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특강 지상 중계]코드정치 아닌 사회통합 정치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특강 지상 중계]코드정치 아닌 사회통합 정치로
  • 최소영 기자
  • 승인 2003.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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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문제연구소(소장=최장집 교수, 정경대 정치외교학과)주최로 제3회 한국 민주주의 특강이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비판적 접근과 새로운 모색>이란 주제로 진행됐다. 이번호에서는 지난호 김우창(문과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의 강의에 이어서 임희섭(문과대 사회학과)명예교수의 특강 내용을 통해 한국사회의 시민성을 고찰해 보고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에 대해서 살펴본다.

(1) 김우창 - 정치변화의 이상과 현실
(2) 임희섭 - 한국 사회의 시민성과 한국민주주의, 한국 시민사회운동과 한국민주주의
(3) 최장집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국민주주의의 제도 디자인 

시민성이란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의 제도화 수준과 문화적, 심리적 내면화의 정도로 정의된다. 즉, 시민성은 그 사회의 시민사회적 특성과 국민들의 시민적 특성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주어진 사회가 얼마나 시민사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가, 얼마나 시민다운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평가한다.

코엔과 아라토는 시민사회의 구성요소들로 다원성, 공공성, 사생활, 법률성 등을 꼽았다. 다원성이란 생활집단들에게 보장되는 다양성의 정도를 말한다. 공공성은 문화와 의사소통의 제도화를 말하며 사생활은 사적인 자아발전과 도덕적 선택의 영역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법률성은 국가와 경제로부터 다원성, 공공성, 사생활을 경계 지우는데 필요한 일반적인 법률과 기본권리의 구조를 말한다. 여기에서 시민권과 법률성은 ‘자율성’의 영역에 포함되며 다원성과 사생활은 ‘공공성’의 영역에 포함된다.

역사적으로 서구사회에서 시민사회의 형성은 시장경제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신흥도시상공업자 계층의 성장과 전제적 군주제도를 붕괴시킨 시민혁명을 통한 입헌 국가체제와 대의민주제도의 성립을 배경으로 가능했다. 한국의 경우, 구한말의 농민봉기와 동학혁명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개화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됐던 개화운동과 같은 위로부터의 근대화 혁명 등이 모두 외세의 개입과 일제에 의한 식민지화로 좌절됐다. 이로써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의 대의민주주의 제도로 시민사회가 성립됐다.

시민사회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민주화 시민운동으로는 △50∼60년대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70∼80년대의 군사적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시민 민주화 운동 △90년대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에서의 시민운동을 들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국가로부터의 자율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의 한국 시민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줘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사회 공공성의 첫 번째 요소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간의 긴장과 한국 시민문화의 복합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한국의 시민성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신민성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복종의 의무로 공적인 영역에서 참여의 불가를 말하며 극단적으로 전통적인 봉건사회에서 우리들이 지니고 있었던 정치성향이다. 이승만에 대한 국부칭호와 여촌야도의 현상에서도 신민적인 정치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계급성과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되고 권위주의 정부가 물러나면서 시민사회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국민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부의 집중현상과 계급분화가 진행됐다. 또한 전통적인 농업 사회적인 특성과 산업 사회의 계급의식, 대중 사회적인 요소가 확산되면서 민주주의 사회에 중요한 시민의 자질 등의 요소가 한 사회 내에서 혼재되었다. 전자적 대중(cyber mass)도 조직화되지 않고 원자화된 특징을 가지고 있어 때에 따라 산발적이고 단기적인 대중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공공성의 두번째 요소는 이익갈등 조절기제의 미성숙과 집단 이기주의의 문제이다. 이는 제도정치의 대의 기능 미발달, 정치에 대한 불신, 이익집단의 분화와 집단이기주의 및 비제도적인 집단행동으로 인해 나타난다. 이익표출 과정에서의 집단이기주의 문제의 예로는 시민공동체에 대한 감정이입과 시민정신의 미성숙으로 인한 전통적 가족주의와 연고주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도덕적 불감증으로 인한 도구주의와 편법주의나 한탕주의가 있다.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성향에 집단주의가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는 집단 이기주의가 강하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변질돼 집단적 이기주의로 발달했다. 다른 개인들의 권리와 행복을 존중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자신만의 권리를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개인주의이자 집단적 이기주의의 표출이다. 한국의 이익집단들의 행동은 공익에 대한 관념이 부족한 편이다.

