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최다희 전문기자

  ‘휴대전화 안 쓰기’란 게임이 있다. 최근 생겨난 이 게임은 친구들과의 모임이 끝날 때까지 휴대전화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규칙이다. 한 곳에 모아둔 휴대전화를 도중에 먼저 사용하는 사람은 그 모임의 밥값을 모두 내야 한다. 이 게임은 사람을 만나도 스마트폰에 빠져 대화가 오가지 않는 우리들을 비쳐준다.       
  정말로 고대생은 하루에 얼마나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윤경민(문과대 한문12), 김슬기(문과대 한국사12), 장윤미(문과대 국문12), 반현진(의과대 의예13), 김경민(문과대 국문11), 조병현(문과대 인문13) 씨에게 6일부터 13일까지 ‘디지털 기기 사용 일지’를 받았다. 기사에는 일지 중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부분을 중점으로 모아 정리했다. 

#. 윤경민(문과대 한문12) - 11월 6일 수요일
“3,4교시 ‘삼국유사 읽기’ 수업은 필기양이 많아 손 필기 대신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서관을 나오며 페이스북에 들어가 뉴스피드에 뜬 친구들의 게시 글을 보던 중 친구의 생일이라는 알람이 떴다. 친한 친구여서 작년까지만 해도 자정이 되자마자 축하 메시지를 남겼는데 올해는 까맣게 잊었다. 친구가 섭섭해 할까 급하게 친구의 타임라인에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저녁에는 한 달 전 친구와 약속해둔 청계천 등불축제에 가야했다. 안암역 계단을 내려가면서 폰에 설치된 ‘Smarter Subway’라는 어플을 이용해 경로를 검색했다. 출발역과 도착역만 입력하면 노선도를 보면서 환승역과 방향을 일일이 찾지 않아도 된다. 등불축제를 보며 청계천 주변을 지나가다가 익숙한 노래가 들렸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았다. 네이버 음악 검색을 이용해 노래 제목을 찾았다. 한동안 반복해서 듣던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였다.”

#. 김슬기(문과대 한국사12) - 11월 7일 목요일
“얼마 후에 있을 반 행사 때문에 선배와 후배에게 행사 참여여부를 묻는 문자를 돌렸다. 문자 내용이 길고 보내야 할 대상이 많아서 복사, 붙이기 방법을 이용했다. 쉬는 시간에는 12일 생일인 친구의 선물을 고르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했다. ‘친구 생일 선물’이라고 검색하니 자동으로 연관검색어를 제시해 고민 없이 적당한 선물을 고를 수 있었다. 친구 생일날 함께 홍대에 놀러가기로 해 스마트 폰 인터넷을 통해 맛집, 좋은 카페 등을 검색했다. 당일 헤매지 않기 위해 출발지를 홍대역으로, 도착지를 카페로 길 찾기 검색을 해 화면을 캡처했다.”

#. 장윤미(문과대 국문12) - 11월 8일 금요일
“현재 KUBS 국원으로 오늘은 내가 KUBS 점심 방송 모니터를 할 차례였다. 스마트 폰 어플로 방송을 들으며, 메모장에 모니터링 내용을 입력했다. 방송국 동기에게 방송 배경음악과 관련해 할 얘기가 있어 전화를 걸었다. 물론 전화번호는 외우지 못해 이름으로 검색해서 통화를 했다. 2교시 ‘교양서어중급’ 수업을 듣다 익숙한 단어가 갑자기 기억나지 않아 바로 사전 어플을 켜 찾았다. 강의 시간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가야 하는데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아 스마트 폰 갤러리에 캡처해둔 시간표를 확인했다.
과외가 있는 날이라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뽑아야 하는데 몇 년도 기출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얼른 스마트 폰 메모장에 적어둔 것을 보고 기억해냈다.”

#. 반현진(의과대 의예13) - 11월 11일 월요일
“저녁에 친구와 카페에 가 헤이즐넛 카푸치노를 결제한 뒤 포인트 적립을 위해 모바일 지갑 어플을 이용했다. 어플이 있으면 포인트 조회를 위해 영수증을 체크할 필요가 없다. 집에 와서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주에 실험한 내용과 관련해 작성해야 했다. 실험 결과를 일일이 기록하기 힘들어 사진으로 찍어두었는데 보고서 작성에 도움이 됐다.”

#. 김경민(문과대 국문11) - 11월 12일 화요일
“용돈 관리를 위해 가계부 어플을 설치했다. 매번 입출 내역을 기록하기 힘든 나에게 어플은 매우 유용하다. 오늘도 친구와 점심을 먹고 체크카드로 7000원을 계산하니 이용내역이 핸드폰 문자로 오고 동시에 문자를 인식하는 가계부 어플에 자동 저장됐다.
5교시 수업을 들어가니 교수님께서 다음 주 휴강이라고 하셔서 스마트 폰 배경화면에 있는 달력에 바로 기록했다. 집에 와서 엄마와 얘기를 하던 중 모레인 금요일에 무슨 일정이 있는데 기억나지 않아 바로 일정 어플을 확인했다. 그런데 아무 일정이 적혀 있지 않아서 날짜를 봤더니 엄마 생신이었다.”

