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아우르는 삶의 가치가 담긴 카뮈의 문학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게 읽혀진다. 일상의 버거움에 매몰돼 소중한 청춘을 허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카뮈의 사상이 시사하는 바는 더욱 크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화영 명예교수의 자문을 바탕으로 <이방인>에 담긴 부조리사상에 담긴 삶의 가치를 살펴봤다.

거짓말하는 세계 속 정직한 이방인
“뫼르소는 판사들이나 사회의 법칙이나 판에 박힌 감정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 존재합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소설 <이방인>은 모친의 죽음을 담담히 서술하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픔, 안타까움 등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감정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의미가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다소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고 말한다.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의 불어판 표지. 주인공 뫼르소의 고독한 모습이 나타나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주인공 뫼르소는 ‘이상한’ 인간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뫼르소의 심리적 공허는 그를 비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뫼르소의 본질은 ‘모든 가식과 거짓을 배제한 정직함의 결정체’에 있다. 부모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 있는 사람은 오히려 소설 속 그의 반응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안다. 부모의 죽음과 직면한 사람은 장례식을 끝내는 순간까지 슬픔을 잘 느끼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일상 속에서 그의 빈자리를 절절히 느낀 후에야 상실감은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스며든다.

뫼르소는 연인과의 대화에서조차 정직하다. 자신을 사랑하느냐는 연인의 질문에 그는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대답한다. 이는 어쩌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우리’의 정직한 감정이다. 카뮈는 뫼르소를 통해 ‘한 사람에 대한 영원한 사랑’이 어쩌면 사회적 거짓말이 만들어 낸 허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뫼르소가 추구하는 진실은 작품의 마지막, 재판의 현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재판장은 솔직한 감정이 사라진 ‘연극적 사회’가 극단적으로 집약된 공간이다. 또한 판사가 법복을 입고 앉아 있고, 변호사와 검사가 각자의 역할에 맞게 대사를 하며 배심원이 등장하는 재판의 구조는 연극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듯 연출된 재판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이라고 항변하면 충분히 감형될 여지가 있는데도 뫼르소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온 몸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방인>에서는 위선이 지배하는 연극적 사회와 진실을 추구하는 개인이 상반된다. 다시 말해 연극적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겉도는 개인, 즉 ‘이방인’을 통해 이러한 이원적 구조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죽음’이란 부조리를 매순간 상기하라
“나는 보기에는 맨 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부조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기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대상이다. <이방인>에서 부조리는 죽음으로 암시된다. 죽음은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경험할 수 없기에 실체를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라는 것이다. 작품 속에는 △어머니의 죽음 △뫼르소의 살인 △뫼르소의 사형 등 세 가지의 죽음이 나타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죽음은 마지막 ‘뫼르소의 사형’이다. 재판이라는 연극적 의식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은 뫼르소는 감옥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과 진지하게 대면한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고 역설한다. 죽음의 바람 속에서 삶의 모든 것이 무가치해 보이는 허무를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뫼르소는 자포자기 상태에만 빠져 있지 않는다. 오히려 사형당하는 날 아침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라고 말하며 죽음과 당당히 맞선다. 이를 통해 카뮈는 극단적인 부조리인 죽음 앞에서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확인할 때, 삶이 비로소 가치를 획득함을 보여준다.

<이방인>의 소재는 죽음이지만 궁극적인 주제는 삶의 행복이다. 언젠가 삶이 끝난다는 사실은 의식하는 순간, 인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가던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 때문에 카뮈는 인간이 ‘죽음’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을 비판했다. 특히 그는 사후세계의 존재를 인정하는 종교를 도피의 한 형태로 보았다. 이는 뫼르소가 사형당하기 직전 신부에게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결국 카뮈가 <이방인>을 통해 부르짖는 것은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을 가진 인간이 노래하는 삶의 경이로움이다. 삶의 유한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방인>에 담긴 카뮈의 외침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이렇게 외칠 것이다. 더욱 진실 하라. 더욱 치열하라. 더욱 감사하라. 언젠가 끝이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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