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트로우(Lifestraw)
사회기반시설이 불충분한 아프리카에 발생하는 수인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개발된 제품. 빨대형태의 관 안에 들어있는 필터가 물속 박테리아를 99.99% 걸러낸다. 약 700L의 물을 정수할 수 있으며 하루 2L 기준 1년 사용 가능하다. 필터교환만 해주면 반영구적인 제품.

  박근혜 대통령은 7일에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개도국의 식량, 물, 에너지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과학기술의 활용이 중요하다”며 “형평성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그중에서도 ‘적정기술’의 활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적정기술’은 1960년대 독일의 경제학자 슈마허가 제창한 ‘중간기술(선진국의 자본집약적 기술과 개발도상국의 토착 기술을 융합한 것)’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적정기술’은 제3세계의 지역적 조건을 고려해 소규모 자본과 비교적 단순한 기술을 적용시켜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경기개발연구원 환경연구실 고재경 연구위원은 “적정기술은 일반적인 기술과 달리 사용자와 이용 환경이 주요한 고려 대상”이라며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사회 공동체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역시 2009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공적개발원조에 대한 지원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증가세에 힘입어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도 함께 증가했다.  고재경 연구위원은 “국내의 적정기술은 민간 부문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져 왔다”며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축적해 온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짧은 기간 내에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빵 대신 기술’, 어떻게 보급되나?
  적정기술은 지역적 조건을 기반으로 한 기술이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제품가격도 현지조사를 통해 현지인들의 지불능력에 맞춰 책정한다. 2011년에 캄보디아에 적정기술 적용제품 ‘솔라쿠커(태양열 조리기)’를 보급한 기업 ‘에너지팜’ 역시 기술이전사업 시행 이전에 직접 현지를 찾았다. 현지조사에는 기본적으로 실태파악과 시장조사, 자재조사 등이 포함된다.
  ‘에너지팜’은 현지조사에서 경제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보급지로 선정된 캄보디아 따케오(Ta Keo) 지역의 가구의 수와 총 가구의 수입, 수입원과 가계의 부채까지 모두 조사했다. 김대규 대표는 “한국에서 파견된 조사원이 102가정을 직접 방문해 50문항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말했다. 현지인들의 월수입이 한 달 평균 7~8만원 수준인데 이중 2만원을 장작을 구매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한 달 수입의 20%를 불을 때는 연료를 사용하는데 소비한 것이다.
  그 이후엔 ‘제품이 현지에서 정말 필요한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 조사 당시 캄보디아 현지인들은 비싼 가스비로 인해 나무로 불을 때고 있었다. ‘에너지팜’은 현지조사에서 ‘나무를 구하기가 수월한지’, ‘태양열을 이용한 조리에 대한 현지인들의 거부감은 없는지’, 또는 ‘적정기술 제품이 보급된다면 구매할 의사는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시행했다.
  마지막으로 시장분석과 자재조달가능 여부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제품보급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면 ‘시험 프로젝트’가 실시된다. 김대규 대표는 “시험적으로 현지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솔라쿠커’ 3대를 만들었다”며 “이후 제품이 현지에 적용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솔라쿠커’는 순수히 태양열만을 이용한 조리기로 5인 가족의 밥을 20분 만에 짓는 제품이다. ‘솔라쿠커’의 보급 이후 현지인은 이를 이용해 튀김, 채소볶음 등 다양한 요리를 즐겨먹는다. 또한 비싼 가스비용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수저와 국자의 소독도 할 수 있게 됐다. ‘에너지팜’은 현재 캄보디아에서 기술이전과 교육을 통해 현지인으로 구성된 소기업이 경제적, 기술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국제구호개발 NGO단체인 굿네이버스 적정기술센터는 겨울이 길고 추운 몽골에 ‘G-saver(축열기)’를 지원했다. 한겨울이면 영하 5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몽골에서 난로는 필수적인 장비다. 하지만 현지에선 값비싼 연료비로 인해 난로를 사용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난로 구입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역주민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지하도의 온수관 근처에 거주하다 심각한 화상이나 동상을 입기도 한다. 그나마 있는 난로도 유연탄을 사용하는 것이라 질식사 등의 위험도 다분하다. 굿네이버스가 이러한 지역적 상황을 고려해 국내에서 개발, 보급한 축열기 ‘G-saver’는 연료의 소비량을 40% 감소시키고 난방 성능은 향상시켜 몽골 가정 경제에 큰 도움이 됐다. 굿네이버스 적정기술센터 사업팀 송해리 씨는 “몽골 지방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현재 총 1만 대를 보급했다”며 “지속적인 기술 보급을 통해 현지인의 자립을 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G-saver’는 한 해 동안 약 15억 원의 비용과 8천 톤의 석탄 사용을 감소시켰다.

한국에 적용되는 적정기술
  보통 적정기술은 제3세계를 대상으로 한다고 여겨지지만 선진국에서도 적정기술이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태풍 카트리나 발생 후 도시 재건과정에서 피해지역의 잔재를 재활용해 가구를 만드는 프로젝트인 ‘You Orleans’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애틀란타에선 노숙자들을 위해 ‘매드하우저 오두막’이라는 간이 숙소가 보급되기도 했다. ‘매드하우저 오두막’은 자원봉사단체 ‘매드하우저’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고무, 못, 베니어판, 플라스틱, 55갤런 드럼통 등)를 통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든 오두막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적정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고재경 연구위원은 “여러 분야에서 개별적으로 국내 실정에 맞는 적정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행복나눔재단’에서 개최한 ‘적정기술페스티벌’에서  2011년 동상을 수상한 ‘폐지 수거형 안전 리어카’와 2012년 투표상을 받은 ‘사랑의 보일러’ 등을 한국형 적정기술로 볼 수 있다. 행복나눔재단 사회적기업 지원팀 박연이 매니저는 “국내 적정기술에 대한 일련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며 “제품개발을 지원해 지속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국내 시장조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적용될 수 있는 적정기술 제품을 개발해 빈곤계층과 독거노인을 돕는 사회적 기업도 있다. ‘바이맘’은 국내의 빈곤 계층의 겨울철 거주 환경이 열악한 것을 고려해 적정기술을 적용한 실내용 텐트를 개발했다. ‘바이맘’ 김민욱 대표는 “최소한의 난방만 된다면 텐트가 열을 잡아줘서 사람의 숙면에 필요한 18~22도의 온도를 유지한다”며 “약 2달 정도의 교육만으로도 쉽게 텐트를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맘’의 텐트는 현재 지자체 등에서 지속적인 공급 요청을 받고 있어 한국화 된 적정기술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바이맘’은 이를 바탕으로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기도 했다. 김민욱 대표는 “직접 현장을 방문했을 때 국내 소외계층이 처한 현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국내 소외계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적정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제작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바이맘’은 국내 여름철 폭염에 대비할 수 있는 초절전 에어컨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당장은 한국의 지역적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적정기술에 대한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 고재경 연구위원은 “인프라 접근성이 낮은 농촌, 산촌, 도시 취약계층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문제 해결형 적정기술 개발과 적용이 필요하다”며 “관련 협동조합 등 지역의 자발적인 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