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예능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2월 21일 첫 방송을 시작한 JTBC의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은 지난 7월에는 ‘요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10위에 랭크됐고(한국갤럽 조사), JTBC <비무장 정치쇼-적과의 동침(적과의 동침)>의 시청률은 방송 2회째에 첫 방송의 두 배인 2.6%로 껑충 뛰었다. 정치적 사안을 예능으로 풀어내는 정치예능 프로그램엔 tvN <쿨하게 까는 당(쿨까당)>, <SNL코리아-위켄드 업데이트> 등도 있다.
  최근 인기를 모으는 정치예능 프로그램은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의 정치풍자와는 다르다. 웃음을 위한 부수적 장치로 정치를 이용하는 코미디와 달리 정치라는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다. 정치평론가와 전‧현직 국회의원이 고정적으로 출연한다는 점에서 18대 대선 당시 대선후보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과도 차별화된다.

대중과 가까워진 정치
  대중이 정치예능 프로그램에 반응하는 이유로 제작자와 시청자 모두 ‘대중에 친근한 예능의 형식’을 꼽았다. <쿨까당>을 기획한 정해상 MBN 제작국 교양총괄부장은 “현재의 시사 프로그램은 정치 소비자인 대중과 괴리됐다”며 “대중과 소통하는 새로운 창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썰전>을 꾸준히 시청하는 고봉준(문과대 독문08) 씨도 “멀게만 느껴졌던 정치가 예능만큼 가깝게 느껴졌다”며 “정치예능에서 봤던 사안을 뉴스에서 다시 접하면 이해하기도 쉽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에도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루한 뉴스와 달리 정치예능은 재미있다’는 시청자의 평가가 많다.

웃음거리 전락은 문제
  정치예능 프로그램이 대중적인 인기와는 별개로 진지한 정치적 사안이 지나치게 희화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제대로 논의해야 할 중요 사안이 ‘예능’의 틀 안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후보자의 병역비리를 다룬 <썰전> 1회(2월 21일 방송)는 병역비리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희화화했다. 당시 두 국무총리 후보자 모두 자녀의 병역비리 의혹을 받고 있었지만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아들은 2명인데 비해 정홍원 국무총리(당시 후보자) 아들은 1명이었다. 이 점을 두고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어쨌든 아들이 둘에서 하나로 줄었잖아요”라고 발언했으며 진행자 김구라 씨는 “병역비리가 걱정되는 후보자는 해병대를 나온 사람을 양아들로 삼으라”고 말했다. 김구라 씨의 ‘양아들 조언’은 자막을 통해서도 재차 강조됐다. 공직자 자녀의 병역비리가 어떤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지 등 본질적인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는 “정치와 거리가 먼 시청자들이 정치예능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전부 사실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또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 힘든 한국 언론 현실에선 정치에 흥미를 둔 시청자들도 정치예능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의 누드사진 검색 파문을 다룬 <썰전> 5회(3월 28일 방송)는 사건의 문제와 영향보다 ‘누드사진’이라는 자극적 소재에 집중했다. 강용석 변호사가 “포털사이트 검색으로 나오는 사진은 마일드한데 왜 검색했는지 모르겠다”고 발언했고 이어 출연진이 직접 포털사이트에 ‘누드사진’을 검색해보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됐다. “많이 나오네!(김구라)” 같은 발언과 ‘심지어 많이 나온다’, ‘사이좋게 감상 중’ 등의 자막이 삽입되기도 했다. 심 의원이 ‘왜 누드사진을 검색했을까’를 논의할 때도 “새누리당 최고위원 중 유일하게 친이(親李)계라 외로워한 것이다(김구라)”, “맨 뒷줄에는 최고위원만 앉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강용석)” 등의 농담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17회(6월 20일 방송)부터 신설된 ‘위클리 포토제닉’ 코너는 <썰전> 코너 가운데서도 예능의 특성을 가장 강하게 띤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노숙투쟁 사진을 소개한 28회(9월 5일 방송) ‘위클리 포토제닉’에선 투쟁의 이유와 논란에 대한 내용은 배제된 채 김한길 대표의 옷차림에 대한 평가가 논의의 과반을 차지했다. 이석기 의원의 사진을 다룬 29회(9월 12일 방송) ‘위클리 포토제닉’은 강용석 변호사의 “국회제명과 관련된 인물은 나와 김영삼 전 대통령 뿐이었는데 (이석기 의원까지 추가돼) 희소성을 뺏긴 것 같다”는 농담으로 마무리됐다.
