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이 24일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 송민지 기자 ssong@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교수의 강연이 24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렸다. ‘멈춰라, 생각하라-Philosophy, Psychoanalysis, Capitalism’을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는 3500여 명의 청중이 참가했다. 지젝 교수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자본주의의 무세계(無世界)성
  지젝 교수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무세계적(worldless)’ 특성을 비판했다. 자본주의가 사회전반을 커버하는 실질적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젝 교수는 종교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수백 년간 자본주의를 준비해왔던 유럽과 달리 이슬람 세계는 아무런 준비 없이 자본주의가 급격히 유입됐다. 문화변동에 혼란스러워하던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방어로 근본주의라는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아랍에서는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인한 무세계적 혼란을 막기 위해 종교적 초자아가 부상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 오늘날 세계를 ‘신(神)이 있는 세상’이라고 규정한다. 라캉(Lacan)에 따르면, 신이 없는 세상에선 모든 것이 금지되지만 신이 있는 세상에선 모든 것이 허용된다. 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본주의자들은 테러나 학살 등 잔혹한 행위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이는 홀로코스트(대학살) 등 종교에 대한 집단적 광기를 만들어 낼 위험성이 있다.
  지젝 교수는 우리에게 친숙한 강남스타일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강남스타일은 음악적으로 매우 뛰어난 형식을 취한 것도 아니고, 가사에 깊은 뜻이 담긴 것도 아니지만 단순히 흥미로운 멜로디와 코믹한 댄스만으로 전 세계적 인기를 낳았습니다”라며 “단순한 노래 하나가 집단적 모방을 일으킨 점은 놀라웠습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강남스타일은 종교적 무세계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다. “강남스타일 가사에도 사회비판적 내용이 일부 포함됐지만 사람들은 이를 모른 채 그저 따라할 뿐입니다” 강남스타일에 대한 무아지경적 열풍이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광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을 경계한다. “우리가 신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진정 잔인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가 만들어낸 ‘신’을 가까이 하기보다는 거리 두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전체주의적 사회
  지젝 교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비롯되는 전체주의 사회를 경계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종교와 사상을 막론하고 오로지 이익의 증대만을 추구해 사회가 이에 적합한 집단 체제로 변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전체주의 사회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부작용임을 강조했다. 지젝 교수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학살자 안와르 콩고의 학살 장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Act of Killing)>은 ‘글로벌 자본주의’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내에서 안와르 콩고는 학살자임에도 공인이 돼 자신의 학살 내용을 TV프로그램 등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국민들 또한 이런 상황에 크게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이는 학살이란 ‘현실’을 하나의 쇼로 생각하게 만드는 전체주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겁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전체주의 속에서 보편적 인권이 무시되는 끔찍한 상황을 당연시하는 집단적 트랜스가 생긴다는 뜻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문제는 자본주의로 인해 파생되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특성 그 자체다. 지젝 교수는 자본주의는 이기주의와 비슷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진정한 자본주의자를 무자비한 기업가로 가정했을 때 그는 자신의 쾌락보다 부를 증대시키는 데 집중한다. 만약 그가 진짜 ‘이기주의자’라면 그는 쾌락만을 추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적’ 기업가는 환경 파괴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부에 눈이 멀어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지젝 교수는 자신의 이익을 침범하면서까지 자본을 증대시키려는 자본주의자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자본주의자와 이기주의자가 다른 이상,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파생되는 이기주의에 있지 않다. 자본주의로 인한 전체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공적 영역을 확대하라
  무 세계와 전체주의의 극복 대안은 공적 영역의 확대다. 지젝 교수는 공적 영역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음란물이 대표적이다. 최근 폴란드와 헝가리를 중심으로 퍼지는 음란물 동영상은 공공장소에서 성관계를 맺는 등 공공영역이 통제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같은 공적 영역의 축소는 일반적으로 가장 ‘공공적’이라 여겨지는 국가기관이 사적으로 변질돼 일어났다. 칸트의 <계몽주의는 무엇인가>에 따르면, 국가기관은 철학, 과학 등 학문과 기술을 국가 이익을 통해 이용하기 때문에 사적인 성격을 띤다. 지젝 교수는 칸트의 공공관 확대를 우려한다. “유럽의 인문학은 오로지 실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지식인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어요. 문제 자체에 의문을 제시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임에도, 국가는 지식인이 국가적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만 주목합니다. 풀 수 있다면 사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풀 수 없다면 끝이지요.”  
  지젝 교수는 공적 영역을 확대시키는 방법으로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를 제시한다. 그에게 있어 최근 ‘위키리크스’의 기밀폭로로 문제가 된 스노든과 어산지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국제시민’이다. 내부 고발자는 개인의 알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사적으로 변질된 국가에 대항하는 초(超)국가적 존재다. 따라서 미국이라는 국가기관이 가지고 있던 사적 영역의 기밀을 공공의 영역으로 폭로한 그들의 존재는 하나의 작은 혁명이다. 지젝 교수는 이런 사소한 변화를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의 모순들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마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적 존재가 된 이상, 모두가 알아야 할 비밀, 정보 등을 공적 영역에 드러낼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는 내부 고발자들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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