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김연광 기자 kyk@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소장=이승환 교수)와 한국싸나톨로지협회(회장=전세일)가 4일 백주년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죽음의 질 향상을 위한 철학적 싸나톨로지’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싸나톨로지(임종학‧臨終學)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체들의 시각을 학술적으로 접근했다.

철학자와 사회학자의 죽음 탐구
죽음은 한 생명체가 ‘존재’에서 ‘비존재’로 변화하는 사건이다. 하지만 사람은 ‘육신생명’이 소멸해도 ‘정신생명’은 영속적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율적 선택으로 능동적으로 죽음에 다가설 수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이승환(문과대 철학과) 교수는 ‘죽음’과 ‘임종’을 키워드로 생명성과 인륜성의 진화방식에 대해 접근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화살이 아무리 과녁에 가까이 왔다고 해서 움직임이 멈춘 것이 아니듯, 사람의 생명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결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이 교수는 죽음에 ‘잘’ 다가서는 일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의 의지에 의한 능동적 사건이라고 평가하며 “불필요한 연명치료에 의해 육신생명이 수동적으로 연장되는 일은 능동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죽음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우리사회에서 터부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교수는  “사람들이 갖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과 달리, 정작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느끼는 공포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육체가 사라지기 때문이 아니라, 죽은 뒤에는 더 이상 삶의 목표를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적절한 진단 없이 막연히 죽음을 금기시하는 행동은 오히려 환자의 준비된 죽음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죽음이 예고된 환자에게 통증완화를 위한 치료를 넘어 인간적인 배려와 감정의 치유를 제공해 임종을 앞두고 자아 존중감을 잃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연사로 나선 천선영(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 시대의 죽음의 의미와 담론을 짚어냈다.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르고 무덤을 만들었던 인류의 행동 양식은 죽음에 의미를 부여했던 문화적 행위라는 것이다. 천 교수는 “인간이 무덤을 만들었던 것은 죽음의례의 실천을 통해 실존을 추구하게 됐음을 극적으로 알려주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천 교수는 “오늘날 병원 안에 장례식장이 존재하는 등 죽은 이의 안식공간과 산 사람이 죽은 이와 이별하는 공간이 겹치는 상황은 도구적 합리성이 우선시된 결과”라고 말했다.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문화의 척도임을 생각할 때 문화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론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천 교수는 “죽음에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시대에서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죽음에 적절하고 합당한 자리를 부여하는 일은 인간 삶의 문화적 기원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며 인간의 삶은 동물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근거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질적 차원에서 바라본 의사들
앞서 학제적 차원에서 죽음에 대해 논의했다면, 윤영호(서울대학교 의학과) 교수와 손명세(연세대학교 의학과) 교수는 죽음에 대한 사회정책과 사전의료의향서를 주제로 다뤄 실질적 차원에서 죽음을 조망했다.

  윤영호 교수는 임종환자와 가족에 대한 사회정책 방향에 대해 제언했다. 2009년 5월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에 대한 소송’에서 국내 최초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법원 판결이 이뤄져 우리나라에서도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었다. 그러나 4년여가 지난 지금도 관련법이 제정되지 않아 여전히 환자, 가족, 의료진 간의 분쟁의 소지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전체적인 사망률은 감소했으나 대부분 만성질환으로 사망하는 비율은 높아져 임종환자와 가족의 부담이 가중됐다. 윤 교수는 “과거 집에서 임종하던 환자들이 대부분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기에 연명치료가 늘어나고 있지만 하지만 호스피스, 완화의료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임종과정의 문제 또한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삶의 마무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이지만 과연 무엇이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인지에 대한 합의는 아직 요원한 상태”라고 말했다.

  손명세(연세대 의학과) 교수는 사전의료의향서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역설했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연명치료 상황에서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 연명치료의 가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문서다. 연명치료 상황에서 치료를 중단하는 일은 환자들이 회생불가능한 상태일 경우 종합적 판단과정에서 의사 1인 이상의 의학적 타당성이 담보된 판단과 환자의 명확한 의사표현이 필요하다는 조건하에 가능하다.

  손 교수는 “사전에 밝힌 치료에 관한 의사를 밝히는 주요 수단으로 사전의료의향서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연명치료에 관한 소송의 판결문에서 ‘환자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인한 고통을 받지 않으려면 의사와 상의하고 직접 사전의료지향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손 교수는 “사전의료의향서는 가치 있는 삶에 대한 평소의 소신을 반영해 불필요한 치료로 인한 고통을 피하고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작성자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유용한 문서”라고 강조했다.

환자 입장에서의 죽음
최일봉 제주한라병원 서귀포병원장은 전이 재발암의 실상과 환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바로잡는 내용의 발표를 진행했다. 최 원장은 “암은 특별한 병이 아닌 노화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노화가 진행되면 피부 탄력이 저하돼 주름이 생기고, 기억력은 감퇴하고 각종 면역기능이 삐걱댄다. 이 와중에 암세포가 활성화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모든 사람은 암세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암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노화로 인해 반드시 죽을 운명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평균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4%다.

  최 원장은 ‘아무런 문제없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 원장은 “혁명으로 인한 패자의 발생은 필연적이지만, 패배자의 숫자를 줄이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의료계에 새로운 혁명의 신호탄을 올린 안락사 시행에 대비해 새로운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암에 걸렸을 때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은 “남은 수명이 얼마냐”다. 하지만 의사가 임의로 내려주는 선고는 단순한 평균치일 뿐이다. 10명 중 8명이 3개월 내에 죽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나머지 2명이 된다면 시한부 선고는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실제로 미국 암 환자의 10%에서 70%가 영양 부족이고, 이 영양부족이 사망의 주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연구도 있다.

  신문에서는 암 환자가 10년 전인 2000년 대비 98.5% 증가했다고 보도하고 생명보험회사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있다며 대중들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노화하고, 암 발생 증가율의 주요 원인은 인구 고령화, 암진단 기술 발단, 조기 검진 활성화 등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 겁낼 필요는 없다. 최 원장은 “암 걸리면 죽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어 죽는 것이고, 암은 치료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절대로 겉으로 보이는 사실에 호도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최 원장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각 주체의 노력을 강조했다. “말기 암환자 문제는 의료인, 정부, 환자 모두가 관여하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대두되며 안락사 문제가 의료계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패자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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