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최다희 전문기자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은 시상 전부터 이미 내정된 분위기였다. 50년 가까이 가설로만 존재하던 ‘힉스입자(Higgs boson)’의 존재가 10월 4일 ‘학술적으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피터 힉스(Peter Higgs, 에든버러대) 명예교수와 프랑수아 앙글레르(François Englert, 브뤼셀대) 명예교수는 1964년 최초로 힉스입자를 예언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힉스입자는 무엇이며 이번 발견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다
  우주는 질량의 영향을 받는다. 거대한 행성부터 작은 먼지까지 물질은 모두 질량을 지닌다. 질량은 어떻게 부여될까. 1960년대 힉스를 비롯한 몇몇 이론물리학자는 질량의 근원을 탐구했고 힉스입자의 존재를 처음 언급한 ‘힉스 메커니즘’ 이론을 1964년 학계에 내놓는다. 힉스 메커니즘은 전 우주에는 힉스 장(Field, 場)이 퍼져있다고 설명한다. 이강영(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물리학자는 모든 물질을 장으로 설명한다”며 “전자는 전자기장, 광자는 빛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힉스 장 역시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에 관한 설명”이라고 말했다. 모든 물질은 힉스 장과 상호작용 하는 과정에서 반발 정도에 따라 질량을 가진다. 이 교수는 “같은 물질이라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빨리 이동하고 물이 차 있는 데선 이동의 제약을 받는 것처럼, 물질도 우주에 퍼진 힉스 장과 부딪히며 상호작용을 한다”고 비유했다. 상호작용이 크면 질량이 커지고 작으면 질량이 작아지는 것이다.

  장은 종류에 따른 고유한 모습을 띈다. 이를테면 광자는 파동의 형태로 나타나는 반면 힉스 장은 입자의 형태로 관찰된다. 이런 힉스 장의 입자 형태가 바로 ‘힉스입자’다.

50년간 이어진 숨바꼭질
  1964년 힉스입자의 존재가 언급된 이후, 물리학계는 힉스입자를 찾으려 각종 실험을 진행했다. 미국은 SSC(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테바트론(Tevatron) 등 여러 검출기를 이용해 힉스입자를 검출하고자 했으나 기술 부족과 비용 문제 등으로 실패했다. 이번 발견은 CERN(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에서 만든 LHC(Large Hadron Colliderm, 강입자가속기)에서 이뤄졌다. LHC는 길이 27km에 달하는 초대형 실험기계로, CERN은 2007년 LHC 설치 이후 6년간 기계를 가동시켜 힉스입자를 발견했다.

  힉스입자 실험은 양성자 간 충돌로 만들어진 각종 소립자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LHC는 쿼크(quark, 소립자를 구성하는 단위)나 접착자(gluon, 강한 핵력에 의한 입자) 등의 소립자로 단단히 묶여 있는 양성자를 자기 질량의 7000배 가량 되는 속도로 충돌시켜 분해한다. 기존 질량의 최대 1만 4000배의 충돌 에너지를 생성시키는 LHC는 2~3000배의 충돌을 일으키던 테바트론보다 훨씬 향상된 성능으로 강력한 충돌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입자 검출을 가능케 했다.

  양성자가 부딪쳐 부서질 때 다양한 소립자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힉스입자의 경우 10^(-22)초 만에 붕괴된다. 과학자는 힉스입자의 붕괴로 나타난 다른 입자를 검출해 힉스의 흔적을 역추적한다. 일반적으로 힉스입자는 △Z보손 △힉스 광자 △B쿼크 △W보손 △타우 입자 등 5개의 입자를 만들어내는 붕괴형태를 가진다. 이 중 CERN연구팀은 Z보손과 W보손의 붕괴과정을 분석했다. 연구에 참여한 최수용(이과대 물리학과) 교수는 “힉스입자와 마찬가지로 힉스의 붕괴 뒤 나타나는 Z보손과 W보손도 수명이 짧기 때문에 나타나자마자 뮤온(Muon, 전자와 모든 성질이 똑같지만 질량만 100배 무거운 입자) 등으로 붕괴된다”며 “이 중 비교적 수명이 긴 뮤온을 검출해 힉스를 역추적했다”고 말했다.