한국민주주의의 문화적 정착을 위해서는 집단이기주의의 극복이 필요하다. 이익표출과 집단행동은 집단의 이익이 불공정하게 위협받는다는 인식 하에 제도화된 이익표출과 항의의 수단이 효과적이지 못하고 비제도적인 집단행동이 처벌받지 않고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불법적이며 폭력적인 집단행동으로 한국 시민사회 운동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검찰, 법원의 올바른 통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비제도적인 폭력적 집단행동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므로 이점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극복해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가치, 규범, 제도의 변화를 지향하는 사회성원들의 조직적인 집합행동으로 정의된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회운동은 한 사회 내에서 잠재적으로 모순되는 둘 이상의 문화적 지향이 공존하고 있다. 그 이후에 기존의 지배적인 문화적 유형의 부적합성으로 소수집단이 부당한 불이익을 당한다는 비정의 의식(sense id injustice)이 확산되고 문화적 모순이 현재화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오랫동안 잠재됐던 문화적 모순이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거쳐 일부 사회성원들에 의해 기존의 지배적인 문화양식에 대한 문화적 도전이나 문화적 결별이 시도되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현대 한국사회의 문화적 모순과 시민사회운동은 △귄위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문화적 모순인 민주화운동 △성장주의와 평등주의 간의 모순인 민중·노동·빈민운동 △성장주의와 환경주의 간의 문화적 모순인 환경·지역운동 △가부장주의와 평등주의 간의 모순인 여성운동 △권위주의 및 성장주의와 민주주의 간에 남아있는 문화적 모순인 90년대 이후의 시민운동 등으로 나타난다. 또한 시민사회운동의 문화적 결과로는 문화적 모순의 해결을 향한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시민의식의 변화와 운동문화에서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방향은 자유민주주의의 제도화와 공고화, 참여민주주의, 가버넌스(국가, 기업, 노동, 시민사회, 언론 등에 의한 공치)의 지향을 들 수 있다.

참여민주주의는 노무현 정권이 생각하는 이념지향이다. 참여민주주의란 대체로 지방분권화를 추진하고 주민소환권, 주민투표제 등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며 단지 투표 활동에만 참여했던 것에서 나아가 시민운동의 정책 과정 참여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직접참여를 유도하면서 참여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참여의 폭을 넓힌다는 것에서 중요한 점은 누가 국가목표, 공익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노무현 정권에서는 이것이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잠잠했던 극우세력들도 노무현 정권 이후 과격하고 폭력적인 행동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노 정권이 친화적이라고 여겼던 노동단체, 시민단체 등과도 극한 투쟁을 벌이게 됐다. 전교조는 노 정권을 믿고 너무 과격하게 나가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됐으며 운송노조의 경우도 너무 강하게 나가는 바람에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게 됐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사회적 합의에 있다. 서로의 이념 차이에 대한 정쟁에 머물지 말고 큰 틀에서 새로운 합의를 찾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코드의 정치에서 사회 통합적인 정치로 선회해야 하며 정책의 방향과 범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임희섭 교수는...

△ 1937년 전북 전주 출생
△ 1955-1959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1959-1964 서울대 대학원 문학석사
△ 1968-1970 웨스트조지아대 조교수
△ 1982-1983 사회과학연구협의회 부회장
△ 1984-1985 본교 교무처장
△ 1992-2002 통계청 통계위원
△ 1993-1995 본교 문과대학장
△ 1996-1998 본교 대학원장
△ 1998-현재  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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