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 의거 63주년]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고대인을 하나로 묶어준 4.18정신은 본교의 자부심이자 상징과도 같다.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그 표현 방식엔 다소 변화가 생겼지만 4.18을 기리는 고대인의 마음은 한결 같았다.


  4.18 의거가 일어난지 64년이 지났다. 민주주의를 열망한 선배들의 정신은 거리를 붉게 물들이는 구국대장정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학교 정문으로부터 수유동 4.19 국립묘지까지 그 길을 내달렸던 수많은 발자국 속에는 재학 중에 세 번을 참가한 학생도 있었다. 최두권(농업경제학과 68학번) 씨를 만나 40여 년 전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 씨는 1969, 70, 74년 4.18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그가 처음 출전한 1969년은 4.18마라톤대회가 처음으로 열린 해이기도 하다. 당시 대학가는 추모식만 여는 등 조용히 4.19를 기념하는 분위기였다. 본교를 비롯해 서울대, 연세대 등의 대학만 학술대회와 강연회 등의 부대행사를 열었다. 4.19기념 마라톤대회를 연 것은 본교가 처음이다. 최 씨는 “선배와 친구들 모두 4.19 혁명을 본교생이 주도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대학생의 시위가 한창 격렬했던 때였지만 40년 전의 마라톤 대회 분위기는 흥겨웠다. 요즘처럼 궐기대회도 없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거나 학교에 대한 성토도 없었다. 학생의 격한 시위를 경계하는 경찰의 감시도 없었고 오히려 수유동까지 달리도록 도로를 터줬다. 그래서인지 마라톤 대회에선 체육대회의 분위기가 풍겼다. 주민들까지 거리로 나와 박수를 치며 뛰는 고대생을 응원했다.

  강의실의 모습은 지금과 비슷했다. 4월 18일, 휴강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수업에 빠지는 학생이 많아 강의는 느슨하게 진행됐다. 행사 당일, 마라톤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내에서 진행된 강연회에서는 1960년 4.18 시위에 참여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기회도 있었다. 최 씨는 “시위 당시 사회의 분위기, 경험담 등을 들을 수 있어 많은 친구들이 강연에 참석했다”고 회상했다.

  오늘날 본교생은 4.18마라톤 행사에서 간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지만 당시엔 대부분의 학생이 달리기를 위한 마라톤 복장을 착용했다. 최 씨는 “나도 체육용품점에서 민소매와 짧은 반바지를 구입해 경기에 나섰다”고 말했다. 온몸에 달라붙는 마라톤 전용 유니폼을 갖춰 입고 머리에 흰 띠를 두르는 등 열의를 불태운 일부 참가자는 잠깐이라도 1등을 해보려는 욕심에 출발하자마자 전력으로 달려 나가기도 했다.

  그는 “지금의 중앙광장인 당시 대운동장을 출발해 위령탑을 돌아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18km코스인 만큼 페이스조절이 필요한데, 젊음의 패기로 일찌감치 치고나가다가 쳐지는 친구들이 부지기수였다”고 말했다. 그에게 미아삼거리는 늘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느끼는 구간이었지만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를 생각하자 자신도 모를 힘이 났다. 그 여자친구는 이듬해 아내가 되어 그때의 추억을 함께 해 오고 있다. 최 씨는 2학년이었던 1969년 2위, 3학년이었던 1970년 1위(1시간 12분), 군 제대 후 4학년 때인 1974년 4·18마라톤 대회에서 1위(1시간 6분)를 차지했다. 그는 “김상협 총장에게 우승트로피를 받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4.18 마라톤 우승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최두권 씨에게 뿌듯한 기억, 학교에 대한 애교심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기억하는 4.18 마라톤은 독재에 저항한 선배들의 강인한 정신력을 후배들이 마라톤으로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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