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벤트 기획동아리 KUSPA가 주최한 ‘If I die tomorrow(만약 내가 내일 죽음을 맞이한다면)’행사가 7일과 8일 민주 광장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죽음이 눈앞에 닥쳤을 때의 상황을 가정해 그 동안의 삶을 고찰하고 죽음과 진지하게 직면하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민주광장 앞에 설치된 대형 판넬에는 학생들이 익명으로 보내 온 여러 장의 유서가 전시됐다. 유서에는 죽음을 앞두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감사와 사과의 말이 주를 이뤘다. 평소 마음 속 말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솔직해졌다. 특히 ‘엄마 아빠,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는 거의 모든 유서에 빠지지 않는 문구였다. 평소 서먹하던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 학생도 있었다. “사랑하는 동생아. 사실 형은 너랑 멀어진 게 너무 싫었어.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 너와 서먹해진 것 같아 형도 고민이 많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좀 노력할걸 그랬다. 용서해라. 형이 못나서 그랬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던 박은식(문과대 한국사07) 씨는 “소중한 사람들을 놓치고 있지 않는지 계속 생각하며 살아야 겠다”고 감회를 밝혔다.

▲ 학생들이 민주 광장에 전시된 유서를 바라보고 있다.

  유서 속에는 생에 대한 미련도 자주 보였다. “아쉬움이 있다. 죽기 전 꼭 유명해지고 싶었다. 십 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반면 홀가분한 감정을 담은 유서도 있었다. 평소 우울증을 앓으며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는 한 학생의 유서는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죽음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여태껏 얼마나 죽기를 소망했던가. 여기 내 앞에 평온하게 누울 수 있는 길이 있다. 왜 마다하겠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던 이승민(보과대 방사선12) 씨는 “나도 한 때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며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려 하면서도 힘든 삶의 순간에서 도피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 유서 부스에서 학생들이 숙연한 표정으로 가상의 유서를 작성하고 있다.

  전시물 옆에는 직접 유서를 쓰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영상편지를 보낼 수 있는 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활기찬 민주광장에서도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분위기는 숙연했다. 저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전할 말을 고민하느라 말을 잃었다. 기자도 유서를 쓰고, 영상편지를 촬영했다. A4 한 장짜리 유서는 지난 삶에 대해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륜아(문과대 사학13) 씨는 “내 잘못으로 사이가 멀어진 초등학교 친구가 있었는데 계속 사과를 못하고 있다가 유서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며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늦기 전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 겠다”고 말했다. 

  영상편지는 흰 장막이 드리워진 부스 안에서 카메라를 보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기는 것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뒀다고 가정하고 카메라와 마주한 순간 관대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영원히 갈라놓는 ‘죽음’이란 강은 죽도록 미워한 사람도 용서하게 하는 힘이 있다. 양미지(문과대 인문13) 씨는 “이제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대한 것을 깊이 후회했다”며 “왜 사람은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코 앞에 가서야 타인에게 너그러워지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판넬 위에 적힌 문구. 제이메이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KUSPA는 힙합 가수 빈지노가 부른 동명의 노래에서 모티프를 얻어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If I die tomorrow’행사를 마련했다. KUSPA 회원 정지연(문과대 사학12) 씨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죽음과 삶을 모두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미국에서 온 로라(Laura) 씨는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온 뒤 ‘한국인들은 북한 때문에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미국인 친구들이 물을 때가 많은데 정작 한국인들은 죽음을 그리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서 부스 옆 방명록에는 한 학생이 적은 글귀가 기자의 가슴을 울렸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 열심히 살다가 만나러 갈게”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