하는 한 동기의 말에 너도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10년 전의 당찬 포부는 세월 앞에 희미해지지만 그들의 고대신문 추억담은 세월이 흐를수록 빛난다. 이들의 10년지기 후배가 될 마음이 생겼다면 설령 거침없이 면접관을 사로잡을 포부가 없어도 괜찮다. 세월이 흘러도 빛나는 추억을 만들 준비가 되었다면 고대신문의 문은 항상 열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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