  힉스입자의 발견을 어렵게 만들었던 결정적 이유는 힉스입자의 무게 때문이다. 힉스입자는 표준모형에서 발견된 기본 입자 중 두 번째로 무겁다. 최 교수는 “힉스는 양성자보다 130배 가량 무겁기 때문에 양성자를 깨뜨려 검출하기 위해선 기존 검출기 이상의 성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힉스입자의 의의
  힉스입자는 실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힉스 장이 전 우주에 퍼져있지만 인간은 느끼지 못할 뿐더러 힉스입자 관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힉스입자의 의의는 ‘표준모형’을 완성시킨다는 데 있다. ‘모형’이란 물리학에서 입자와 상호작용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강영 교수는 “현상의 원리만 다루는 이론과 달리 모형은 원리에 특정한 입자간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다소 애매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표준모형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 등 4가지 힘의 ‘상호작용’과 17개의 ‘입자’를 포함하는 모형으로, 원자가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을 설명해준다. 힉스입자는 표준모형을 구성하는 17개의 입자 중 하나로 마지막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힉스입자 발견이 의미를 가지는 건 이 때문이다.

힉스 이후의 세계
  힉스입자는 발견됐지만 현재의 표준모형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다. 표준모형은 중력에 효과를 주며 우주의 20%를 차지한다고 알려진 ‘암흑물질(Dark Matter)’을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표준모형은 힉스입자의 ‘애매한’ 질량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힉스입자의 무게는 표준모형의 다른 입자와 달리 ‘0 또는 아주 큰’ 질량 중 어느 쪽도 아니다. 암흑물질, 그리고 힉스입자의 질량을 포함한 자잘한 표준모형의 오류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보완점을 찾고 있다.

  현재 과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대안은 ‘초대칭 모형’이다. 초대칭 모형은 표준모형보다 범위가 큰 물리 모형으로, 표준모형을 감싸는 이론적 범위를 가진다. 초대칭 모형은 암흑물질로 추정되는 입자까지 포함하고 있다.
초대칭 모형은 입자 고유의 회전효과에 관여하는 ‘스핀’이란 성질을 통해 표준 모형과 대응되는 입자를 추가적으로 지닌다. 이론적으로 표준모형의 17개 입자와 각각에 대응하는 입자를 모두 가진다는 것이다. 전응진(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는 “지구가 자전과 공전이란 방향성을 갖는 것과 같이, 입자도 고유한 방향성을 갖는데 이것이 스핀”이라고 말했다. 초대칭 모형의 입자와 표준모형의 입자는 서로 스핀이 2분의 1씩 차이난다. 이를테면 스핀이 2분의 1인 표준모형의 쿼크는 초대칭 모형에서 스핀이 0인 스쿼크(Squark)와 대칭된다. 스핀은 정수배 또는 반정수배(2분의 1)가 포함된 값을 가지는데, 힉스입자의 경우 표준 모형 내에서 유일하게 스핀이 0이다. 다만 초대칭 모형 자체가 미검증된 가설이기 때문에 힉스에 대칭되는 입자가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초대칭 모형 내 힉스입자에 대응하는 입자를 발견한다면 힉스입자는 5종류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현재 발견된 힉스입자의 의문까지 풀어줄 것으로 물리학계는 예측한다.

  힉스입자가 표준모형 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입자와 반응하는 이유에 관해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물리학계는 남은 3가지 붕괴형태(△힉스 광자 △B쿼크 △타우 입자)를 주목한다. 힉스입자가 발견된 2가지 붕괴형태(△Z보손 △W보손)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초대칭 모형적 힉스입자’의 성질이 나머지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CERN은 LHC를 보완해 계속해서 힉스입자를 검출할 예정이다. 최 교수는 “앞으로 10년에 걸쳐 현재까지 발견한 데이터의 100배 이상을 추출해 분석할 예정”이라며 힉스입자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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