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운명, 이 얼굴 안에 있소이다’ 관상쟁이가 사람의 얼굴로 개인의 인생과 국가의 흥망까지 판단한다는 영화 <관상>의 포스터 문구다. 하지만 영화에나 있을법한 ‘운명을 결정하는 관상’은 이미 20대의 현실에선 ‘취업을 결정하는 관상’으로 자리 잡았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6월 24일 기업 인사담당자 2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채용 시 지원자의 겉모습이 평가에 영향을 미칩니까?’란 질문에 응답자의 84.2%가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외모 경쟁력에 뒤지지 않으려 취업준비생은 지원 서류에 붙일 프로필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어주는 ‘취업사진 전문 스튜디오’를 찾는다. 면접 준비를 위해 입사를 원하는 기업이 추구하는 이미지로 ‘취업 성형’을 하는 학생도 있다. 본지 기자가 ‘취업용’ 스튜디오와 성형외과를 찾아 취업준비생은 어떤 식으로 취업을 위한 ‘관상’을 준비하는지 알아봤다.

구직처 따라 다른 표정과 자세
 

  유명한 취업 커뮤니티에서 ‘취업 사진’으로 입소문이 파다한 ‘ㅂ’스튜디오에 전화를 걸었다. 예약 가능 시간을 물어보니 편한 시간에 방문하란 대답이 돌아왔다. 하반기 취업 시즌을 지나 약간은 여유로운 모양이었다. 스튜디오 입구에 들어서니 20대 남녀 서너 명이 촬영을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메뉴판에 쓰인 취업 사진 패키지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은 의상대여, 수정메이크업, 머리 손질이 포함된 6만 원(패키지 A)이었다. 섬세한 1:1 포토샵 수정이 추가되면 9만 원(패키지 B)을, 풀 메이크업과 올림머리 등 특별한 스타일링이 필요한 경우 12만 원(패키지 C)을 내야 했다. 그나마 저렴해 학생들이 많이 택한다는 ‘패키지 A’를 골랐다.
  간단한 메이크업이 끝난 뒤 진열돼 있는 옷 대여섯 벌 중 하나를 골라 입고 머리손질을 받았다. 기업이 원하는 젊은 이미지를 위해 가르마를 숨기면서도 단정해 보이도록 머릿결을 한 방향으로 돌려세웠다. 메이크업 실장은 “얼굴에 붉은 기가 도니까 흰 셔츠와 푸른 색 넥타이가 좋아요”라며 “남성분의 머리 손질을 할 때는 옆 가르마를 차분히 하고 가르마가 보이지 않도록 왁스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면접관이 선호하거나 카메라에 맞는 메이크업을 잘 아냐’는 질문에 그녀는 “6년 동안 방송국에서 메이크업을 해 주며 일했던 경험이 있고 면접관을 직접 만나 물어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촬영을 할 때 사진사는 구직처가 원하는 이미지에 맞는 자세와 표정을 가르쳐준다. ‘어떤 직업군에 지원할 거냐’는 질문에 일단 ‘공기업’이라 답했다. 공기업은 신뢰감을 주고 진중해 보이는 이미지를 선호하기 때문에 사진사는 똑바로 앉은 채로 눈빛에 힘을 주고 이가 안 보이는 은은한 미소를 주문했다. ‘직종별 차이가 있느냐’고 묻자 감각 있어 보이는 대기업 마케팅이나 영업직에 지원하려면, 몸을 살짝 튼 자세에서 이를 내비치며 웃는 자세가 좋다는 조언을 들었다. 승무원이나 서비스업 종사자의 경우 치아를 8개 이상 내보이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는 게 일반적이다. 사진 배경도 지원하는 업종에 따라 달라진다. 법조계 같이 비교적 무거운 분위기의 사진이 필요하면 갈색 계열의 배경을, 공기업이나 대기업처럼 밝고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가 필요한 경우 파란 배경을 쓴다. 같은 배경색이더라도 얼굴을 돋보이게 하고 싶으면 단색으로 배경을 채우지만 전체적인 인상을 강조하고 싶으면 그라데이션을 준다.
  스튜디오 내 소위 ‘포느님(포토샵+하느님)’으로 불리는 포토샵 보정 담당자는 “취업준비생이나 이직준비생은 여러 곳에 입사 지원하기 때문에 다른 배경과 자세로 여러 장 찍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을 위한 사진이라 눈 크기를 키우거나 턱을 갸름하게 하기보다 좋은 인상을 위해 얼굴의 좌우 대칭을 맞추고 명암 조절로 입체감을 준다”고 말했다.

