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고등학교 친구가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오늘 날씨도 좋은데 잠깐 얼굴이나 보자고 하는 친구의 말에 그저 솔깃해져서는 산처럼 쌓여 있는 과제와 할 일들을 잠시 모른 체하고 근처로 놀러갔다. 친구는 이름만 대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다들 취업난이라고 하는데 친구는 한 번에 합격해서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회사원’이된 친구였다.

  그런데 대뜸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기에 먹던 치킨을 내려놓고 놀란 표정으로 친구를 쳐다봤다. 이미 함께 입사했던 동료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퇴사를 했다고 했다. 친구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놀라서 친구를 다그쳤더니 얼마 전에는 일하다 쓰러져 난생 처음으로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었다고 털어놨다.할 말을 잃었다. 친구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얼마나 멀쩡해보였던가. SNS의 프로필 사진에서, 간간히 올라오는 ‘뉴스피드’에서 본 친구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아닌 얼굴로 직접 마주한 친구는 건조한 표정으로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말을 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요즘이다. 스트레스가 심해질때면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나 멀쩡한 얼굴로 지내고 있는데 나만 힘들어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의 저 말은 남들은 괜찮아 보이니 나도 괜찮아야한다는 내 나름의 ‘합리화’를 와장창 깨뜨렸다.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누구나 힘이 들 때가 있고 때로는 숨이 목까지 차오르기도 하는 것이었다. 모순적이지만 친구의 힘들다는 말에 나는 위안과 동질감에서 오는 이상한 격려를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나를 괴롭히던 여러문제들이 눈 녹듯 사라진 건 절대 아니다. 내 일상은 여전하다. 여전히 할 일들은 쌓여 있고, 내 주변을 둘러싼 상황,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지치게 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내 태도는 조금 변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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