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여러 정치이념 간 대립과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 하지만 한국 정치계의 진영 대립 구도는 ‘진보는 경제적 빈곤층을, 보수는 경제적 부유층을 대표한다’ 등의 이분법적 이미지를 고착화시켰다. 대학 사회에도 이분법적 사고와 보수·진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개혁에 앞장서던 대학생마저 진보와 거리를 두는 실정이다. 본교생은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에 대해 어떤 이미지와 생각을 가졌는지 무작위로 50명의 본교생에게 물어봤다.

 

 

“진정한 보수·진보당 없어”

  ‘새누리당/민주당/통합진보당/정의당/기타 정당 중 진보 진영이라 생각하는 정당은 무엇이냐’란 질문에 △민주당(18명) △없다(15명) △통합진보당(11명) △정의당(5명) △새누리당(1명) 순의 답변이 나왔다. ‘한국 내 진보 정당 없음’ 문항은 진보를 당의 기치로 내건 통합진보당과 정의당보다 많이 득표했다. 허찬(자전13) 씨는 “제1야당인 민주당은 허울만 서민을 위한 정당으로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진보 정당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관계자는 “진보와 보수로 당을 나누기보다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에 주목해달라”며 “민주당은 정의와 연대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민주당의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영서(공과대 건축13) 씨는 “한국 정당은 보수를 대표하는 당과 보수에 반대하는 당으로 나뉜다”며 “현재 정국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모두 타당한 근거 없이 새누리당의 법안에 무조건 반대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국회의원실 최일영 비서관은 “통합진보당은 당명과 정책 모두 ‘진보’를 지향하고 어느 정당보다 서민권익을 위해 노력한다”며 “민주당은 당 설립 이래 진보노선을 표방하거나 진보정책을 내세운 적이 없어 중도보수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2013년 고대생이 생각하는 현실 정치는 갈등의 현장으로 그려진다.
일러스트│최다희 전문기자

   우리나라에 진정한 ‘보수’ 정당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민우(생명대 식자경10) 씨는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는 정치이념이 아니라 진흙탕 정쟁을 위한 수단 같다”며 “새누리당은 보수보다 수구, 통합진보당은 진보보다 종북에 가깝고 민주당은 정체성이 모호하다”고 말했다. 김민지(경영대 경영12) 씨도 “보수와 진보 모두 국민과 사회 전반의 전진을 기본 목표로 해야 되는데 우리나라 정당은 이를 현실 정치에 적용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새누리당은 보수를 대표하면서 진보적인 정책도 고려해 수구라는 비판은 맞지 않다”며 “확고한 정치이념을 토대로 야당과의 합리적 정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창희 두레정치연구소 대표는 “정당이 확고한 정치이념 없이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프레임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해 정당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것”이라며 “이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진보에 막연한 거부감 있어
  본교생은 △진보 세력의 선동성 △종북 세력과의 연관성 의심 △경제적 빈곤층을 대표하는 이미지 등의 원인으로 진보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박 모(정경대 경제12) 씨는 “진보 세력은 시위, 성명서 발표 등 도덕적 올바름을 표방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며 “진보 세력 역시 또 다른 기득권인데 권력을 얻기 위해 서민 편인 척하며 선동한다는 점이 가증스럽다”고 말했다. 진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정치풍자로 이어지기도 한다. 조 모(인문대 영문11) 씨는 “진보는 좌빨 좀비”라며 “자신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감정에 호소하는 선동적 어투를 쓴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며 ‘진보가 종북 세력과 연관돼있다’는 생각이 학생 사회 내 진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고 있다. 장석인(정보보호12) 씨는 “진보 성향의 지인이 근거 없이 감정적으로 격양돼 보수를 비난하는 등 진보는 감정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국가안보와 관련된 전공을 하면서부터 진보나 좌파가 종북 세력과 관련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진보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진보는 종북 세력과 빈곤한 계층의 논리’란 인식에 진보 성향의 학생이 스스로 진보라 밝히기 꺼려하기도 한다. 박 모(정경대 정외12) 씨는 “진보라고 말하면 종북 좌파 세력으로 몰려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 때문에 중도라고 말한다”며 “스스로 보수적 정치성향을 지녔다고 말하는 지인을 보면 자신이 경제적으로 넉넉함을 은연중 과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관수(조선대 군사학과) 교수는 “‘너 빨갱이지’하면 위축돼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것”이라며 “한국 사회는 자기검열과 자기방어를 강화하는 레드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좌파와 종북 구별해야
  대부분의 학생이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인식했다. 주은경(이과대 이학부13) 씨는 “보수는 큰 틀의 변화 없이 기존의 틀을 개발하는 개념인 반면 진보는 틀 자체를 바꾸는 혁신의 성격을 지닌다”고 말했다. 한관수 교수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방식은 변화에 대한 지지와 저항의 여부, 자유주의적 시각의 보수와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지닌 진보로 규정하는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좌파와 종북의 개념적 구별성을 짚은 학생은 없었다. 방소희(자전13) 씨는 “좌파는 북한에 어떤 상황에서도 지원해줘야 한다는 친북, 우파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친미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모(과기대 제어계측11) 씨는 “좌파는 진보보다 더 극단적으로 치우친 느낌으로 ‘빨갱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는 지향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내포하는 개념으로 특정 국가와 연관되지 않는다. 한관수 교수는 “좌파는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을, 우파는 정치적 경제적 자유주의 세력을 의미한다”며 “두 개념의 차이는 이념적 노선에 의한 것인데 한국 정당의 단편적 사례를 통해 친북과 친미라는 극단적 이분법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좌파와 종북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개념적 오해는 제헌 당시 ‘인민’이란 용어를 ‘국민’으로 바뀌게 했다. 임혁백(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헌법에 올바른 표현인 ‘인민’ 대신 ‘국민’이 쓰인 것도 ‘인민은 좌파적 표현을 의미한다’는 지나친 이데올로기적 시각에 매몰된 결과”라며 “한국 사회에 좌파와 종북의 개념을 분리하는 탈이데올로기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극단적 정치혐오로 이어져
  보수와 진보 이념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당의 부재와 ‘좌파는 곧 종북’이란 생각은 대학생의 정치혐오로 이어진다. 조 모(인문대 영문11) 씨는 “새누리당은 수구꼴통으로 자신의 기득권 밖에 챙길 줄 모르는 상류층일 뿐”이라며 “민주당은 표를 얻기 위해 서민 위하는 척 그만하고 통합진보당은 북한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모(공과대 산업경영12) 씨 역시 “종북 빨갱이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진보를 가장한 종북은 싹을 잘라야한다”고 말했다. 한관수 교수는 “안철수 의원이나 박원순 시장 등 비정치인이었던 사람이 대중의 지지를 얻은 것도 정당정치의 혐오에서 기인했는데 정당들은 아직도 개혁을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며 “대중은 극단적 정치혐오에 그쳐 정치에 무관심하기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당정치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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