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오심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1982년부터 야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그라운드를 지켜온 사람이 있다. 전직 KBO(한국야구위원회) 심판위원장이자 현 KBA(대한야구협회) 심판이사를 맡고 있는 황석중 이사이다. 25년간의 현역생활을 마치고 그라운드 밖에서 야구에 대한 애정을 쏟고있는 황석중 이사를 목동야구장에서 만나 심판의 세계와 애환을 들어봤다

대한야구협회(KBA) 황석중 심판이사

 -심판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판정은
“1982년 대구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한 몰수게임 선언이다. 당시 2루에서 선수 간 충돌이 있었다. 1루 주자가 상대 2루수를 향해 거친 슬라이딩을 해 선배인 2루수가 후배 1루 주자의 뺨을 때린 것이다. 2루심은 2루수에게 퇴장을 명령했고 감독은 명령에 불복하며 선수단을 철수시켰다. 결국 4명의 심판 합의 하에 몰수게임이 선언됐다. 경기 후 돌이켜보니 관중이 표를 사서 들어오는 프로에서 몰수게임이라는 것이 있으면 안된다고 여겼다. 그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의 경기에서 몰수게임을 선언하지 않겠다는 철칙을 세웠다”

- 6월 15일 프로야구 엘지와 넥센의 경기에서 일어난 오심이 큰 이슈가 됐다
“명백한 심판의 실수다. 공이 2루수 글러브에 들어오는 시점이 주자의 2루 도달 시점보다 현저히 빨랐고 2루수가 공을 잡은 후 특이한 상황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태도는 너무 과했다. 오심을 한 심판에겐 위원회 차원에서 합당한 징계를 내리는데도 인터넷 상에서 먼저 논란이 돼 심판이 더 큰 곤혹을 치른 것 같다”

- 심판들은 오심을 내리는 순간 오심을 직감하나
“‘아차!’ 할 때가 있지만 판정이 쉽게 번복되진 않는다. 특히 아웃, 세이프, 스트라이크, 볼 판정 등 기본적인 판정은 거의 번복되지 않는다. 번복이 가능한 경우가 많지 않기에 애초에 심판들은 정확한 판정을 하려 노력해야 한다” 

- 자신의 판정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이후에 있을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편인가
“심판은 배우와 같다.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카메라를 의식하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없듯 심판도 관중과 중계 등을 의식하면 좋은 판정을 내리기 어렵다. 경기 중에는 선수의 플레이에만 집중해야 좋은 심판이 될 수 있다”

- 많은 관중들이 심판마다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다고 느낀다.
“야구 규칙이 같은 이상 스트라이크 존은 어떤 경기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만 홈 플레이트 위에 스트라이크 존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심판의 체격이나 위치, 타자와 투수의 체격 등에 따라 존이 달라질 순 있다. 규정에 의하면 타자의 몸을 기준으로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리틀 야구선수와 성인 대표선수의 스트라이크존이 같을 순 없지 않나(웃음)”

- 기후적인 요인도 심판의 판정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기온 상승이 심판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기온이 올라가는 시기와 시즌의 진행이 겹친다는데 상관관계가 있다. 한창 더울 땐 시즌 중반이라 팀 간 순위 싸움이 치열해 애매한 판정에 대한 감독들의 항의가 늘어나게 된다. 반면 시즌 종반부가 되면 상위권 팀과 하위권 팀 간의 순위 격차가 벌어져 항의가 줄어든다. 시즌 후반엔 몇 번의 애매한 판정으로 시즌 전체 성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 경기장에서 경기 외적인 요소가 판정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나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거리가 영향을 주기도 한다. 목동야구장과 마산야구장처럼 그라운드와 관중석이 가까운 경기장에선 판정에 불만을 가진 팬들의 야유 소리가 잘 들려 판정을 내리는데 더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일부 과격한 팬들은 오물을 투척하는 경우도 있다”

- KBA의 심판수급 현황은 어떤가
“KBA 심판은 프로심판이 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 충분한 심판 수급이 이뤄진다. KBA 심판은 프로심판의 3부 리그 수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프로심판이 되기를 원하는 심판 지망생들은 심판학교를 졸업해야하고 졸업 후 우수한 심판들만이 KBA 심판위원에 임명된다. 임명 후 KBA에서 우수 심판위원으로 평가받은 위원들은 퓨처스리그(프로 2군) 심판위원, 프로리그 심판위원으로 차근차근 승격하게 된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식지 않는 이상 KBA의 심판수급은 항상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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