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사 앞마당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한 공양간. 장독대가 줄지어 늘어서있는 좁은 길을 따라가면 조촐한 공양간이 나온다. 5월 10일 오전 9시 4월 초하루를 맞아 공양주보살 김현순, 강명숙 씨는 제사준비에 여념이 없다. 대웅전은 물론 아미타전, 삼성각, 산신각 등 법당 안의 모든 부처와 보살에게 올릴 공양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정성스레 꼭꼭 눌러 담은 밥을 금빛 제기에 담아 덮개로 덮는다. 제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누구도 덮개를 열 수 없다. 오늘은 미역국과 콩나물무침, 호박나물에 봄을 맞아 취나물무침을 준비했다. 부처님께 올릴 마지공양을 나른 뒤 부엌의 신인 조왕신께 올릴 공양도 준비한다. 탱화로 그려진 조왕신은 음식의 맛을 지키고 건강과 무병장수를 보살펴준다고 한다.

잡채와 배추전 간장과 참기름 만으로 간을 맞춘 잡채. 재료도 많이 넣지 않아 꼬들꼬들한 당면의 질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배추전을 부치는 데에는 배추와 밀가루, 소금, 물만 있으면 된다. 계란옷까지 입힌 부침개와는 다른 소박한 맛이 일품이다.

  두 분을 도와 함께 잡채를 만들었다. 집에서 하던 방법대로 요리하지만 재료가 훨씬 적다. 도심의 사찰이라 그런지 시중에서 파는 장(醬)을 사용했다. 개운사엔 스님이 많지 않고,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는 지역 어르신이 공양간을 더 많이 찾기 때문에 음식이 다른 사찰음식보다 맛이 강한 편이었다. 나물에 다진 마늘을 넣고, 잡채에 부추를 넣어 버무렸다.

  강명숙 씨는 “어르신들이 간이 안 맞다고 안 드시는 경우가 많아서 오신채를 약간 쓴다”고 말했다. 그래도 적은 양을 넣어서인지 채소를 볶을 때 음식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오늘 국은 미역국이다. 커다란 솥 하나엔 미역을 삶고 다른 솥에는 물을 한가득 끓였다.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자 커다란 다시마 조각을 꺼내 넣었다. 그때 명숙 씨가 말린 멸치를 헝겊주머니에 한주먹 넣어 국 솥에 담갔다.

취나물 무침 향긋하면서도 쌉싸름한 취나물은 무치기도 쉽다. 취나물은 콜레스테롤을 머위무침과 연잎밥 낮춰주고 머리를 맑게 해 수행자는 물론 학생에게도 안성맞춤이다.

  평소 집에서 끓이는 조개미역국이나 쇠고기미역국에는 비릿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늘을 넣는데, 비린내를 풍기는 재료가 없으니 향이 강한 조미료도 넣지 않았다. 소금을 한 숟가락 떠 넣을 뿐이었다. 뼈가 약한 노인들이 먹기엔 멸치를 우려낸 육수가 맞을 듯 했다. 절을 옮겨가며 수행하는 스님들은 일반인의 입맛을 맞추는 이곳의 음식을 입에 맞지 않아 하기도 한다. 강명숙 씨는 “조미료를 많이 넣지는 않지만 입에 안 맞는 스님을 위해 젓갈을 넣지 않은 김치와 일반 방문객을 위한 김치를 따로 담근다”고 말했다.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지는 않아도 공양간은 식당 특유의 코를 사로잡는 음식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곳이었다. 자비롭고 은은한 밥 한 공기의 내음이 이웃들의 발걸음을 향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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