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융자는 경제적 자산이 아니라 인간적 자산을 일깨우는 수단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가진 꿈을 일깨움으로서,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존엄성과 존중의 마음을 갖도록 만들고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중에서

자기 신체의 일부를 담보로 돈을 빌리고 카드 빚을 갚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는 일들이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심지어 한 어머니는 카드 빚 때문에 두 아이와 동반 자살을 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가난한 서민들이 돈 때문에 극한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현재의 가난은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들어‘빈곤의 악순환’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신용도가 취약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기관은 전무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민간은행이 빈곤계층을 수용하기 힘들게 되자 서민들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금융기관이 필요하게 됐다. 이러한 필요는 ‘신나는조합’과 같은 새로운 시도를 이끌어 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지난 2월 발족한 ‘사회연대은행’이다.

사회연대은행은 자활(自活)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빈곤층이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빈곤에서 벗어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활할 수 있도록 기부금을 통해 창업에 필요한 자금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비영리 자활지원 기관이다.

사회연대은행 임은의 자원개발실장은 “사회연대은행은 빈곤문제를 사회연대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하고자 창설된 단체”라고 설명했다. 임 실장은 사회연대은행의 설립을 위해 “1990년대 후반부터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이나 이와 비슷한 미국의 ‘액션 뱅크(Action Bank)’에서 실시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액융자(Micro Credit)를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관해 계속 연구했다”고 밝혔다.

사회연대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 보증과 담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신용 하나만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판단 기준은 민간은행의 대출 방식과는 지극히 다른 것이다.  빈곤 계층의 서민들이 민간은행에서 필요에 의해 대출을 받기는 무척 어렵다. 은행은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서민들이 돈을 빌리려 할 때 소득과 재산을 보고 대출 가능여부를 가늠한다. 결국 민간 은행의 대출 기준은 담보와 보증이며, 이는 돈 있는 사람에 한해 돈이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인 국민은행연구소 연구원은 “민영화된 은행은 우선적으로 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부나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서민대출은 힘들다”고 밝혔다.

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한 서민들은 차선책으로 새마을금고나 상호저축은행과 같은 조합을 찾는다. 하지만 신용조합의 경우 은행보다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황보정석(새마을금고 홍보실 대출담당) 씨는 “새마을 금고와 같은 신용조합도 결국은 수익성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은행과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서민들을 고객대상으로 하는 신용조합 내지 서민을 위한 금융기관도 은행의 민영화 추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금융 구조는 은행과 신용조합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사채시장으로 빠지게 해 가난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든다.

반면에 사회연대은행은 돈을 빌리고 갚을 때 기존의 은행처럼 보증이나 담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공동체를 구성해 연대책임을 하기로 공동 도장을 찍는다. 따라서 자금대출은 여러 명이 함께 창업하는 공동체형 창업에 우선적으로 대출이 이뤄진다. 창업자금은 1인당 1천만원 이내이고 연이율 4%를 기준으로 탄력적으로 적용된다. 즉, 돈을 갚아갈수록 이자율은 감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연대은행이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대출자는 돈을 갚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같은 조건 속에서도 상환율은 90%에 달한다. 사회연대은행 임은의 자원개발실장은 “이는 사회연대은행에서 대출받은 이들은 한번도 남의 돈을 빌려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소중히 여기고 사회연대은행에 돌려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대출자에 대해 “그들은 돈을 갚는 일 자체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연대은행의 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대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민들이 자활에 성공할 수 있도록 경영 및 기술 교육훈련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 자활시스템은 사회연대은행이 발족하기 이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다. 사회연대은행은 우선 1차 지원사업으로 저소득층 여성가장들을 위한 창업지원사업을 펼쳤다. 이를 통해 19가구, 5개 공동체가 창설됐고 저소득 소외계층 중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힘든 자를 대상으로 현재 2차 대출을 접수 중이다. 사회연대은행 김성수 이사장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일회성의 단기적인 사회복지방식으로는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자활의지를 되살리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회연대은행의 공동체는 구성원의 자활의지와 상호간 연대의식을 기반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의 1차 사업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중 광주광역시 두암동에 위치한‘두부마을’. 이 곳 공동체 사람들은 모두 새벽 2시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두부를 제조·판매한다. 현재 ‘두부마을’에서 일하고 있는 이영숙 씨. 이씨는 IMF금융위기가 지난 후 그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동만이 계속됐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너무나도 강렬했다고 이씨는 말한다. 그러다가 이씨는 ‘두부마을’을 알게 되어 지원했고 2002년부터 이 곳에서 일하게 됐다. 이씨는 “물론 힘들기도 하지만 두부마을을 같이 하시는 분들과 뜻이 통하고 또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 그리고 앞으로 성공에 대한 희망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있다”고 현재의 생활을 설명했다. 이 씨는 “어려운 사람들을 쉽게 도와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믿고 그 믿음으로 생겨난 사회연대은행에서 도움을 주어서 고맙고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는 문턱을 낮춰 은행을 가난한 사람들의 것으로 만든 사회연대은행의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사회구성원들의 사회연대의식을 필요로 한다. 현재 사회연대은행은 삼성사회봉사단과 ‘사랑의 열매’로 잘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조성된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반 기업이나 재력가들의 기부는 미흡한 실정이라고 사회연대은행 측은 말한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앞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소액융자는 경제적 자산이 아니라 인간적 자산을 일깨우는 수단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가진 꿈을 일깨움으로서,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존엄성과 존중의 마음을 갖도록 만들고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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