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감독
사진 | 송민지 기자 ssong@

프로젝트 시작 당시 손에 쥔 건 유럽행 왕복항공권과 단돈 80만 원. 누군가는 ‘미친 짓’, ‘철없는 행동’이라고 수군거렸지만 잉여 4인방의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주연이자 제작자인 이호재(남·24), 이현학(남·20), 하승엽(남·22), 김휘(남·20) 씨는 2009년 무모한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1년 간 유럽을 돌아다니며 호스텔의 홍보 영상을 찍어주는 대신 숙박을 해결하고 비틀즈를 꿈꾸는 뮤지션을 찾아 그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 그리고 1년 간 의 과정을 담은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자칭타칭 ‘잉여인간’인 네 사람은 영화과 출신이다. 여름방학 동안 영상 제작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은 등록금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모은 돈으로 여행을 떠날까 했지만 여행 경비로 쓰기에도 부족한 금액이었다. “유럽 호스텔에 홍보 영상을 제작해 숙박비와 물물교환 할까” 농담처럼 나온 호재 씨의 제안으로 10분 만에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틀은 완성됐다. 

2009년 9월,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로마-터키-런던을 오가며 찍은 그들의 호스텔 홍보 영상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브라이언(Bryan)과 아르코(Arco)라는 영국 가수의 뮤직비디오까지 촬영했다. 정확히 1년 후 한국에 돌아와 프로젝트의 과정을 담은 영화를 제작해 2013년 11월 28일, 마침내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영화관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 대학을 그만두고 모험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
“사실 당시 상황에서 학교를 계속 다니는 자체가 큰 ‘모험’이었어요. 영화과는 학과 특성 상 수업만 성실히 듣는다고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지 못해요. 제 스스로가 경쟁력이 별로 없다고 느껴져 이렇게 계속 학교를 다녀도 될까라는 생각을 할 때였어요. 전 나름 성실한 편이었지만 나머지 셋(현학, 승엽, 휘)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안하는 학생이었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갔다기보다 현실에 머무는 자체가 힘들어서 반 도피성으로 떠난 거였죠.”

- 처음 만든 ‘옐로우 호스텔’ 홍보 영상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 달 정도 텐트에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다가 호스텔이라는 공간 안에 들어오니 하나하나가 다 새로웠어요. 재치 있게 표현해 낸 하비(승엽 씨의 별명)를 포함해 저희 넷이 그동안 배우고 축적한 것이 영상에 자연스럽게 접목 돼 한 번에 폭발한 것 같아요.”

- 영화 내용 중 ‘우리의 청춘이 걸렸다’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본래 결과보다 그 과정을 중요시하는 편이었지만 프로젝트를 통해 더 확신하게 됐어요. 저희 팀은 결과만을 위해서 행동하려고 하지 않아요. 눈앞에 닥친 것을 해결하고 점차 나아가는 자체에 행복감을 느껴요. 2009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에 걸친 이번 프로젝트에서 ‘우리 같은 애들도 뭔가 할 수 있구나’,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 여행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여행 초반에 걷거나 히치하이킹을 통해 프랑스 종단을 하는데 추운 날씨 탓에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더군다나 호스텔 영상 제안이 다 거절당한 상황이라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많았죠.”

- 구체적인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났다 
“현실에서도 계획된 틀에 갇혀 살고 있는데 ‘저 먼 나라까지 가서도 계획하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계획해서 떠날 여건도 안됐지만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경험하는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낯선 상황에선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느끼니까요.”

- 부산독립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보통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와 다른 특수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저희 영화는 평범한 애들이 특수한 상황에 처한 걸 보여줘요. 자신을 저희 영화에 대입해 관람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가는지를 보며 용기를 얻는 분들도 계셔요. 자신을 잉여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잉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에 대한 응원도 되고요. 10, 20대는 자신도 시도해보고 싶은 도전의식을 얻고, 30, 40대는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회상하며 영화를 보시는 것 같아요.”

- 2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알고 있다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환상과 동경이 생겼어요. 자신의 것을 빠르게 창작해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죠. 그래서 밴드를 만들어 유랑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선발해 문화적으로 결핍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해요. 버스를 타고 세계를 유랑하는 식으로요. 하루에 자기소개서가 2통씩 올만큼 벌써부터 지원자가 많아요.”

- 앞으로도 영화 관련 업계에서 계속 일할 생각인가
“무언가를 위해서 나아간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요. 이번 영화도 1년간의 ‘과정’을 담은 영화지 결과물 자체를 다루진 않았죠. 사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일 때만 해도 비난이 훨씬 많았어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실패와 성공의 과정을 밟아 나갔기에 가능한 일이였는데도 말이죠. 이번 여세를 몰아 다음 영화를 제작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어요. 다음 영화 계획도 더 멀리 내다보고 하나하나 축적하고 성장한 후에 만들고 싶어요.”

- 고대생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제가 감히(웃음)….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지만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는 자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굳이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더라도 지금 행복한 것들을 찾아내 이들이 연쇄적으로 작용한다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편해질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더 높이 더 멀리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들 수 있거든요. 잉여라도 괜찮으니까 행복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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