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강의실에 하얗게 샌 머리와 주름진 얼굴을 한 학생을 만나긴 쉽지 않다. 그 학생이 한국말이 어눌하고 글씨가 삐뚤빼뚤한 외국인 학생이라면 더 그렇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노후를 준비할 나이에 꿈을 좇아 한국을 찾은 학생이 있다. 일본에서 온 63세 칸노 시게루(菅野 滋) 씨와 호주에서 온 54세 러셀 켈리(Russell Kelly) 씨는 한국과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본교에 온 늦깎이 대학생이다. “한국 드라마가 좋아서 왔다”는 칸노 씨와 “고대잠바를 매일 챙겨 입는다”는 러셀 씨를 만나 한국을 찾은 이유와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왼쪽부터 칸노 시게루 씨, 러셀 켈리 씨

칸노 시게루(菅野 滋) 인터뷰
63세의 칸노 시게루(菅野 滋) 씨는 젊은 시절부터 다녔던 직장생활을 마치고 평소 좋아하던 역사를 진지하게 공부하고자 사이타마(埼玉大学) 대학교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자식들 모두 독립하고 4년 전 부인과 사별하면서 조금은 쉽게 대학 진학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전공한 그는 한국드라마, 특히 사극을 좋아해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져 지난해 2학기 본교에 발을 디뎠다. “사이타마 대학교와 협정교인 고려대를 선택하게 됐어요. 이번 학기가 고려대에서 보내는 마지막 학기에요”

이번 학기, 칸노 씨는 한국어로 진행되는 일반 전공이나 교양을 듣는다. 한국어 듣기 실력을 키우려고 도전했지만 어려움도 많다. “<한국 전통문화의 이해>, <동아시아 속에서 한국과 일본> 등 한국어 강의를 선택했어요. 아직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수업시간에 질문을 받으면 많이 곤란해요. 수강정정을 해서 청강을 할까 고민 중이에요(웃음)” 한국과 일본 관계를 다루는 ‘동아시아 속에서 한국과 일본’ 수업에선 일본에서 배우던 것과 다른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담당 교수님이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학한 경험이 있어 일본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는데도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았어요. 두 나라가 역사적으로 가까운데도 서로를 무시한다는 것, 일본사람은 여름 내내 유카타나 훈도시를 입는데 한국 사람들이 그걸 야만스럽다고 생각한다는 것 등이 그랬죠”

손자뻘인 젊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수업 옆 자리 한국인 학생과 친해지면서 활기를 얻기도 한다. “사이타마 대학교를 다니면서 이미 젊은 친구들과 수업을 듣는 게 익숙해져서 학생들을 보면 다들 자식, 손자 같은 느낌이 들어요”

두 학기 동안 고려대 학생으로 지낸 칸노 씨는 막걸리 문화나 고연전 같은 고려대만의 문화도 경험했다. “지난 학기 고연전 야구를 보러 가서 학생들과 함께 응원을 했어요. 재미있었지만 계속 부딪혀서 넘어 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었죠(웃음)”

이번 학기를 마치면 칸노 씨는 다시 일본 사이타마 대학교로 돌아가 졸업을 준비한다. 그는 졸업 후에도 석사학위 취득을 위해 계속 공부할 계획이다. 한국에 다시 오고 싶지만 88세 어머니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그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언젠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글 쓰는 일을 할 것 같아요.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고 싶을 만큼 한국이 좋거든요”

러셀 켈리(Russell Kelly) 인터뷰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러셀 켈리(Russell Kelly) 씨는 2007년 직장을 관두고 홈스테이를 시작했다. 시작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었다. 그러던 중 2010년 5명의 한국인 여학생들이 그의 집을 찾았다. “한국인 여학생들이 제 홈스테이를 방문했는데 굉장히 발랄하고 긍정적이어서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러셀 씨의 인생 후반부를 송두리 째 바꿔놓은 ‘Korean Angels’와의 만남이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아무 관련이 없던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한국에서 영어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피스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피스 대학에서 <세계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퀸즈랜드 대학교에서 <한국 언어와 역사>를 배웠어요. 그러다 한국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교환학생을 결심했어요” 자식 3명이 모두 독립하고 부인과 이혼한 그는 자유롭게 해외로 교환학생을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피스 대학교와 협정을 맺은 한국 대학교 중 <한국 역사와 문화> 관련 수업이 개설된 대학교는 몇 없었다. “교환학생으로 갈 수 있는 학교 목록을 ‘Korean Angels’에게 메신저를 통해 알려주니 고려대를 적극 추천하더군요. 저와 고려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러셀 씨는 이번 학기 <Korean History> 수업과 교환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어 수업(speaking korean introduction)>을 듣는다. “Korean History는 1945년부터 1976년 사이의 한국 역사 변화를 영어로 배워서 전혀 힘들지 않고 흥미로워요. 하지만 한국어 수업은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한국말만 해서 너무 어렵다고 느껴져요” 언어적인 문제 외에도 어려움은 있다. “학교 내에서 편하게 친구를 사귀는 게 쉽지 않아요. KUBA 6조에서 조원들과 많이 친해졌지만 나이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어린 학생들이 나를 ‘친구’보다 ‘어른’으로 대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고려대 학생으로 3주째 지내고 있지만 고려대를 향한 러셀 씨의 애정은 남다르다. 그는 고잠은 물론 고려대 티셔츠, 고려대 후드티도 즐겨 입는다. “이번 5월 입실렌티 등 가능한 모든 걸 경험해 보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막걸리처럼 너무 마음에 드는 게 생길 수 있겠죠”

교사가 꿈인 러셀 씨는 이번 학기를 마치고 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다시 호주로 돌아간다. 자격증을 따고 빨리 한국으로 오고 싶다는 그는 새로 시작한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가능한 빨리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꿈을 펼치고 싶어요. As soon as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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