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강연계에서 으뜸으로 치는 A 교수가 정작 학교에선 맥을 못추더라”고 말한다. “작은 유머에도 뒤로 넘어가는 청중들과 졸음을 못 이기고 앞으로 넘어오는 학생들의 대비가 그렇게 뚜렷할 수 없더라”고. ‘강연 100℃(K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CBS)’, ‘스타특강쇼(tvN)’, 그리고 토크콘서트 ‘열정樂서’까지. 한국 사회를 휩쓰는 강연붐 뒤에는 강연을 더 강연답게 만드는 ‘강연기획’이 자리하고 있다.


강연이 진화하고 있다
단상과 마이크만 두는 기존의 강연이 일차원적이라면, ‘강연기획’이 등장하면서 강연은 보다 고차원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열정樂서’를 기획한 마이크임팩트 한동헌 대표는 이를 두고 “강연의 내용과 형식이 점차 다양해지고 무대의 연출까지 더해지면서 강연은 이제 뮤지컬이나 연극과 같은 ‘문화콘텐츠’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마이크임팩트가 기획한 ‘열정樂서’엔 토크쇼 형식의 강연이 도입돼 있다. 강연 말미엔 가수가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일종의 ‘콘서트’와 다름없다. 강연의 형태가 복잡해질수록 기획의 역할이 커진다. 공연 팀과 MC의 섭외부터 무대 세팅, 조명 설정, 관객참여 유도까지 모두 업체 몫이다.

  안암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강연회 ‘허니책방’ 역시 새로운 강연 형태로서 사회공헌프로젝트와 연계돼 있다. ‘허니책방’은 자선회와 강연회가 결합된 형태로 연사는 재능기부를 통해 강연에 참여하며 청중은 강연을 들으면서 동시에 헌책 기부를 통해 태국의 난민을 돕는다. ‘허니책방’을 기획한 탑스피커즈 한대탁 대표는 “회사에서 기획한 강연을 고려대 총학에 제안해 강연이 성사됐다”며 “연사의 섭외와 강연의 틀을 짜는 것을 회사에서 맡고 있다”고 말했다.

강연기획 : ‘주최-연사-청중’의 가교
강연기획은 기업이나 학교 등 주최 측 요청에 따라 이뤄지는 방식과 업체 측에서 직접 강연을 기획해 후원이나 협찬을 받아 진행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자는 강연의 방향성과 주제를 주최 측에서 정하고 주최 측의 예산과 강연 주제, 강연 날짜, 사회 트렌드에 맞게 업체에서 연사섭외를 진행한다. 업체에서 대략의 강의안을 짠 후 이에 대해 강연을 진행할 수 있는 연사를 찾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연사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한동헌 대표는 “연사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편”이라며 “연사의 의사와 강연안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메시지의 파급력이 현저히 감소한다”고 말했다.

  적합한 연사가 섭외된 후엔 세부적인 강연 내용의 조율이 이뤄진다. 연사와 업체가 협의해 강연안을 작성하고 주최 측과의 협의를 통해 최종적인 강의안을 선정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연사와 주최 측이 직접 협의하기도 한다.

  강연기획업체 등장 이전의 강연회가 주최가 연사와 직접 접촉하는 방식이었다면 강연기획의 등장 이후엔 업체가 중간에서 주최 측과 청중의 니즈(needs)를 만족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대탁 대표는 “이전엔 학교에서 강연을 주최하면서 동시에 직접 연사섭외를 담당해 내용 측면의 제한이 많이 있었다”며 “이와 달리 업체에서 강연기획을 대행하면서는 학생들의 요구가 많이 반영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혼자가 아닌 나
아주머니 청중은 가벼운 농담에도 뒤로 넘어가고 회사원 청중은 시니컬하다. 초등학생 청중은 산만하다. 강연에서 ‘갑’인 청중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선 강연현장의 환경, 예상 관객의 나이대, 관객의 기대효과 등 전반적인 사항의 파악이 필요하다. 심지어 관객의 남녀비율까지 체크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러한 현장상황파악은 대부분의 업체에서 필수적으로 진행하는 부분이다. 위즈토크 박성용 대표는 “현장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해 연사가 당황하는 것을 청중은 이해해 주지 않는다”며 “강연 현장을 최적화하기 위해 사전에 모든 사항을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사의 강의 성향 역시 업체를 통해 현장에 반영된다. 탑스피커즈 최성민 현장진행팀장은 “카피라이터 정철 선생님은 동적인 강연을 좋아하셔서 강단을 치우고 무선마이크를 설치해드렸고, 박경철 선생님은 정적인 강연을 하셔서 강단을 설치했다”며 “연사의 성향을 맞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머까지 코치한다
강연문화의 확산으로 연사의 범위는 전문강연자에서 일반 명사까지 확대됐다. 강연에 능숙하지 않은 연사들에 대한 코칭은 포즈나 말투·목소리 교정, 동선, 의상과 유머까지 다방면에 걸쳐 이뤄진다. 한동헌 대표는 “코칭을 통해 강의 역량이 크게는 70%까지 향상된다”고 말했다.

  강의하는 것에 익숙한 교수들조차 이런 코칭을 받는 경우도 있다. ‘지혜’보단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익숙해 있어 자칫하면 청중들이 힘든 강연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코칭은 보통 수 회에 걸쳐 이뤄진다. 박성용 대표는 “연사의 평소 강의 모습을 찍어 꾸준히 모니터링한다”며 “명강사와 자신의 강의를 직접 비교하며 평가하게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정신없이 움직이며 말하던 연사들의 동선이 개선되고, 딱딱한 제스처나 표정이 개선된다.

  교수 등 오랫동안 강단에 섰던 경험이 있는 연사는 이러한 코칭을 거쳐도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위즈토크 박성용 대표는 “강단에 오래 서신 교수 혹은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강의 스타일과 제스처가 고정돼 있어 코칭을 거쳐도 나아지지 못한다”며 “자신의 강의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우려도 
강연문화가 확산되면서 업계에선 단순한 강연기획을 넘어 연사에 대한 매니지먼트까지 사업 영역이 확장되는 추세다. 연예인 소속사처럼 연사의 강연 스케줄부터 세부적인 강연 내용 까지 조정해준다. 연사 매니지먼트는 강연문화가 자리 잡은 유럽 등의 국가에선 이미 보편화돼 있다.

  일각에선 강연 시장의 지나친 상업화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매니지먼트가 있는 연사는 섭외료가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예산이 적게 책정된 교육기관이나 관공서에선 저명한 연사를 섭외하기 힘들어진다. 박성용 대표는 “대학 강연의 경우 연사들은 섭외료를 상관하지 않고 강단에 서기도 한다”며 “강연이 상업화 되면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는 강연 본래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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