특정 직업 위한 성형도 있어
  TV에 자주 방송되는 대형 ‘ㄹ’ 성형외과에 찾아가 ‘취업 성형’ 상담을 요청했다. 명함을 주며 자리를 권하는 상담실장은 상담 이유 란에 ‘취업 성형’이라 적힌 차트를 보고는 익숙한 듯 “어떤 직업을 원하시는데요?”라고 물었다. 방금 전에도 취업을 위해 성형을 고민하는 대학생과 상담했다는 것이다. “초기에 준비를 다 해놓고 시작해야 합격한다는 생각으로 많이들 병원에 찾아와요.”
  ‘아나운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봤다. 상담실장은 “아나운서는 화려하기보다 단아한 이미지로 수술하고 화면에 나오는 직업이라 입체감을 중요시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의 코를 거울로 비춰보더니 코끝이 살짝 올라가는 ‘고양이 상’ 반버선 라인보다 직선 라인을 추천했다. 직선 라인이 화면상으로 봤을 때 좀 더 신뢰감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화면에서는 얼굴의 정면만 비치기 때문에 V라인이 중요하다며 레이저 시술을 권하기도 했다. ‘ㅁ’ 성형외과는 ‘아나운서 T존 성형’으로 유명하다. 관계자는 “아나운서의 얼굴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모델링한 결과”라며 “얼굴 중심축인 코를 높이고 이마에 지방이식을 하는 방식으로 아나운서형 얼굴형을 만든다”고 말했다.
  ‘ㄹ’성형외과에 ‘취업을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냐’고 물었다. 상담실장은 “방학 때 많이 오는데 대부분 취업 막바지라 시간이 없어 ‘쁘띠 성형’을 선호한다”며 “취업성형을 원하는 남성의 비중도 10~20%로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쁘띠 성형’은 회복 기간이 오래 걸리는 일반 성형과 달리 주사기를 이용해 ‘필러’나 ‘보톡스’를 주입하는 시술로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TV에 나오는 직업이나 승무원이 아닌 이상 큰 성형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코 높이나 코끝 모양을 잡아줄 수 있는 ‘시술’을 많이 해요.”
  ‘ㅎ’성형외과에선 ‘법조인이 되고 싶다’며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진중한 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의는 “매서운 눈을 만들기 위해 눈꼬리를 올리고 코를 오뚝하게 만들면 좋겠다”라며 “직업별로 통계된 이상적 모델은 없지만 원하는 인상을 요구하면 진단해준다”고 했다.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말에는 “부드럽고 온화하며 미소를 짓는 인상이어야 면접에서 뽑힌다”며 이미지 개선을 위한 ‘입꼬리 성형’을 추천했다.
  ‘취업 성형’을 위해 치과나 피부과를 찾는 사람도 많다. 관계자는 “치아색도 면접에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자주 웃어야 하는 직종의 경우 앞니 2개 정도를 깎아내 하얗게 만드는 ‘라미네이트’ 시술을 받는다”고 말했다. 성형외과 위층에 위치한 피부과는 ‘취업을 위해 피부과 시술을 많이 받느냐’라는 질문에 “여드름 같이 눈에 띄는 잡티가 많은 경우 깨끗한 인상을 위해 남녀 상관없이 레이저 시술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