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경제사학, 정치학, 종교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학자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세기말 전환기를 이끈 사상가다. 그가 던졌던 합리성, 관료제, 방법론, 윤리론에 대한 화두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숨 쉬고 있다. 고대신문은 베버 탄생 150주년을 맞아, “베버의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에 대한 끈질긴 문제제기는 우리의 문제”라는 전성우 한양대 석좌교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현대사회에 시사점을 제공하는 베버의 사상을 살폈다.

▲ 최다희 전문기자
 “자본주의는 불합리 할 수 있다”
 베버의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은 학문성의 의미와 차원을 다원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요한 역사 평가제도에 기여했다는 것에 있다. 이에 관해 가장 유명한 예시는 두 쌍의 합리성 유형이다. 베버에 따르면 ‘합리성’은 수단의 합리성과 가치의 합리성, 형식합리성과 실질합리성이 있다. 이 중 형식합리성과 실질합리성의 극단적인 괴리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파악할 수 있다. 형식합리성은 수지 타산에 맞는 합리성이며, 실질합리성은 가치판단이 포함된 합리성을 뜻한다. 현대 자본주의체제는 형식합리성으로만 따졌을 때, 지극히 합리적인 체제다. 자본주의는 윤리적 기반을 벗어나지만, 원하는 목적에 맞는 수단을 추구하는 자신만의 논리를 갖기 때문이다. 형식합리성은 기업을 자전거로 비유할 때 잘 드러난다. 자전거는 계속 밟아야 넘어지지 않듯이 기업 역시 이윤이 나야 고용이나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폐해로 발생되는 결과인 빈부격차 등의 문제는 실질합리성에 어긋난다. 이를테면 미국은 비만율이 25%가 넘을 만큼 먹을거리가 풍족하고 심지어 낭비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실질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 베버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약탈적 성격을 간파했다. 자본주의가 태동 시기에 맑스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비판하며 사회주의로의 혁명을 주장했지만, 베버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자본주의는 이미 개인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때문에 베버는 자본주의 세력이 이미 구조화된 상황에서 그것을 견제할 세력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자본세력과 관료세력의 결합을 가장 위험하게 생각했는데, 당시 독일은 우수한 관료제 조직을 가졌고, 독일의 자본가들은 국가에 의해 성장했기 때문이다. 베버는 이 위험한 결합 세력의 견제세력으로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노동조합을 꼽았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노동조합
 베버는 선동성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치에 대한 열광을 불러일으킬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시했다. ‘대의’와 ‘신념’을 가진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개인의 비범한 자질을 통해 ‘소명을 받은’ 리더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때문에 자본 세력을 견제할 수 있다. 또한 베버는 말년에 노동조합(노조)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조직화된 권력 없이 자본 세력을 견제하는 것을 힘들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노조가 실패할지 성공할지는 모르나, 자율의 가치를 깨닫게 하기에 노조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조에서의 중시하는 가치 인식과 의식을 일깨우는 활동 없이는 노동권이 침해되고 생존권이 위협받는 당시 자본주의 현실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명으로서의 정치”
 온갖 복잡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혼재하던 당시 현실에서 베버가 생각한 올바른 정치는 무엇이었을까. 베버는 국가를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을 관철시킨 인간 공동체로 정의한다. 개인이나 집단은 오로지 국가가 정한 범위 내에서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버에 따르면, 국가는 ‘강제력을 사용할 권리의 유일한 원천’이다. 이러한 베버의 국가 정의는 그의 정치관과 연결된다. 정치란 곧 폭력 수단을 독점한 국가 운영에 참여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에 베버는 정치의 ‘악마적 파급효과’를 경계하며 정치와 윤리의 관계를 강조한다. 그는 정치에 관련된 인간 행위의 윤리적 원칙을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 설명한다. 이 중 책임 윤리가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사람이다. 국가의 폭력성을 고려할 때, 합법적으로 칼을 휘두르겠다는 정치가는 그 결과에 대해서 철저한 책임윤리를 져야한다.
하지만 베버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정치가 스스로가 이 ‘칼’을 휘두르는 지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였다. 베버는 ‘신념이 없는 자는 감히 칼에 손을 대지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치가는 형식합리적으로 자신의 이득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가치합리적으로 신념을 기준으로 타산적인 이득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버는 시민계급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도 기대했지만, 자본가들에 대한 정치 참여에 대한 요구를 더 강조했다. 19세기 당시 독일 자본가는 철저히 국가 예속적이었는데, 베버는 이를 심각한 문제로 여겼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굶주림이라는 채찍’으로 살아남기 급급한 상황에서 정치에 참여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력을 가진 세력들이 자유, 이상, 평등에 대해서 힘이 돼 줘야하지만, 국가 예속적이던 독일 자본가는 국가 권력 아래 특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베버는 자본가들은 최소한 시민들이 일어날 때 이를 지지해주는 받침이 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반발했던 베버는 그의 아내 마리안네 베버를 정신적 파트너로 대했다. 부부는 정신적 학문적 교류와 유대를 이뤘다. 마리안네 베버는 독일 여성운동사에 큰 이름을 남겼으며, 베버는 여성의 독립과 권리를 옹호하며 여성운동에 참여했다.
 베버의 방법론: 이념 형(Ideal Typus)
 베버는 경제, 정치 뿐 아니라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사회과학 분야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사회과학방법론으로 해석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의미적합성과 실증적, 경험적 분석을 토대로 한 인과적합성의 결합을 중시한다. 이는 베버가 과도한 일반화를 추구하는 실증주의와 과도한 특수화를 추구하는 역사주의 사이의 길을 추구하며, 인간과 관련된 현상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과학방법론을 도식화 한 것이 바로 베버의 ‘이념 형(Ideal Typus)’이다. ‘이념 형’이란, 관점의 일면성(one-sided)의 한계를 인정하며, 동시에 이를 이용해 현상을 단순화해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그의 문제의식인 ‘자본주의 체제가 왜 서유럽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바탕으로 드러난다. 베버는 역사적 맥락을 통해 자본주의 형성에 미친 요인들을 분석하기 위해 다차원적인 현상 속에서 특정한 차원에 집중하려했다. 그는 이념 형을 통해 자본주의 성립과 관련된 개신교도인의 금욕주의적인 종교적 속성에 주목했다. 이를 바탕으로 통합된 구성물을 구축하는 틀로써 자본주의 형성요인을 설명했다. 그러나 베버는 ‘이념 형’ 또한 하나의 가능한 방법론이라며, “이념형은 현실 세계, 경험 세계의 직접적인 모사나 반영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념형은 진위를 밝혀내야 하는 가설이 아니라 가설을 구성할 때 방향성만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한 이해, 가치판단에 만들어놓은 이론으로 그것을 현실의 실체인 듯 주장하는 순수이론가를 비판하며, 이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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