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레 꼭꼭 눌러 담은 밥을 금빛 제기에 담아 덮개로 덮는다. 제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누구도 덮개를 열 수 없다. 오늘은 미역국과 콩나물무침, 호박나물에 봄을 맞아 취나물무침을 준비했다. 부처님께 올릴 마지공양을 나른 뒤 부엌의 신인 조왕신께 올릴 공양도 준비한다. 탱화로 그려진 조왕신은 음식의 맛을 지키고 건강과 무병장수를 보살펴준다고 한다.
두 분을 도와 함께 잡채를 만들었다. 집에서 하던 방법대로 요리하지만 재료가 훨씬 적다. 도심의 사찰이라 그런지 시중에서 파는 장(醬)을 사용했다. 개운사엔 스님이 많지 않고,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는 지역 어르신이 공양간을 더 많이 찾기 때문에 음식이 다른 사찰음식보다 맛이 강한 편이었다. 나물에 다진 마늘을 넣고, 잡채에 부추를 넣어 버무렸다.
강명숙 씨는 “어르신들이 간이 안 맞다고 안 드시는 경우가 많아서 오신채를 약간 쓴다”고 말했다. 그래도 적은 양을 넣어서인지 채소를 볶을 때 음식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오늘 국은 미역국이다. 커다란 솥 하나엔 미역을 삶고 다른 솥에는 물을 한가득 끓였다.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자 커다란 다시마 조각을 꺼내 넣었다. 그때 명숙 씨가 말린 멸치를 헝겊주머니에 한주먹 넣어 국 솥에 담갔다.
평소 집에서 끓이는 조개미역국이나 쇠고기미역국에는 비릿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늘을 넣는데, 비린내를 풍기는 재료가 없으니 향이 강한 조미료도 넣지 않았다. 소금을 한 숟가락 떠 넣을 뿐이었다. 뼈가 약한 노인들이 먹기엔 멸치를 우려낸 육수가 맞을 듯 했다. 절을 옮겨가며 수행하는 스님들은 일반인의 입맛을 맞추는 이곳의 음식을 입에 맞지 않아 하기도 한다. 강명숙 씨는 “조미료를 많이 넣지는 않지만 입에 안 맞는 스님을 위해 젓갈을 넣지 않은 김치와 일반 방문객을 위한 김치를 따로 담근다”고 말했다.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지는 않아도 공양간은 식당 특유의 코를 사로잡는 음식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곳이었다. 자비롭고 은은한 밥 한 공기의 내음이 이웃들의 발걸음을 향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