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종 명예교수
사진제공 | 한비미디어

‘기생충학 박사 제 1호’ 우리나라 기생충 박멸의 주역인 임한종(의과대 의학과) 명예교수는 개구리 기생충연구를 계기로 60년 간 기생충학의 외길을 걸어왔다. 임한종 명예교수는 기생충학 연구뿐 아니라 중국과 라오스, 아프리카에서 기생충 퇴치사업을 하며 한국 기생충학의 국제화에 기여했다. 기생충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평생의 여정을 그의 저서 <기생충학 리포트- 중랑천에서 빅토리아 호 코메 섬까지>를 바탕으로 돌아봤다.

감염자 구제의 열망에서
  임한종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과학전람회 출품작을 고민하던 중, 한 선생님으로부터 ‘개구리 기생충’을 조사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당시 ‘기생충’을 처음 접했지만, 1949년 개구리 기생충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후 그는 기생충 학자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다. 이듬해 일어난 한국전쟁은 많은 사람에게 극도의 빈곤과 기생충 감염의 고통을 안겼다. 1954년 무렵 의대생이 된 그는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을 구제해 인류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당시 학문의 황무지였던 기생충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임한종 교수는 “내가 기생충학을 하고자 한 것은 오직 나의 뜻에 의한 것이기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고 노력할 뿐이었다”고 밝혔다.

전국적 대변검사 실시
  1960년대 말 한국은 ‘기생충 왕국’이라 불릴 만큼 기생충 감염률이 높았지만, 전국 규모로 시행할만한 경제적인 기생충 감염 검사법은 부재했다. 그러던 중 임한종 교수는 1969년 일본 가토 가쯔야 박사가 고안한 가토법, 즉 셀로판후층도말법를 접한다. 이 검사법은 커버글라스 크기의 셀로판지, 말라카이트 그린 색소, 글리세린 한 병씩만 준비하면 될 만큼 간단하고 경제적이었다. 그는 시약값이 비싸고 긴 시간이 소요되는 기존의 검사법인 집란법과 비교해 가토법이 대량 검사에 더욱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1970년부터 1995년까지 ‘기생충박멸협회’는 이 검사법을 사용했으며 전국 800만 학생의 대변 검사가 가토법을 이용해 연 2회씩 이뤄졌다. 임한종 교수는 “가토법을 사용해 별 어려움 없이 대변검사를 수행하였고, 경제적으로도 채산에 맞아 우리나라 기생충 박멸에 크게 공헌했다”고 밝혔다.

구충제를 찾아
  1960년대 초만 해도 농촌 뿐 아니라 서울 인구의 20% 이상이 구충, 50% 이상이 회충, 90% 이상이편충에 감염돼 있었다. 특히 구충, 회충, 편충, 요충 등 네 가지 종류의 기생충에 중복 감염되는 사람이 많았지만 당시 여러 기생충에 광범위하게 작용하는 구충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77년 독일의 한 제약회사가 뇌낭미충증 치료 효과가 예상되는 신약 ‘프라지콴텔’을 개발했다. 임한종 교수는 인체실험을 해도 좋으니 연구해 달라 부탁했던 뇌낭미충증 환자에게 이 약을 투약했다. 그는 신약의 치료효과를 증명하고, 동시에 이 약제가 흡충류와 조충류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수 년에 걸쳐 밝혔다.
  한편 한국 제약회사인 신풍제약은 여러 기생충에 작용하는 구충제 ‘프라지콴텔’을 새롭게 합성해 경쟁력 있는 가격에 판매했다. 임한종 교수는 “이후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를 능가하는 약제는 나오지 않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구충제 생산국이 됐다”고 했다.

어육생식의 식습관을 버려야
  1971년 84.3%였던 기생충 감염률은 1997년 2.4%로 감소해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의 기생충 퇴치사업 성공을 인정했다. 그러나 임한종 교수는 “한국의 기생충성 풍토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이성 흡층류 감염을 유발하는 습관과 풍습을 개선해야한다”고 당부한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깨끗한 하천을 찾아가 민물고기 회를 즐겨 먹기 때문이다. 때로는 보신을 위해 도롱뇽 알, 개구리 알, 올챙이나 개구리, 뱀 등을 건강식품이라며 날로 먹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흡충류 애벌레를 내포하는 이런 동물을 날로 먹으면 흡충류 벌레가 몸속의 간이나 폐 혹은 창자 속에서 성충으로 자라 여러 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생충학의 국제화
  임한종 교수는 중국, 라오스와 아프리카에서도 우리나라 구충제를 갖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H)과 굿네이버스 등의 협조를 받아 기생충 퇴치사업을 전개했다. 그는 이 사업에 대해 “1994년 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이 됐을 때, 과거 한국 기생퇴치에 일본이 지원해 줬던 것을 상기해 기생충으로 고통 받는 주변 나라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09년 말 라오스에서 귀국하던 중 임한종 교수의 척추 끝부분 선골은 골절되고, 심한 골다공증으로 골반에 골절이 생겨 거동이 불편해졌다. 당시 그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지원한 아프리카 므완자 소외열대병 퇴치사업(NTD Clinic)을 준비하고 있었다. 임한종 교수는 “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열과 성을 쏟았던 사업의 하나인 므완자 NTD Clinic를 내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소명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300%의 능률을 발휘하라
  임한종 교수는 본교 재직시절 기생충학 교실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항상 ‘300%의 능률’을 발휘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때는 100%의 능률이 발휘된 것이고, 남이 꺼리는 일을 하면 200%를 발휘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300%라는 것은 여기에 더해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임한종 교수와 같이 일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충족시켰고, 그가 교수로 재직했던 25년 동안 70여 명에게 박사 학위를 줄 수 있었다. 임한종 교수는 기생충학의 미래에 대해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계속 배출되는 한 우리나라 기생충학의 장래는 매우 밝다”고 전망했다.

*흡충류: 몸이 좌우대칭으로 편평하며 표면이 각피로 덮여있다.
*조충류: 사람에게 기생하는 가장 길어 외관이 끈 같은 기생충이며 촌충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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