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학사 역사 교과서 논란이 뜨겁다. 교과서를 제작한 뉴라이트 진영은 교학사 교과서를 '자유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명시'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진영에서는 '갖가지 오류가 난무하는 친일 교과서'로 비판하기도 한다. 두 진영은 왜 서로를 비판하는가? 역사적 사실을 보는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는 방법은 특정한 사관에 의존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하다. 고대신문이 역사를 보는 또다른 방법을 탐구해 보았다. - 고대신문

 

  학생들을 인솔해 역사 유적을 답사할 때마다 필자는 다음의 세 가지 모습에 대해 고민하고 확인할 것을 주문한다. 첫째, 역사 유적이 품고 있는 시간(時間)의 의미, 둘째, 역사 유적이 놓여 있는 공간(空間), 셋째, 유적을 남긴 인간(人間)의 모습.

  모든 역사 유적에는 이 3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의 본령이다. 역사가 품고 있는 세 가지 의미   가운데 공간(空間)이 바로 지리(地理)와 관계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대할 때 시간의 흐름만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의 흐름만이 아니라 공간의 확장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사의 의미에서 공간의 의미도 시간성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그들의 여러 가지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선택하여 생활의 터전을 삼았다. 그리고 죽음이 현세의 삶의 연장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적절한 무덤자리를 고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풍수지리학과 명당 개념도 등장하였다. 이처럼 인간의 삶 속에서 공간과 자연지리 환경 문제가 중요하였기에 근대 학문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탐구하고자 지리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하였다.

  기본적으로 지리학에서는 땅이 수확의 터전임을 깨달아 인간이 자본과 노동력을 투입하여 결실을 거둔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반면 역사학에서는 주어진 자연 공간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방법과 지혜를 고민한다. 이처럼 인간을 이해하는 역사학에는 지리학적 인식이 기본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지리적 관점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자연 환경이 가지는 중요성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하고자 노력하였다. 『산수고』를 쓴 신경준이나 『아방강역고』와 『수경주』를 쓴 정약용, 『택리지』를 쓴 이중환 등은 조선 후기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가 지역 내지 국토의 공간 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역사 서술에 적용하였다. 국토의 경계와 지도 그리기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근대 역사학계 이병도 등의 실증적 역사학의 바탕이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는 동북공정과 독도 문제로 중국․일본과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역사분쟁을 치르고 있다. 동북공정을 예로 들면, 이 주장은 만주(滿洲) 고대사(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중국사라는 논리를 일반화시켜 남북한의 ‘만주 수복론’이나 ‘고구려 영토는 한국땅’이라는 주장에 쐐기를 박고 조선족 사회에 (통일)한반도의 영향력을 차단코자 하는 의도가 강한 주장이다.

  이 주장을 통해 중국은 남북통일 이후에 자칫 불거져 나올지도 모르는 국경과 영토 분쟁에 효율적으로 대비하여 영토 문제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 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과거 역사 속의 민족이나 왕조의 귀속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동북공정의 논리는 ‘영토 지상주의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 분쟁이 아니라 중국의 동북아 전략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한 국가의 중요한 정치 전략의 밑바탕에는 이처럼 역사 문제와 지리(영토)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국가 간의 분쟁에 역사의 귀속 문제와 영토 문제가 주요한 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지리적 관점에서의 역사 연구는 기본이자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송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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