  전규찬 교수는 “실제 정치가 사실상 퇴행 상태에 놓여 있는데 심사숙고가 부족한 예능 형태의 프로그램은 또 다른 정치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정치에서 필요한 진지한 담론 형성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내영(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예능으로 이목을 끌기에 앞서 주요 사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대화가 전제돼야 한다”며 “정치예능 프로그램이 긍정적 작용을 하기 위해선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종 사회문제의 올바른 대안을 모색하는 정치의 본래 기능이 뒷전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수아 <썰전> 프로듀서는 “풍자할 만한 정치적 사안이 있어서 풍자하는 것”이라며 “정치인의 행동을 무조건 무겁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왜곡된 이미지메이킹 경계해야
  정치인이 ‘정치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적과의 동침> 1회(9월 16일 방송)에 출연한 김영환 민주당 의원은 출연 취지에 대해 “정치판에서만 하는 논의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실제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가상의 정당이 법안을 발의하는 프로그램인 <쿨까당>에서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소방관 처우 개선 관련 법안’은 3월 실제 법안으로 발의됐다.
  반면 정치인 예능 출연의 실질적 이유를 ‘이미지메이킹’으로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TV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리고 친숙한 이미지를 형성해 향후 선거에서 지지를 호소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지메이킹’은 정치인들에게 중요하다. 강용석 변호사는 자신의 책 <강용석의 직설>에서 “방송이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강 변호사는 <썰전>을 포함한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했다. 그전까지 강 변호사는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과 개그맨 고소 등으로 비판을 받던데서 벗어난 것이다. 김하은(미디어12) 씨는 “강용석 변호사가 방송에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것을 보면서 이전의 논란에 대해선 잊어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적과의 동침> 2회(9월 23일 방송)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대표적인 정치예능 프로그램 <썰전>, <쿨까당>, <적과의 동침> 가운데서도 재미와 화제성을 중시하는 편으로 매회 여러 명의 현직 국회의원이 방송에 직접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적과의 동침>은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세계 최초 여‧야 커플버라이어티’, ‘국회의원들의 예능 한 판’ 등을 기획의도로 내세우며 정치적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보다 정치인의 이미지에 화제를 집중한다. 1회에 출연한 국회의원 중 유일한 여성인 이언주 민주당 의원과 관련된 발언은 대부분 이 의원의 외모에 대한 것이었다. ‘여의도 김태희’ 등의 수식어도 자막으로 강조됐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폭행과 막말 이미지에 대해 해명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처럼 프로그램이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외모나 언변이 탁월한 정치인만을 등장시키면 찾게 돼 실제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 외면 받을 가능성도 있다. 정희준 문화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왜곡된 이미지메이킹이 퍼지면 묵묵히 일하는 정치인이 오히려 대중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인의 이미지메이킹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대중의 정치혐오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선 이미지메이킹을 통해서라도 대중의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희준 부소장은 “정치인이 이미지를 활용하려 하는 것은 당연한 생리지만 정치의 본질이 가려진 채 껍데기만 다른 방향으로 왜곡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시적 인기일 수 있어
  정치예능 프로그램이 꾸준히 인기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대중이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현상이 얼마나 지속될 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희준 부소장은 “최근까진 연예인이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는 형태의 토크쇼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모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인기를 잃었다”며 “정치예능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로 정치인들이 방송에서 신변잡기를 늘어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모적인 얘기를 하는 주체가 연예인에서 정치인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해상 교양총괄부장 역시 “시청자들이 정치예능을 계속해서 원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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