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9 13:56 (화)
[명강강독]인간의 기억은 팔림프세스트
[명강강독]인간의 기억은 팔림프세스트
  • 김재혁 문과대 교수 독어독문학과
  • 승인 2013.09.30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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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 속에 살아있는 독일문학 ①

 

김재혁 문과대 교수
독어독문학과

서양에서 중세의 필사본과 관련하여 쓰는 말 중에서 ‘팔림프세스트 Palimpsest’라는 낱말이 있다. 그리스어의 ‘Πάλιν(palin)’ 즉 ‘다시’라는 말과 ‘ψάειν(psaein)’ 즉 ‘문지르다’ 또는 ‘문질러 벗겨내다’라는 말을 합쳐서 만든 복합어이다. 우리말로는 재록양피지라고 한다. 양피지가 귀하던 시절에 앞사람이 써놓은 글을 지우고 거기에 자신의 글을 적는 행위에서 나온 표현이다. 대체로 신약성경이 양피지로 많이 제작되었기 때문에 성경의 글귀를 지우고 거기에 성직자가 자신이 설교할 내용을 적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기술로 이 양피지를 비추어보면 거기에 숱하게 쓰고 지운 흔적이 한꺼번에 다 드러난다. 영국의 작가 토마스 드 퀸시는 인간의 기억력을 이와 같은 재록양피지에 비유했다. 글쓰기는 다른 것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뜻이다. 서양이나 동양의 많은 시문학 중 전대의 것 없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것은 없다.

  실제로 문학작품을 읽다보면 많은 시인과 작가들 사이의 유사한 사고와 표현 방식들과 마주친다. 하나만 놓고 보면 그 자체로 아주 독특하여, 때로는 해석을 거부하기까지 하지만, 다른 것과 비교하여 영향관계와 유사성을 따지면 그 구절이 품고 있는 뜻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비교를 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한 방식이다. 나와 너를 비교하고, 또 제삼자끼리의 비교를 통하여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세계이해의 본성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세계 속의 존재가 주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또 그 영향 아래서 성장하고 독창적인 창조를 해나간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 속에 위치한 인간 존재는 세계를 해석하여 자기의 것으로 내화하려 한다. 여기에 예술의 기본 충동이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은 대작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완성하는 데에 꼬박 13년의 시간을 바쳤다. 글래스고와 에딘버러 등지를 여행하고 스코틀랜드의 이국적 풍광과 역사를 익히면서 그 안의 모든 것을 그는 음악으로 번역했다. 글래스고에 부는 바람, 헤브리디스 제도의 동굴, 에딘버러에 내리는 비, 우레처럼 밀려오는 파도, 메리 여왕의 궁전 등 모든 것이 그의 손길 아래 음악으로 전이되면서 그곳의 자연과 인간, 역사 속의 아름다움과 슬픔, 고뇌는 음표들의 조화 속에서 음악으로 되살아났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예술가적 관심과 사랑이었고 자연에서 예술 언어를 찾아내려는 열정이었다.

  문학 역시 시인이 남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역사와의 소통의 흔적이다. 멘델스존이 음표로 옮겼던 것들을 문학은 문자로 옮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 속에는 시인이 겪어낸 고뇌의 침전물들이 일일이 문자로 번역되어 있다. 독자들은 시인의 고뇌의 흔적을 읽으며 시인의 영혼과 소통하고, 시인은 우리가 앓을 병을 대신 앓아준다. 독자는 현실의 압박감을 시인을 통해 벗어나기도 하며 현실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색다른 인생을 배우기도 한다. 한 마디로 시인은 독자와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연대한다. 일종의 유사요법을 통하여 독자는 약간의 고통을 이겨내고 그 결과로 새로운 삶의 활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소통을 향한 염원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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