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첫 주는 정신없는 일주일이었다. 채워지지 않은 시간표는 수강정정 때마다 끈질기게 괴롭혔고, 갑자기 밀려드는 해야 할 일들에 정신을 차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래도 무사히 개강했음을 ‘자축’하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평소에는 매워서 반도 제대로 못 먹고 남기는 매운 갈비찜을 먹었는데, 그날은 남김없이 다 먹고도 전혀 맵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곰곰이 돌이켜보니 지난 일주일 내내 매운 음식을 달고 살았었다. 매운 냉면, 매운 갈비, 매운 떡볶이까지. 요즘 내 식생활에서 맵지 않은 음식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비단 매운 음식뿐만이 아니다. 커피를 마실 때도 좀 더 진한 커피를 찾았고, 게다가 진한 커피 위에는 단 카라멜 소스를 돈까지 더 줘가며 추가해서 먹곤 했다. 아침은 거르기 일쑤였고, 빠듯한 아침 등굣길엔 밥 대신 초콜렛을 챙겼다.

점점 자극적인 것에 무뎌지고 있다. 포탈의 뉴스 메인 기사에 ‘살인’, ‘성범죄’ 등의 키워드는 이미 꽤 익숙한 단골손님이다. 어제 봤던 사건에 놀란 마음을 진정하기도 전에 더 심한 사건이 뉴스에 등장한다. 기사의 내용은 갈수록 경악스러워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점점 무뎌진다. 이에 헤드라인은 점점 더 노골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한다. 세상이 흉흉하다고 하고 넘기기엔 불편한 구석이 너무 많다.

매운 갈비찜을 잔뜩 먹고 집에 돌아왔다. 식탁을 보니 저녁 때 먹고 남은 두부 부침이 보였다. 정말 두부만 부친 반찬이라 평소에는 손이 잘 가지 않던 반찬이었다. 문득 매운 갈비찜으로 가득할 내 속이 안쓰러웠다. 외투도 벗지 않고 젓가락을 꺼내와 두부를 먹었다. 예상했던 대로 싱겁고 밍밍했다. 두부를 씹으며 매운 음식들로 익숙해져버린 입맛을 되찾는 건 하루 이틀 해서 될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두부를 먹다보니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그래도 ‘매운 맛’만 맛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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