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 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라는 잘 알려진 조지훈의 시 「승무」가 있지 않던가. 최근에 상재된 최동호의 시집 『공놀이하는 달마』를 읽으면서 문득 떠올린 것이 바로 지훈의 시와 그 작품세계이다. 최동호의 시집은 지훈의 시가 그러했듯이 신성과 세속의 갈등 속에서 삶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천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새벽녘 푸른 산들바람이 쓸어놓은
물이랑 빗자루 길
 
잠 못 든 밤의 끄을린 기침소리
부처님의 나루터 앞 나뭇잎에 띄우고
 
겨울바다 멀리 연꽃 피우러 갈
붉은 가랑잎 법당 한 채
 
「백담사 나뭇잎 법당」
 
시집에는 백담사 등의 사찰, 달마나 원효 같은 스님, 『선문염송』 같은 불서, 그리고 ‘여보게! 차나 한 잔 마시게나’와 같은 선사의 화두 및 ‘채찍 그림자’ 등 불경 속의 용사와 비유가 빈번히 등장한다. 말하자면 시집에는 불교적인 세계관과 상상력이 지속적으로 관류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것은 빗자루와 ‘길을 쓰는’이라는 시적 상징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것을 선적(禪的) 사유의 시적 상관물이라고 불러 볼 수는 없겠는가? 시집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쓸다’와 빗자루의 상징은 실상 온갖 오욕칠정의 번뇌망상으로 가득찬 사바세계에서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으로서의 삼독(三毒)과 집착과 애착, 원착(怨着)으로서의 삼착(三着)을 벗어나기 위한, 아니 벗어나고자 하는 안간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란, 아니 우리의 세속적 삶이란 항상 때 끼고 녹슬며 온갖 쓰레기로 뒤덮여 가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여기에서 바로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라는 연작시의 속뜻이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과 같은 불연속의 시대, 불확정성의 삶 속에서 참나, 즉 진아(眞我)를 찾는 일이고 출출세간(出出世間)으로서 깨침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려는 구도의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세속적 삶 속에서 끊임없이 엄습하는 불안과 외로움, 갈등과 허무를 극복하고 자신의 주인공을 찾고자 하는 구도행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시집 『공놀이하는 달마』의 전체적인 함의가 드러난다. 그것은 참나를 찾고 본래 면목을 ‘지금 여기’의 삶 속에서 회복함으로써 현실 속에서 극락을 찾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구도의 시, 증도가의 성격을 지닌다고 하겠다.

 
‘천천히 혼자 거닐 수 있는/ 서늘한 앞마당 어딘가에 있었으면// 조용히 떫푸른 녹차 한 잔/ 잔잔한 미소 띄워 영원처럼 마시고// 꼬리치는 삽살개 소리나 어쩌다/ 찰랑이는 바람결도 외로운 귓가에 들었으면’(「녹차 한 잔의 미소」)
 
과 같은 여유로운 청정심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 점에서 이 시집은 백장화상의 들오리이며 유마의 한가지 도리(白丈野鴨子 維摩不二法門)의 경지를 노래한 증도(證道)의 시라고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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