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원식(이과대 물리학과) 교수 (사진=김연광 기자)
29일 신법학관에서 학문소통연구회 제 41차 워크숍이 열렸다. 이번 워크숍은 <심리학과 문학, 물리학과 의학의 설레는 만남>이라는 대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학제간 교류의 장이 되었다. 첫 번째로 강단에 선 남기춘(문과대 심리학과) 교수의 ‘인지신경과학 연구’에 대해 영어교육학자, 의학자, 어학자 등이 열띤 논쟁을 벌였다. 또한 최원식(이과대 물리학과) 교수의 ‘무질서를 넘어서:물리학과 의학의 만남 연구’에 대해선 반도체 공학자, 의학자 등이 실현가능성, 연구방법론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의학은 물리학을 만나면서 혁신을 경험했다. 뢴트겐이 발견한 엑스레이는 CT(컴퓨터 단층촬영) 개발의 단초가 됐고, 라비가 발견한 핵자기공명 현상은 MRI(자기공명영상)에 응용돼 체내의 숨은 질병을 잡아내도록 했다. 이처럼 물리학의 발견은 의학에 적용되며 의료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두 번째 주제 ‘물리학과 의학의 만남’에서 연사로 나선 최원식 교수(이과대 물리학과)는 간유리를 이용해 피부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최근의 연구성과를 밝히며 미래에 물리학이 어떻게 의학에 이바지할지를 전망했다.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
우리는 튼튼한 보디빌더의 팔을 보고 근육이 잘 단련됐다고 감탄한다. 하지만 우리는 피부 속의 근육세포는 보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간유리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간유리는 유리표면을 무질서하게 간 불투명 유리로, 잘 연마된 유리와 달리 빛을 있는 그대로 투과시키지 못한다. 사람의 피부도 마찬가지다. 굉장히 많은 세포들이 불규칙적으로 존재하기에 빛이 투과되지 못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그럼에도 내시경, CT등의 기술로 무질서함 속에서 질서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이 볼수록 해상도가 낮아지는 점과 빛의 투과거리가 길수록 투과도가 하락하는 난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더 깊이, 세포 하나까지 자세히 볼 수 있으면서도 높은 해상도와 투과도를 지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관련 연구의 중요한 목표다.

연구1 : 무질서 너머의 물체를 알아내다
▲ 물체를 불투명하게 보이게 하는 간유리

카메라를 이용해 물체를 찍으면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선명한 화면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에 간유리를 덧댄다면 어떻게 될까? 불규칙한 간유리 표면에서 빛이 여러 갈래로 반사돼 마치 텔레비전 조정화면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화면이 나온다. 두 개의 잘 연마된 카메라 렌즈는 물체에서 반사된 빛을 카메라의 화소에 일대일 대응시켜 화면을 표현한다. 그런데 간유리를 덧대면 물체의 한 점에서 반사된 빛이 다양하게 산란돼 카메라의 여러 화소에 대응케 된다. 카메라가 이른바 ‘고장난 복사기’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고장난 복사기를 고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피사체에서 반사된 빛이 어떻게 분산되는지를 기록해 역으로 빛의 경로를 추정해보는 방법이 있다. 이 과정을 실험으로 구현한 결과 이미지를 원래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간단한 줄무늬 모양의 이미지부터 쥐의 배에 있는 피부세포까지 복원한 것이다. 이 연구성과는 외국저널에 ‘피부도 렌즈가 될 수 있다’는 재미있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연구2 : 상상을 뛰어넘는 가느다란 내시경
현재 대다수의 내시경 검사는 광섬유 한 다발을 묶어 이용하지만 광섬유 다발이 두꺼워 환자가 불편을 느끼는 한계가 있다. 그러면 광섬유 한 가닥으로 내시경을 만든다면 어떨까? 가느다란 광섬유는 체내에 집어넣는 과정에서 굴절돼 빛이 여러 번 반사돼 정보가 왜곡되는 단점이 있다. 이번에는 광섬유가 간유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빛이 광섬유를 왕복해 두 번이나 왜곡되는 난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돌아가는 거울을 빛이 입사되는 경로에 놓았다. 거울을 돌리며 얻은, 레이저가 반사되는 다양한 샘플들을 카메라로 기록해 형상을 복원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처음 입사한 빛이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왜곡됐기 때문에 복원한 형상들을 합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얻은 화면을 광섬유의 각도를 틀며 다양하게 촬영한 화면들과 짜 맞춰 얻고자 하는 전체 화면을 유도할 수 있다. 쥐 소장에 있는 융털도 이와 같은 기법으로 선명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연구3 : 무질서 너머로 빛에너지를 전파하다
호수에 돌 두 개를 동시에 던져보자. 두 구면파가 생기며 만나는 경계면이 어떤 부분은 볼록하게 올라오고, 어떤 부분은 오목하게 내려옴을 관찰할 수 있다. 두 구면파가 동시에 올라가는 부분에서 간섭돼 세기가 증가하는 경우를 보강간섭이라고 한다. 사진을 찍는 활동에 비유하면, 카메라 화면을 수면이라고 가정할 때 여러 레이저에서 나온 빛이 카메라에 도달하는 것은 돌을 여러 개 던지는 것과 같다. 일반적으로는 파동이 일정하게 간섭되지 않아 보강간섭과 반대의 경우가 마구 섞여있지만, 첫 번째 레이저를 입사한 후 나머지 레이저를 그에 맞게 보강간섭 되도록 조정하고, 나머지도 이와 같은 방식을 취한다면 에너지를 증가시킬 수 있다. 이 원리를 간유리를 이용한 실험에 적용한다면 특정 간유리의 특성을 파악해 어떤 형태의 빛을 입사할 때 투과가 잘 되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즉, 여러 형태의 빛을 쏘여 다양한 샘플을 모아 원하는 형태와 세기로 투과되는 경우를 골라 쓸 수 있는 것이다.

실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김일환(의과대 의학과) 교수는 “발상은 좋으나 범용성을 고려해 실용화 하도록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이에 최 교수는 “치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추가적인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양형진(과기대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과) 교수는 “투과율 개선 문제에 집중한 것도 좋지만 간유리 통과 패턴이 파장과 연관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논의를 마무리하며 “실용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것도 좋지만 위 연구들은 일종의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한 것인 만큼, 향후 연구의 의제를 설정한 것이 시사점”이라며 “빛을 이용해 피부 속을 깊이 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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