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 멘토링을 겸한 학과 가을 답사를 위해 화성 제암리교회 3.1만세 운동 유적지를 찾았다. 화성 제암리교회는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널리 알려진 일제 강점기 항일 운동 관련 유적지다. 1919년 4월 화성 발안 장터에서 있었던 대규모 만세운동에 대한 앙갚음으로 일제 경찰은 제암리 주민들을 교회 안에 가두고 처참하게 불 지르고 총칼로 살육하였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전시관의 자료를 둘러본 뒤 23인의 순국 희생자들의 유해가 안장된 묘지 앞에 섰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함께 숙연하게 묵념의 시간을 갖았다. 짧은 애도의 시간이었지만, 더 없이 소중한 역사 공부의 장이었다.

  역사에 대한 정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E. H. 카의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이다. 간혹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인용하기도 하지만,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역사이다. 대화의 주체는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살아있는 우리다. 카의 정의는 역사의 현재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고 하였다. 이 역시 역사의 현재성을 강조한 정의다.

  화성 제암리교회 사건은 당시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일제의 은폐 때문이었다. 제암리교회의 참사가 제대로 알려지고 바로잡아진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의 일이었다. 어떤 사건에 대한 당대의 부당한 평가가 시간이 지나 바로잡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산 속에서 산이 보이지 않고, 제 눈의 들보가 보이지 않듯이, 한 발 떨어지니 시점에서 바라볼 때 그 실체를 제대로 보게 된다.

  역사는 과거를 대상으로 하지만, 사실 현실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역사를 단지 과거의 사실로만 보고 현실과 연결해 인식하지 못한다면 눈 뜬 장님과 다를 게 없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실을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는 두 개의 눈을 얻기 위한 것이다.

  과거의 사실만 바라보는 것은 벼랑 끝에 서있는 처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먼 산만 바라보는 것과 같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먼 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처지부터 둘러보는 것이다.

  화성 제암리 교회 사건은 단지 100년 전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살아있는 역사다. 순국 희생자 묘지 앞에서 느꼈던 우리의 현실 인식이 우리의 미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하게 된다. 이처럼 역사는 현실의 처지를 둘러보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힘을 마련해 준다. 바로 여기에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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