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하숙의 현관은 도어락 하나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있다.
사진 | 이지민, 정지혜 기자 news@

  이승호(보과대 생체의공09) 씨는 10월 31일 자신의 하숙집에서 노트북 등 고가의 물품을 도난당했다. 범인은 하숙집의 나무문을 부수고 침입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25일이 지난 11월 25일까지도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승호 씨는 “문 잠금장치가 그렇게 쉽게 부서질 줄 몰랐다”며 “다른 하숙생도 방의 잠금장치만 믿을 것이 아니라 보안에 철저히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가는 절도를 비롯해 강도, 성폭행 등의 침입범죄가 증가하는 추세다. 본교생이 거주하는 안암동, 종암동, 보문동 등도 안심지역이 될 수 없는 실정이다.

비밀이 아닌 잠금장치
  학생 거주지가 밀집한 ‘개운사길’과 ‘개운사2길’의 하숙집 30곳을 방문한 결과 별다른 노력 없이도 출입할 수 있었다. 개운사길에 위치한 하숙·원룸 15곳 중 13곳(87%)이 1층 출입문에 도어락을 설치했지만 개운사2길 주거촌은 15곳 중 3곳(20%)만 1층에 도어락을 설치했다. 도어락이 설치되지 않은 곳 중 CCTV 설치 스티커를 붙여둔 곳도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도어락이 없는 14곳 모두 기자가 직접 들어가 복도를 둘러보았지만 제재하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복도에선 문 너머 거주자의 통화소리까지 들렸고, 이 경우 거주자의 성별이나 집 내부의 인원수도 대략 파악 가능했다. 자취생 한은영(사범대 컴교11) 씨는 “도어락이 없으면 집 내부에는 접근이 힘들어도 누군가 건물 내에 은신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침입범죄의 경우 거주자와 가해자가 맞닥뜨렸을 때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성북경찰서 생활안전과 백윤미 경사는 “주거침입의 경우 강도, 살인, 성범죄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층 도어락을 설치한 16곳 중 4곳(25%)은 “집을 직접 둘러보고 계약하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별도의 확인절차 없이 출입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거주 학생이 없는데 학생의 방문을 열고 방을 보여준 경우도 있었다. 정경대 후문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A씨는 외부인에게 번호를 알려줘도 되냐는 기자의 물음에 “집을 보는 사람은 다 학생인데 나쁜 마음을 먹겠느냐”고 답했다. 학생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허찬(자전13) 씨는 “하숙 원룸은 건물을 관리하는 이가 없어 1층 도어락이 1차적 보호망 역할을 한다”며 “하숙집의 주인이 아무에게나 번호를 알려주는 것은 하숙생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숙생이 번호를 알려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성전용하숙에 거주하는 안모(문과대 독문11) 씨는 같은 하숙 학생이 술에 취해 남학생과 함께 실내로 들어서는 것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안 씨는 “우리 하숙은 공용 샤워실을 사용해 하숙생이 속옷을 입고 복도에 나오는 경우도 많다”며 “남학생이 들어오는 것에 아무런 제지가 없다는 것도 불쾌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택배 집배원, 전단지 아르바이트생 등이 주거지의 출입번호를 아는 경우도 있다. 이에 학생들은 편리하다면서도 불안하다는 입장이다. 라병룡(자전 경영10) 씨는 “집배원과 음식점 배달원이 1층 도어락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자주 보았다”며 “편리하기는 하지만 입주민 안전 담보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외부인이 하숙집 도어락 번호를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절대 안 될 일’이라는 입장이다. 안암 지구대 박은분 경사는 “친구 등 외부인에 공용 번호를 알려주면 문이 사실상 열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숙사는 경비 인력이 부족해 외부인의 방 출입을 통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랫동안 같은 도어락 번호
