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와벌>(1866)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오만한 인간이 벌을 받고 구원을 갈구하는 모습을 통해  낮은 자세의 의미를 조명했다. 그의 작품에서 ‘오만’은 인간적 한계를 뛰어넘고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초인사상’으로 나타난다. 또한 주인공은 오만의 대가로 벌을 받으며, 고통과 후회의 과정을 거쳐 구원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5대 장편소설 중 <죄와 벌>, <백치>, <악령>은 ‘구원의 모티프’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죄와 벌>에서는 ‘고통’에 의한 인간의 구원이 드러난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의 재산을 더욱 선량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사회 정의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도끼로 노파를 살해한다. 이는 인간이 생명을 관장하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극단적 오만을 상징한다. 결국 라스콜리니코프는 오만에 대한 벌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는다. 그는 범행 이후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끝에 자수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통을 수용하려는 적극적 의지는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한편 도스토예프스키는 오만의 상대적 개념으로 겸손한 자세를 상정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예수의 수난과 같이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이고 소냐와의 사랑으로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워 구원의 길로 나아간다.

▲ <백치>(1869)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에서 선한 주인공을 통해 공동체를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후일 <백치>를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 관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주인공 므이쉬킨은 타인에 대한 연민, 겸손 등 전형적인 그리스도의 속성을 지닌 선의 결정체로 묘사됐다. 므이쉬킨의 연민은 나스타샤와의 사랑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이글라야를 사랑하고 있지만 동시에 나스타샤를 순수한 연민의 감정으로 사랑한다. 또한 그는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타인을 우선시하는 겸허한 인물이다. 이렇듯 선의 결정체인 므이쉬킨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회 안에서 ‘백치’로 비춰진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 <백치>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연민, 겸손 등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의 이상이 세상을 구원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다.




▲ <악령>(1872)
<악령>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봉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인물들이 나타나 있다. 주인공 스타브로긴은 악인의 전형이다. 일례로 그는 신의 존재를 믿는 키릴로프에게 ‘인간이 신이다’라고 말하고, 신의 존재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던 샤토프에게는 ‘신이 있다’라고 말해 그들의 정신세계를 무질서하게 만든다. 이러한 그의 비정상적인 행동 때문에 주변 인물들은 하나하나 파멸해간다. 문제는 스타브로긴이 자신의 악행에 대해 죄의식이나 정신적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죄와 벌>에서 고통의 수용을 통해 구원을 얻은 라스콜리니코프와의 차이점이다. 타인의 삶과 파멸을 주재하는 신의 권한에 도전했으나 인간적 장벽에 막혀 좌절한 스타브로긴은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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