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을 기점으로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크게 바뀌었다. 1980년대 이전의 소수민족 정책이 무조건적인 정치탄압을 가하는 방식이었다면, 이후의 정책은 ‘변강학(邊疆學)’의 정립과 경제적 유인을 통한 회유로 소수민족을 ‘하나의 중국’ 속에 동화시키는 정책이었다. 그 중 ‘서부대개발(西部大開發)’은 21세기 중국의 소수민족 경제정책을 집약한 핵심 산업으로, ‘하나의 중국’을 지키려는 중국의 노력 중 하나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8월 20일 인민일보를 통해 “중국 경제 발전의 최대 가능성은 중서부 지역에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중국’을 지키려는 중국의 ‘서부대개발’에 대해 알아봤다.

서부대개발의 배경
  서부대개발은 중국 정부의 불균형 개발로 인한 동부쏠림현상을 극복하고자 계획됐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동부의 지리상 이점 등을 이유로 동부에서 서부로 이어지는 순차적 개발을 진행했다. 하지만 지나친 동부집중개발은 80년대 이후 동부와 서부의 심각한 불균형을 낳았다(1998년 기준 중국 GDP, 동부 58.3%, 서부 13.8%). 지역 간 불균형이 심해지자 1993년 장쩌민(江澤民)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경제적 격차는 다른 사회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했다.
  서부지역의 복잡한 정치상황 역시 서부대개발을 촉진하는 계기이다. 중국 입장에서 티베트·신장 등 굵직한 소수민족들이 다수 거주하는 서부는 수십 년간 이어진 독립운동으로 민족적 통합이 절실했던 장소였다. 또한 유럽으로 통하는 중앙아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인도양 진출의 교두보가 되는 등 전략적 요충지였던 까닭에 중국 정부는 서부문제 해결을 통해 서부지역의 지배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1999년 서부대개발이 시작됐다.

서부대개발의 목표
  서부대개발의 핵심 목표는 개발주의 방식을 통한 서부 소수민족의 정치·경제·문화적 통합이다. 동서간의 빈부격차를 조절하는 동시에, 환경문제를 개선하고 사회적 안정을 도모해 ‘사회주의 다민족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의 부흥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주요 경제적 민족통합 정책으로는 △시안(西安)-하비(合肥)간 철도건설 △서부지역 간선도로 건설 △신강 위구르 자치구-상해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서전동송(西電東送:서부에서 생산한 전기를 동부로 보낸다) 등 집중적 인프라 건설을 통한 동부와 서부의 경제격차 완화를 중점으로 한다. 정치·문화적 민족통합으로는 △한족의 대규모 서부 이주 △교육을 통한 ‘중화민족론’ 고취 △적극적인 한어 보급을 통한 소수민족 문화동화 등이 있는데, 소수민족 문화의 소멸을 통해 한족 문화로 통합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드러난다. 윤 교수는 정치·문화적 민족통합에 대해 “예를 들어 소수민족 지역 초등교육은 소수민족어와 한어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며 “이런 민족통합 정책은 ‘하나의 중국’을 지키려는 중국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중국은 통합정책을 포기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민족분열에 자신이 없다”며 서부대개발이 중국의 불안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서부대개발의 과제
  현재 ‘서부대개발’의 진행 상황은 50년의 기한 중 10년을 조금 넘긴 상태다. 10여 년의 투자는 서부의 경제발전을 촉진했다. 개발이 시작된 1999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서부지역의 GDP는 279.9% 증가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중국전체 증가율(235.3%)을 상회하는 수치다. 또한 서부지역 1인당 가처분 소득도 141.1% 증가하는 등 서부지역의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동·서부의 불균형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1999년 중국 전체 GDP에서 동부와 서부 비율차이는 38.2%였으나 2008년엔 44.2%로 격차가 6% 포인트가 늘어난 모습을 보였다. 박상수(문과대 사학과) 교수는 “소수민족과 중국의 경제격차를 ‘제로섬 게임’으로 봐서는 안된다”며 “소수민족이 아무리 개혁개방으로 인한 경제발전을 이뤄도 중국 또한 자국의 개발에 힘쓰기 때문에 갭(gap)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부가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동부 역시 더 많은 발전을 이뤄왔다는 주장이다.
  정치·문화적 동화정책에 대한 소수민족들의 반발도 계속되고 있다. 서부대개발의 주요 정책으로 한족에 대한 이주 장려가 실시돼 소수민족 거주지역에 한족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중국의 정책에 대해 제임스 밀워드 조지타운대 교수는 ‘공작이 서부로 날아가다(孔雀東南飛)’라고 부른다. 특히 1990년대 석유가 발견된 신장의 경우 한족의 이주가 활발해 1990년대 초 600만 명이 조금 안되던 신장 내 한족인구는 2000년대 초 800만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우월한 정보·경영·학력을 이용해 위구르인들을 밀어내고 신장의 경제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족 대다수는 위구르족의 문화와 관습에 무지해 위구르족과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켜왔고, 이에 대한 불만은 2009년 ‘우루무치 사태’를 통해 폭발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그럼에도 중국은 이를 포기하기 않을 것”이라며 “중국정부에게 이들은 모두 ‘중화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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