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6일 오전 김남일 교수의 각가학설 수업을 듣고 있는 경희대학교 한의대 학생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아침, 경희대 한의과대학 건물은 1교시 수업을 분주하게 준비하는 학생들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동무관(東武館)’이라는 한자 명패가 달린 강의실의 문을 열자, 고전의학의 세계로 학생들을 안내할 김남일(경희대 한의학과)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수업은 ‘각가학설(各家學說)’로, 중국과 한국의 역대 의학유파와 그 대표적인 의가들의 학술사상을 다뤘다. 동의보감의 원문을 교재로 사용하며 중국 의학유파 사상가들의 학설과 함께 설명을 진행했다.

사람의 몸은 마치 한 나라와 같으니
‘즉병(卽病), 전경(專經), 울병(鬱病), 전경(傳經)….’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듯 한의학과 수업에서 한문으로 이뤄진 교재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동의보감은 이처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한자와 어려운 의학용어들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한자를 다루는 일이 한의학도들을 다른 대학생보다 독특하게 만드는 점이 아닐까. 하지만 수염이 성성한 한약방 주인이 쓸 법한 어려운 처방전만이 동의보감의 전부는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색다르고 풍부한 시각을 담고 있었다.

  “흔히들 차가운 바람에 많이 노출되면 냉병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동의보감에서는 침투한 냉기가 열로 바뀔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왜일까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몸에 있는 정기가 바깥의 찬 사기(邪氣‧병이 나게 하는 나쁜 기)와 투쟁을 하고, 그 과정에서 땀구멍이 막혀 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어 김 교수는 동의보감은 면대양증(面戴陽證)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람의 얼굴을 보고 증세를 판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깊은 통찰을 제시하고 있었다. “동의보감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경우, 뱃속에 심화 증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변을 소통하는 약재의 사용을 금해야 할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면대양은 뿌리가 없는 화증이 피부에 열기로 떠 있는 상태입니다. 맥이 약하고, 손과 발이 차가운 증세가 더해진다면 양기를 보충시키는 약재를 써야 합니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단순히 양기가 올라온 현상으로 여기지 않고, 깊은 원인을 분석해 역설적인 처방을 내린 것이다. 동의보감의 ‘사람의 몸은 마치 한 나라와 같다’라는 구절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외우지 말고 맥락을 이해하여
“외우지 말고 맥락을 이해해야 합니다” 김 교수가 강의에서 누차 강조하고, 제일 많이 한 말이다. 동의보감과 고금의 학설들은 단순히 외우고 반복하는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와 연계해서 이해하면 ‘산지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유난히 피부가 하얗고 입술이 자주 새파래지는 사람들이 있다. 추위에 약하고 찬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는 이들을 동의보감은 ‘음증(陰證‧음의 속성에 속하는 병증)’의 개념을 파악해 치료할 수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실생활에서의 예를 통해 이해를 도왔다. “여름이 되어 에어컨의 찬바람을 쐬고, 시원한 옷을 입고 다니면 태음증(太陰證)이나 소음증(少陰證)의 음증에 걸리기 매우 쉽지요. 원기의 허실과 냉기의 유입, 허한 복장은 음증의 대표적인 세 가지 요인입니다” 김 교수는 이 음증의 증세에 동의보감의 처방을 접목했다. “동의보감에는 상한양증(傷寒陽證)과 상한음증(傷寒陰證)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 상한음증은 불갈(不渴‧갈증이 일어나지 않는 증세), 구토를 동반합니다. 이때는 오적산(五積散)에 부자를 첨가해 사지의 냉기를 잡아낼 수 있습니다” 앞줄에서 진지한 눈빛으로 강의를 듣던 강진석(경희대 한의학과 2학년) 씨는 “이렇게 실생활에 적용하며 이해할수록 동의보감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400년의 시간을 이어오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말이다. 동의보감의 기본 원리인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는 글귀와 일맥상통하는 구절이다. 김 교수는 동의보감은 결국 외인보다는 내인을 다스리는 법이 병에 형통하는 근원이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에 더해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의학자 이동원과 나천익은 같은 증세에 서로 상반된 처방을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결국은 이 둘을 서로 보완해야 더욱 현대에 맞는 학설로 조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동의보감도 다른 학자들의 학설과 같이 탐구하며 지금에 더욱 적합한 형태로 보완해나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이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예비 한의학도들의 교재로 쓰이는 동의보감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수업을 두 번째로 듣는다는 황민희(경희대 한의학과 2학년) 씨가 질문에 답했다. “동의보감은 저에게 백과사전 같아요. 백과사전에 모든 지식들이 망라돼 있듯, 궁금한 점을 찾아보며 이해할 수 있기에 동의보감은 세월을 뛰어넘어 한의학과 저를 이어주는 지식의 보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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