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의약분업 반대 파업사태에 이어 다시 의료파업의 가능성이 제기되던 11일. 대한의사협회(회장=노환규, 의협)는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2014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오후 4시에 시작한 출정식은 자정을 넘은 시각까지 이어졌고, △전국의사대표자회의 △각 주제별 분과토의 △분과 토의 후 결과에 대한 종합토의 순서로 논의가 오갔다. 출정식을 찾은 200여 명 의사들의 열기는 1부 행사가 열린 3층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협회 측에서 준비한 의자가 모자라 80여 명의 의사들은 회의장 옆과 뒤에 서서 회의를 지켜봐야 했다. 이날 출정식에 참가한 의사들은 소속도, 출정식을 찾은 목적도, 논란에 대한 의견도 모두 다양했다. 이러한 의사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기 위한 분과토의는 언론에는 10분만 공개된 채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다. 

▲ 11일 의협회관에서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 총파업 출정식>이 열렸다. 이날 토의를 통해 의사협회는 정부와 타협이 되지 않을시 3월 3일 전국적인 파업을 감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저수가, 개혁이 필요한 건강보험제도 등 곪아터진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의사들의 분노는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전남 영암에서 8년간 병원을 운영했다고 밝힌 김경훈(남·42) 씨는 국내 의료계의 낮은 수가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국가죠? 민주주의국가죠? 우리들은 공산주의국가에, 사회주의 국가의 노예로 살고 있어요” 그는 필리핀과 베트남의 수가보다 낮게 책정된 현재의 수가로는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대형병원 의사들 23명분의 일을 내가 혼자 다해요. 인건비를 아끼려면 어쩔 수 없어요”라며 “이런 상황에 원격진료까지 허용한다니 너무나 울분이 터져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출정식에 참가한 이유도 덧붙였다.

 단상에서 출정선언을 하는 도중에도 의사들은 자신의 의견들을 적극 개진했다. 노 회장은 출정선언에서 “의사들은 절박한 심경으로 ‘총파업’이라는 충격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마지막 수단을 언급하고 있으나, 정치인들은 ‘밥그릇’ 싸움으로 폄하하고 있다”며 “전국의 수 만명 의사들이 지난 12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투쟁에 나섰는지 이유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악에 찬 한 여성회원의 목소리는 노 회장의 목소리보다 컸다. “조용히 해. 개XX들아. 원격의료는 의사와 환자, 간호사간의 통신수단이야. 그걸 왜 니가 반대해”라며 큰 소리로 항의해 회의장에서 끌려 나간 유종옥(여·54) 씨는 “의사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망신을 주고 있는 노 회장을 탄핵해야 한다”며 비판했다. 자신을 K 닥터라고 밝힌 유 씨는 “‘원격의료’는 현재 시행중인 바와 같이 전자기기들을 이용해 진료하는 것이고, ‘원격진료’가 핸드폰 등의 전자기기를 통해 원격으로 치료하는 것으로 정부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의 정확한 의미”라며 “두 개의 정의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회장의 처사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와의 대화의지를 나타낸 연설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의사도 있었다. “의정협의체를 구성해 투쟁과 협상을 동시에 해나가야 한다”며 대화의지를 밝힌 변영우 의협 대의원의회 의장의 연설에 용인에서 가정의학과를 운영 중인 김장일(남·52) 씨는 반기를 들었다. “정부에 속지말자”고 외친 김 씨는 언론자료들을 토대로 정부를 불신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2009년 원격의료 혜택 논란이 일었을 때 정부는 기존에 제시한 450만 명의 목표치를 2000만 명으로 이틀 만에 의견조율 없이 바꿨고, 의약분업 약속도 정부에서 먼저 파기했다”며 “정부가 제의하는 협의체 구성 논의는 진정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이 지닌 긴장감은 의협 내부뿐만 아니라 언론보도와 정부의 대응에서도 느껴졌다. 1부 행사가 마무리 된 오후 6시 30분경, 기자의 핸드폰에는 보건복지부 긴급 브리핑 예정 속보를 알리는 일간지 어플의 알림이 울렸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의사협회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며 “불법파업과 진료거부 행위가 발생하면 관련 법에 따라 엄중히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의사들은 우려를 표했다. 파업이라는 의사협회의 최후의 수단에도 정부는 해결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사태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출정식에 참가했다고 밝힌 일반인 김훈(남·39) 씨는 “철도 파업처럼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길 바란다”며 원칙만을 고수하는 정부의 대응에 대해 걱정했다. 강경대응을 의식한 듯 비대위 회의는 30여 분 가량 연장됐고, 야외 천막에서 예정된 제 3분과회의도 예정된 시간을 넘겼다.

 참석한 의사들의 명찰을 배부한 홍보팀에서는 이날 행사에 오후 9시를 기준으로 686명의 의사가 참가했다고 밝혔다. 참석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비뇨기과 협회를 대표해 참가한 이종진(남·49) 씨를 비롯한 대다수 의사들은 “논란에 대해 알기 위해 왔다”고 답했다. 기자가 의사협회의 정문을 나온 오후 10시에도 논란에 대한 진실을 알기위한 의사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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