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이 허술한 원룸과 고시원, 하숙 등이 밀집해 있는 대학가는 범죄 취약 지역 중 하나다. 도난 사고가 빈번하고 성범죄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본교 주변의 종암동과 제기동의 경우 인적이 드문 골목이 많고 설치된 CCTV 역시 사각지대가 존재해 학생들은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김영현(가명·문과대 독문11) 씨는 “법대 후문에서 납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며 “인적이 많은 곳으로 뛰어 나와서야 겨우 위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본교 주변과 같은 범죄 취약 환경을 위한 디자인이 존재한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범적으로 셉테드 디자인(CEPTED : 범죄예방디자인)을 적용해 환경을 개선한 마포구 염리동을 직접 방문에 그 효과와 한계에 대해 알아봤다.

셉테드로 재탄생 한 염리동 소금길
  지역 자체가 외지고 수많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흡사 미로와 같았던 마포구의 이 조그만 동네는 셉테드의 적용으로 재탄생했다. 기자가 직접 방문한 소금길은 ‘길’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예술적이었다. 칙칙할 것이라 예상했던 골목엔 다채로운 색깔의 담벼락과 그림들이 자리했다. 서울시청 문화관광디자인본부 디자인정책과 권은선 주무관은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 염리동을 최종적으로 선정한 것”이라며 “범죄발생빈도는 낮아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박영길 마포구의원은 “셉테드 디자인이 적용돼 동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아졌다”며 “동네가 활력을 되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형사정책연구원에서 셉테드 디자인 적용 전후에 각각 진행한 지역주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역주민들이 느끼는 범죄 두려움은 9.1%하락했고 가족이 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역시 13.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이라는 소재로 거리의 분위기를 ‘운동하는 길’로 탈바꿈 시킨 것도 인상적이었다. 골목을 따라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배치돼 있었다. 거리 곳곳에 익살스러운 캐릭터가 그려진 게시판을 설치해 ‘탄탄한 허리 만들기’, ‘스트레칭’ 등의 운동법을 소개했다. 또한 가파른 경사의 계단에는 계단을 오를 때 마다 소모되는 칼로리량과 늘어나는 수명을 표시해 재미를 더했다. 서울시의 셉테드 디자인프로젝트에 자문역을 맡았던 이경훈 교수는 “운동의 요소를 더해 셉티드 디자인의 활성을 극대화시키려는 시도”라며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운동하도록 유도해 거리감시능력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깨끗하고 활기찬 분위기의 조성은 잠재적 범죄자에게 ‘사회적인 통제력이 강하다’라고 인식하게 만들어 범죄 심리를 위축시킨다.

  염리동에 적용된 셉테드 디자인은 범죄예방 효과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박영길 의원은 “셉테드 디자인 적용 후 소금길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온 외국인들과 방문객이 증가하고 있다”며 “방문객의 증가가 결과적으로는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파생효과를 창출해 냈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동네에 대한 전체적인 애착도도 증가했다. 프로젝트에 진행 당시 30가구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색과 보수 등에 동참하며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보였다. 설문조사의 애착도에 관한 항목에서는 염리동 주민이 동네에 느끼는 애착도가 이전보다 13.8%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발전연구원 이형복 연구위원은 “사업 진행 속에 주민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여 주민들에게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불어 넣어 준 것이 가장 큰 효과라 생각한다”며 “지역의 애착심은 곧 범죄예방의 가장 큰 수단이다”고 말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
  염리동에 적용된 셉테드 디자인이 동네 활성화, 지역주민 불안도 감소 등 긍정적 작용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범죄예방의 효과를 가져왔다고 판단하기에는 섣부르다. 이경훈 교수는 “아직까지 범죄예방 효과에 대해 예단해서는 안 된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앞으로의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밤 시간대에 찾은 소금길은 ‘범죄예방디자인’의 효과가 있다기엔 아직 불안해 보였다. 가로등에 설치된 비상벨을 제외하면 지역주민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노란색 가로등은 골목을 충분히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미적인 요소에 치중한 골목은 어두워지자 시각적인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몇 개 존재하지 않는 ‘소금지킴이집’은 위험 상황이 근처에서 발생할 경우에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 한계가 있었다. 대학생 정희은(가명, 여·20) 씨는 “너무 미적인 요소에만 치중한 것 같다”며 “골목이 화사해졌다는 것 이외에 딱히 안전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차이점을 못 느끼겠다”고 말했다.

  셉테드 디자인의 실효성이 너무 과대평가 됐다고 말하는 지역주민들도 있었다. 소금길 입구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김진원(가명, 남·47) 씨는 “여러 이로운 점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적용 전과 달리 크게 안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며 “예산만큼의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운동’이라는 소재로 거리의 감시능력을 증가시키려는 노력도 한계가 있었다. 이경훈 교수는 “사전조사 당시 주민들의 상당수가 저녁 늦게 귀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할지 의문”이라며 “애초 계획한 길거리 감시능력의 증가를 효과적으로 발휘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셉테드 디자인의 적용이 오히려 마포구 전체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좋지 않게 만든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미경(가명, 여·38) 씨는 “셉테드 디자인 적용 후, 염리동을 무슨 빈민가처럼 알고있는 분들이 많아 굉장히 속상하다”며 “좋은 취지인 것은 알지만 디자인 적용지역을 선정할 때 해당 지역에 대해 정보를 명확히 공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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