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가 되면 대학가에는 ‘책을 읽어야겠다’는 일념 하에 수많은 독서소모임과 독서토론동아리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꾸준히처음의 다짐을 유지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랫동안 독특한 운영방식과 신념으로 독서모임을 이어나가는 동아리들을 고대신문이 만났다.


54년 전통의 ‘자운영(紫雲英)’
무려 50년 이상의 전통을 이어가는 독서토론동아리가 있다. 종로YMCA산하 대학연합 독서토론동아리인 ‘자운영(紫雲英)’이다. 50년 동안 흘러온 자운영의 전통에는책을 통해 인생의 답을 얻고자 했던 학생들의 열정이 녹아있다.

자운영 회장 손재호(경희대 영어학부06)씨는 오랜 시간 동아리를 유지 할 수 있는비결로 ‘잘 잡힌 운영체계’를 꼽았다. “회장단을 중심으로 총무부, 홍보부, 편집부, 정보부 등으로 체계가 잘 잡혀 있어요. 그리고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가 오랫동안 잘 전수되어 다른 동아리에 비해 오랜 시간 전통을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운영은 한 학기 동안 읽을 책을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연구부에서 편중되지 않게 소설, 과학, 역사, 종교, 사회분야로 골고루 나눠 매주 토론할 책들을 지정한다. 토론은 해당 책을 맡은 사회자와 보조자가 발제를 하여 진행한다. 토론은 철저히 책에 대한 내용으로 이뤄지며가장 이슈가 될 만한 사항을 가지고 진행한다. “예를 들면,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같은 책의 경우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하는가 유지되어야 하는가?’와 같이 큰 쟁점이 될 발제로만 진행합니다. 개인적 느낌이나 생각 등은 가급적 지양하는 편이에요” 쟁점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 것이 비판의식과 사고를 키워주긴 하지만 때로는 갈등도 발생한다.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다보니 때론 회원들 사이에 감정이 상할 때도있어요. 그 만큼 쟁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뚜렷하다는 증거겠죠?”

소규모 독서토론소모임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조범연(정통대 컴공08) 씨 외 6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독서토론소모임에는 이름이 없다. 그 어떠한 형식도 규칙도 없다. 그들은 사람의 생각을 단순히 공유하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조금씩 쌓아가는 ‘채움’을 목적으로 한다. 매주 일요일 저녁 학교 스터디 룸에 모여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토론을 진행하는 이 소모임은 특별히 책을 지정하지 않는다. 모임원들이 추천한 책을 다수결의 방식으로 선정한다. 토론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논점과 쟁점을 가지고 토론하기도 하지만 주로서로가 느낀 생각을 바탕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고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현상을 각자의 전공에 맞춰 이야기했던 적이 있어요. 과학 외의 분야에책 내용이 적용되는 것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요”

조 씨는 이 소모임이 독서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서로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하는 생각공동체로서 책을 읽고 모여 토론하는데서그치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새로운 장(場)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 읽는 소모임 ‘도막’
성공회대 동아리 ‘도막’은 시 낭독 소모임은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도막’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정해진 시집을 읽고,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주제는 따로 없다. 서로의 생각을 듣고 공감을 하기도, 비판을 하기도 한다. ‘도막’의 일원인 송혜련(성공회대 일어일본학12) 씨는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까지 숨김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도막’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저희는 낭독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해요. 구질구질했던 연애사,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기뻤던 날들, 떠올리기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날들…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책이란 매개를 통해 끌어올리는 거죠”

책을 읽고 책 속의 쟁점에 대해서만 토론을 하는 것을 넘어 책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웃을 수 있는 것이 ‘도막’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서로의 연애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동아리 회장오빠가 힘들었던 연애사를 풀어 놨어요. 들을 때는 되게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시 시를 읽어보니 시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독서와 독서 후 토론 활동에 생기가 넘치는 이유는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송 씨는 ‘도막’의 목표가 독서를 통한 지식습득이나, 세상에 대한 시야 확보 같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거창한 목표나 목적은 없어요. 책에 공감하고, 서로의 경험에 마음이 동했다면 저희의목적은 달성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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