#. 조병현(문과대 인문13) - 11월 13일 수요일
“책을 반납하기 위해 중앙도서관에 갔다. 오늘이 반납일인지 몰랐는데 도서관에서 오늘까지 반납해야 한다고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수업 후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카카오 톡을 보냈다. 친구가 강의실이 어디인지 물어봐 몇 호인지 말해주려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 위치로 설명했다.”

 

일러스트 | 최다희 전문기자

 디지털 기기 의존 수준 심각
  일지를 보면 6명의 학생들 모두 전반적으로 기억과 인지기능을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본지가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귀하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 80% 이상은 sns나 메신저를 통해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100명 중 47명이 ‘예’라고 답했으며, ‘귀하는 중요한 메모나 스케줄은 주로 스마트 폰에 메모합니까?’라는 질문에 본교생 100명중 77명이 ‘예’라고 답했다. 이민수(의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식의 지나친 디지털 기기 사용은 정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집중은 어렵게 하고 피상적인 사고와 산만한 생각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일주일 간 일지를 작성한 학생들 역시 본인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놀라긴 마찬가지다. 일지를 작성한 학생 모두 하루를 스마트폰 알람으로 시작해 등교 길, 수업시간, 쉬는 시간, 식사 시간, 심지어 친구와 만나고 있는 상황에서까지 디지털 기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디지털 기기를 충전기에 꽂는 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슬기 씨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까지 편리하단 이유로 스마트 폰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조병현 씨 역시 “생각해보면 최근 무언가를 고민하고 직접 해결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는 것 같다”며 “너무 당연하게 스마트 폰으로 검색하고 생활에 편한 어플을 다운받아 사용한 태도가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치매 아닌 중독이다
  단순한 건망증과 같은 일시적 현상으로 현세대가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입장도 있다. 디지털 치매는 새로운 기술에 부적응을 보이거나 신기술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로 병리적 현상이라기 보단 하나의 사회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시각에선 ‘디지털 치매’가 아닌 ‘디지털 중독’으로 이러한 현상을 명명한다. 일지에서 드러나는 학생들의 태도 역시 디지털 치매가 아닌 오남용 증상으로 바라본다. 박건우(의과대 신경과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으로 메모를 하고, 필요한 부분을 캡처하고, 계산기를 이용하고, 방대한 정보를 바로 검색하는 것 등이 병이 될 수는 없다”며 “일지에서 보듯이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의 문제는 ‘지나침’에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디지털 중독의 기준은 무엇일까. 디지털 기기가 없으면 불편할 뿐 불안하지 않다면 중독은 아니다. 하지만 불안하기까지 하다면 디지털 기기 중독이 의심된다. 박건우 교수는 “디지털 치매는 의학적 치매와 같이 뇌에 병이 생긴 것이 아니며 인지기능의 감소가 일상생활을 어렵게 할 정도도 아니다”며 “디지털 기기의 사용 문제는 디지털 치매보다는 중독으로 이어져 다른 형태로 인체에 해가 되는 것이 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중독의 관점에선 이러한 현상이 뇌의 기능 저하뿐만 아니라 신체적 문제로 이어진다고 본다. 디지털 중독으로 인한 다른 신체적 손상은 △전자파의 뇌종양 유발 △장시간 컴퓨터 사용으로 인한 근시의 위험 △자기 전 TV나 컴퓨터에 의한 밝은 빛의 수면 방해 등이 있다. 또한 현 시점에서 가장 무서운 부작용은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다니는 우리의 생활태도다. 박건우 교수는 “귀에는 이어폰을, 눈에는 스마트 폰을 고정한 상태로 도로를 보행하는 것은 음주보다도 더 위험하다”며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는 것보다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은 습관만 바뀌어도
  디지털 치매를 방지하고 치료하기 위해선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일상생활의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민수 교수는 “아직까지 의학적으로 확립된 예방법이나 치료법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며 “가능한 뇌를 자주 이용하고 잦은 자극에서 벗어나 사색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뇌를 자주 이용하기 위한 방법은 △암산하기 △전화번호를 직접 눌러서 통화하기 △내비게이션 없이 길 찾기 △메모할 내용은 직접 타이핑하거나 스케줄러에 옮겨 적기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적합한 경로 구상하기 등이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기억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손 글씨를 자주 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박건우 교수는 “손을 움직이면 뇌의 운동 영역과 연관되어 있는 여러 뇌 영역을 자극할 수 있어 기억이 더 잘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경세포인 뉴런을 자극하여 기억력 감퇴를 막는 방법으로 △휴대폰 번호 외우기 △애창곡 가사 외우기 △일기 쓰기 △ 독서 등이 있다. 이민수 교수는 “독서의 경우 뇌의 언어, 기억, 시각적 처리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 집중력, 이해력,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며 “반면 인터넷 사용자는 문제 해결이나 의사 결정과 관련된 부분만 집중적으로 활성화돼 동일 능력을 저하시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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