  오랫동안 출입번호를 바꾸지 않아 도어락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경우도 있었다. 16곳의 하숙집 주인에게 번호 변경 주기를 묻자 10곳 이상이 ‘한 번도 바꾼 적 없다’고 답했다. 한 하숙집 주인은 “10년 이상 하숙을 운영했다”면서도 “내도록(이제까지 한 번도) 번호 안 바꾼다”고 말했다. 도어락 제조업체 아이레보의 한 관계자는 “번호로 작동하는 도어락 제품을 오래 사용하면 출입번호의 해당 숫자가 지워져 번호를 유추할 수 있다”며 “1년 단위로 번호를 바꾸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특히 여러 학생이 학기마다 입주하고 이사하는 대학가 주거촌의 경우 이전에 사용하던 번호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열쇠 전문업체 관계자는 “이전에 사용하던 번호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어리석다’”며 “전에 살던 거주자가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꼭 주기적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부 도어락 제품의 경우 ‘마스터키’가 존재해 주의를 요한다. 본래 마스터키는 거주인이 도어락 번호를 변경한 뒤 이사를 가거나 집 주인이 번호를 잊어버리는 상황 등에 대비하기 위해 탑재된 기능이다. 하지만 보통 하숙 등 주거용 건물은 다른 방이라도 같은 도어락 모델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아 ‘마스터키’만 알면 어느 방이든 출입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9월 초 발생한 인하대 후문 원룸 침입도 범인이 부동산 업자로부터 ‘마스터키’를 알아내 침입한 사건이었다. 아이레보 관계자는 “번호로 작동하는 도어락도 마스터키가 없는 제품이 있으므로 마스터키 기능을 원하지 않는 경우 해당 제품을 사용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비만으로는 무단출입 통제 안 돼
  거주 학생 수에 비해 경비 인력의 수가 적은 기숙사도 외부인 출입에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안암학사 학생동은 별다른 절차 없이, ‘프런티어관(신관)’은 학생증을 찍은 후에 기숙사 출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관은 학생증 인식 후 문이 닫히는 시간이 길고 출입인원이 많아 외부인인 기자도 어려움 없이 출입할 수 있었다. 구·신관 모두 1층 로비 입구에 경비원 한 명이 상주하지만 일일이 학생의 얼굴을 확인하고 외부인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신관 경비원 B씨는 “24시간 로비에서 지키고 있어 외부인 침입이 힘들 것”이라고 했지만 기숙사생이 아닌 기자도 출입에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사생회와 사생 역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더 나은 보안 체제를 갖추기는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박은총(생명대 생명공학13) 씨는 “기숙사 보안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과 인력이 확충되지 않는 한 지금 상황에서 개선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안암학사 사생회는 기숙사 보안의 한계를 인식하고 경비팀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생회는 현재 문단속을 하지 않은 사생에게 벌점을 부과하는 등 사생 스스로 범죄를 예방하도록 계도하고 있다. 안암학사 사생회 이현철 씨는 “지난 학기에도 20대 조선족침입 도난이 있었다”며 “경비원뿐 아니라 사생회도 안암학사의 치안을 책임지는 쪽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지 안전에 학생이 앞장서
세종캠퍼스는 16년째 매 학기 규칙적으로 예비군의 ‘규찰’ 정책이 시행하고 있다. 학생 자치단체인 총예비역회에서 매 학기 초 예비역총회를 열어 각 과 예비군 회장에게 규찰 지원을 요청하면 과마다 자발적으로 예비군이 모여 학교 주변 치안을 점검한다. 과 학생회와 총예비역회 규찰대 소속인원, 해병대 전우회 등이 날짜와 시간을 정해 순찰을 하는 형식이다. 1회에 12명으로 구성되는 규찰대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 학교 주변 신안리, 서창리 등 고려대와 홍익대 인근을 순찰한다. 특히 부산대 기숙사 성범죄 발생 등으로 학생 주거 안전이 대두한 올해부터는 고려대 인문대 뒤쪽부터 홍익대로 이어지는 학생 주거촌 밀집 지역인 신안리 주변으로 코스를 세분화해 순찰을 한다. 세종 총예비역회 박주혁 회장은 “CCTV가 설치돼 있긴 하지만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구역이 있어 불안해하는 학생이 많다”며 “술에 취한 학생끼리 시비가 붙거나 남성이 여학생에게 추근거리는 일도 많아 캠퍼스 인근을 순찰하며 상당히 위험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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