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학사 역사 교과서 논란이 뜨겁다. 교과서를 제작한 뉴라이트 진영은 교학사 교과서를 '자유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명시'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진영에서는 '갖가지 오류가 난무하는 친일 교과서'로 비판하기도 한다. 두 진영은 왜 서로를 비판하는가? 역사적 사실을 보는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는 방법은 특정한 사관에 의존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하다. 고대신문이 역사를 보는 또다른 방법을 탐구해 보았다. - 고대신문

  
김판수
창원 문화원 이사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나 사건들의 다 모아도 역사가 성립하지 않는다. 많은 사실과 사건들을 모두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역사가는 많이 쌓인 사료(史料)를 정리하면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역사가가 이런 실천적 개입(사실(史實)을 해석하는 방법)을 우리는 사관(史觀)이라 부른다. 이 중 민중사관은 역사발전 주체가 민중이라고 보는 사관이다.

   민중사관은 우리 역사, 특히 근현대사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주 4·3사건이다. 제주 4.3 항쟁의 성격규정은 현상에 대한 민중적 해석에 근거해야 한다. 민중이 현실의 삶속에서 시대적 과제를 수용하며 실천하는 것이 역사이다. 민중의 요구와 실천이 시대문제와 어떻게 맞물리는 가하는가에 대하여 민중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해석돼야 한다. 제주 4.3민주항쟁 본질은 항쟁의 주체와 내용 방법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상황전개 속에서 민중의 삶의 투쟁을 보아야 한다. 제주항쟁 주체는 민중이었다. 제주 항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미군정의 무책임이었지만 제주민중들은 독립적자치주의 사상과 민중의 평등을 이루는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노력했다.

  해방 후 토지개혁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1946년 3월 5일 6개장 24개항의 북조선토지개혁법을 제정 공포하여, 3월말에 완료하였고, 6월20일까지 약 72만호의 농가에 95만여 정보의 토지소유증면서가 교부되었다. 북한의 농촌에서는 일제잔재와 봉건적인 관계가 사라지고 농민이 호당 1.5정보의 토지를 가지게 되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원칙으로 한 토지개역에서 토지는 국가였지만, 경작자는 농지를 운영하는 개인이었다. 수백년은 봉건적 토지 소유를 타파하고 ‘민중 주도’의 토지소유가 시작된 것이다. 남한 역시 귀속농지 분배, 농지개혁법시안 시행 등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많은 한계가 있긴 했지만 봉건적 및 반(半)봉건적의 지주적 토지소유제가 ‘농민의 토지소유’로 전환된 점은 고무적이다.

  이처럼 역사는 수많은 민중들의 주도권 다툼 등으로 이어져 왔다. 역사 교과서는 이 같은 다양한 사관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논란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교과서 논란은 현실정치세력과 연계되면서 과도하게 정치화되었고. 또한 이념 성향이 강한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학자들의 논쟁 없이 소모적 정쟁을 부추겼다. 좌, 우파 학자들 사이에 성숙한 학술 논쟁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역사학자들 간에 학술적이고 합리적인 논쟁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의 국정교과서 논란은 “시비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렵다(常恐是非 聲到耳-籠山停)”.

  국정교과서 문제에 좌, 우 화합의 정신은 중용에서 찾을 수 있다. 중(中)은 세상의 정도(正道)요, 용(庸)은 천하의 정해진 이치(理致)다. 중용(中庸)에 이러기를 “오직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아야 그 중용의 길을 잡는다(惟精有一 允執厥中)”고 했다. 정밀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좌, 우가 합심 국정교과서만큼은 반드시 통일된 의견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김판수 창원 문화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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