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베버' 전성우 한양대 석좌교수. 사진|이지영 기자 ljy@
 '전 베버'라는 별명을 가진 전성우 교수는 40년간 베버만을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은, 국내 베버 연구의 1인자다. 그에게 ‘평생의 연구대상’이던 베버는 어떤 존재일까. “베버는 한번쯤 쳐다봐야할, 그러나 언젠간 파괴돼야할 우상”이라는 전 교수와 베버의 깊은 인연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 베버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가
 “독일 괴팅겐대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할 때, 학기 첫 과제로 베버의 저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을 읽고 레포트를 써야 했다. 외국인 학생에게 내주는 과제 치곤 너무 어려워 포기하려다, 3번 완독했다. 그 후 베버와 사랑에 빠졌다. 베버를 더 공부하고 싶어 전공을 독문학에서 사회학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내가 받고 있던 독일 정부 장학생은 전공을 바꾸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2년 동안 고민했다. 결국 베버의 매력을 져버리지 못해 장학금을 포기하고,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꿔 학부부터 다시 공부했다.”

 - 장학금까지 포기하게 한 베버의 매력은
 “두 가지다. 첫째는 문헌의 사회학적 분석이다. 베버는 16세기 영국 칼뱅교 문헌 등 신학서적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해 자본주의 정신을 도출했다. 독문학 전공자로서 괴테문학을 분석하던 나는 이러한 텍스트를 통해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도출과정이 낯설지 않고 도리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두 번째 매력은 서구 근대화 이념적 뿌리 분석이다. 독일은 끔찍한 재앙을 불러온 나치의 발원지였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서유럽 문화가 갖는 특이성인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정착이 가능했는가가 늘 궁금했다. 베버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기원에 대해 분석했고,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 ‘전 베버’와 베버는 어떤 관계인가
 “베버와는 애증관계다(웃음). 베버의 매력은 그가 순수이론가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는 순수이론가가 이론자체를 본질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베버가 순수이론가들과는 달리 역사적 맥락에서 사회를 분석하고 고찰하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베버는 서구적 합리주의, 자본주의를 개신교의 근검성과 같은 정신적·종교적 요인으로 분석했다. 처음엔 정신적 요인이 역사적 인간 집단을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는 접근을 긍정적으로 봤지만, ‘왜 근대사회에 자본주의가 대두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베버가 ‘서구 내재적, 서구 중심적’ 설명에 집착한 점에선 후에 비판적 관점도 생겨났다. 덧붙이자면 사람들이 날 더러 ‘한국의 베버’라고 칭하는데, 사실 베버처럼 살고 싶지 않다. 천재들의 생애가 그렇듯 그는 평생 신경증과 불면증과 같은 병고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 베버 연구가 안겨준 것은 무엇인가
 “베버는 나에게 생물학적 먹거리와 정신적인 먹거리를 주었다. 베버를 연구한 덕에 교수로 부임할 수도 있었고, 학자로서 가져야하는 열정도 배웠다. 베버는 학자를 ‘진리에 대한 열망을 먹고 사는 존재’로 규정하며 다른 명예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학문정신은 한 사람의 학자로서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베버는 스트레스도 안겨줬다. 그의 학문세계는 어렵고 복잡하다. 내용적으로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역사적 논증을 하기 때문에, 동양인이 서양사 전반을 소화하는 것에 대한 한계가 있다. 지금도 매번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는 일에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 베버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있나
 “1985년 독일에서 귀국할 때 엄청난 분량의 베버 관련 서적들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그 때 들고 올 수 있는 책들은 가방에 넣어왔다. 그런데 세관에서 맑스(Marx)와 막스(Max)를 혼동하는 바람에 실랑이가 빚어졌다. 그 때만 해도 맑스는 한국에서 금서여서, 막스가 맑스와 다른 학자라고 열심히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 베버 관련 특별한 수집품이 있는지
 “30년 전까지 막스 베버의 주저로 간주됐지만, 오래 전 절판되고 현재 해체된 ‘경제와 사회’를 가지고 있다. 30년 전부터 막스 베버 세계적 권위자들이 정본 편집위원회를 결성해 2014년 발간을 목표로 <막스베버 전집> 52권을 제작하고 있는데, 주저로 간주됐던 이 책은 분해된 후 각 주제별로 묶여 <막스베버 전집>의 일부로 들어갔다. 나중에 밥벌이가 안 되면 팔 생각이다(웃음).”

 - 앞으로는 베버를 비판할 생각이라고 들었다
 “모든 인간의 원초적 문제와 보편적 욕구는 생존, 자존, 공존에 있다. 고전 사회학을 구성하는 세 축인 맑스, 베버, 뒤르켐은 각각의 문제를 절묘하게 분업했다. 맑스는 생존의 문제, 베버는 종교사회학적으로 궁극적인 인간의 자존문제, 뒤르켐은 ‘연대’를 강조하며 공존의 문제를 살폈다. 나는 앞으로 이러한 세 가지 문제를 종합해 기본적인 최소 보편주의를 바탕으로 베버의 서구 중심주의에 대해 비판하려 한다.”

 - 사회학적 생존,자존, 공존의 문제를 사회에 적용한다면
 “오늘날의 사회학자는 너무 고상해진 나머지 생존문제는 다 해결된 듯이 이론을 펼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갑을 관계’는 생존과 동시에 자존 관계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억울함이 모든 관계에 깔려있다. 두 달 전 청주에서 삼성 A/S 기사가 자살한 이유도 배고프고 억울해서였다. 항상 어떤 현상이든지 너무 고상한 기준 보다는 생존, 자존, 공존 세 가지 요소를 함께 봐야한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우리 같은 진정성이 없다’고 하지만, 요즘 세대가 봉착한 생존문제는 기성세대의 그것과 같지 않다. 우리 시대 같은 경우는 1%만 대학진학을 했고, 대학을 가면 누구나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특권적인 이상을 가졌던 우리세대의 생존 문제 해결방식과 자존의 방식을 기준으로 지금 세대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됐다.”

 -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신에게 있어 살아 숨 쉬는 가장 깊은 욕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라. 이 욕구를 정당화 할 수 있는 화두를 끈질기게 찾아봐라. 아이디어는 자기가 오고 싶을 때 오지만, 그걸 잡도록 준비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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