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이 되던 2월 25일. 시민과 노조원들이 거리로 나와 ‘국민총파업’을 벌였다. 임기 초에 비해 지지율이 올랐다는 주요 언론사들의 분석이 무색하게,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피켓을 들고 정부를 비판했다. 하지만 ‘국민’총파업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번 총궐기가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번 파업은 과연 어떤 성격의 것이었을까. 고대신문은 2월 25일 서울광장 파업현장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총파업’에 대해 분석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국민총파업’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철도노동조합 등의 노동조합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참가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행사에는 주최 측 추산 4만 명, 경찰 추산 1만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시청 역에선, 교통카드를 찍을 때 나는 ‘삑’소리를 비롯한 주변의 여러 소리 중 개찰구 앞부터 지하철역 통로를 차지한 서울지하철 노조의 구호소리가 압도했다.
 소리는 개찰구 앞부터 지하철역 통로를 차지한 서울지하철 노조의 구호소리에 묻혔다. 시청 앞 광장은, ‘중단하라! 민영화’, ‘박근혜 하야하라’라고 적힌 피켓과 깃발이 넘실거렸다. 미세먼지 속 뿌연 하늘에서도 붉고, 푸른 깃발들이 선명한 가운데 집회는 국민파업위원회 공동대표단의 대회사 낭독으로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 1년은 공약파기·민생파탄·민주주의 후퇴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우리들이 일어선다.” 시민들은 ‘박근혜 OUT’이라 적힌 빨간 피켓을 들며 “박근혜는 퇴진하라”구호로 답했다. 이 날 집회는 참가한 단체의 수 만큼이나 참석 이유는 저마다 다양했다. 남색의 코레일 작업복을 입고 있던 은종관(남·52) 씨는 오늘 하루 휴업한 채 집회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묻는 질문에 그는 “파업을 멈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에요. 제발 우리랑 얘기 좀 합시다”라고 말했다. 전국노점상총연합 깃발아래 있던 이춘자(여·70) 씨는 “단속이 심해져 먹고살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혜신(한국외대 중국어과09) 씨는 “박근혜 정부 들어 정책에 반하는 책임을 모두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현상이 심화됐다”며 “대선 당시 내세웠던 공약과는 다르게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당일 집회에 참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정됐던 금속노조의 파란 깃발도 눈에 띄었다. 금속노조 산하 삼성전자 서비스지회의 임정택(남·43) 씨는 “근무한지 20년이 다돼가는데 아직도 비정규직 신세”라며 “정규직 전환은커녕 삼성에서는 나 몰라라 태도로 일관하는 점을 알리고자 왔다”고 참가 이유를 말했다.

 시작된 대치


 오후 5시 45분. 집회가 마무리 되자 단체들은 가두행진을 하기 위해 깃발들을 앞세워 길가로 향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몇 걸음 못 떼서 기동경찰버스와 이중·삼중으로 대열을 갖춘 폴리스 라인과 마주 했다. 4차선 도로가 막히자 시위대는 여러 군데로 흩어져 골목골목으로 향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위대는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밟혀서 넘어지거나, 경찰에게 채증을 당하는 등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항의하는 노조원에게 캡사이신을 발사하기도 했다. 6시 5분, 시위대는 롯데백화점 앞 6차선 도로에서 폴리스라인을 뒤로한 경찰들과 대치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시위자가 폴리스라인을 넘어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동안 시위대와 경찰사이의 긴장감은 점차 커졌다. “우리가 왜 불법이야! 길을 막고 있는 경찰들이 불법이지!”한 여성의 악에 찬 분규는 확성기를 든 경찰을 멈칫하게 했다. 6시 20분경, 시위대는 영풍문고 사거리 8차선 도로에 겹겹이 늘어선 경찰과 마주했다. 시위대는 태극기와 ‘박근혜 퇴진’이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도로위에 세우며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된 대치에 경찰은 ‘불법시위를 멈추지 않으면, 물대포를 발포하겠다’는 경고를 재차 했다. 대치는 40여 분 가량 계속됐고, 6시 45분. 반복되는 경찰의 경고에 시위대는 해산을 결정하고, 시청광장으로 모였다.

 확연했던 온도차
 이날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온도차는 확연했다. 시위대로 인해 막혔던 6차선 도로와 8차선 도로에선 퇴근시간과 맞물리며 주변을 지나던 시민들이 교통체증을 겪었다. 버스에서 1시간을 갇혀있던 김영진(남·44) 씨는 “국민들을 위해 시위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지금 우리가 피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시청역을 지나가던 배은환(남·50) 씨는 “국민이 동참해야 국민파업이지, 듣기 좋게 수식어만 붙이면 뭐하냐”며 “역을 이용하는 시민에게나 불편을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총파업’에서 ‘국민’의 무게
 이번 파업은 그 동안의 파업들과는 이례적으로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박준형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정책팀장은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러한 수식어를 붙였다고 답변했다. 박 팀장은 “철도파업과 더불어 12월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후, 앞으로의 파업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지만 국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파업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에서 ‘국민’을 붙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이라는 수식어에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유병홍(본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이전의 임금인상 파업과 달리 ‘국민총파업’에서는 노동자의 이해관계보다는 국민적이고 공공적인 의제들을 쟁점화 시켰다는 점에서 ‘국민’총파업이 지닌 의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김성희(본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공공적인 의제 설정에는 동의했지만, 국민의 공감대는 다소 떨어졌다고 판단했다. 그는 “국민 총파업임에도 불구하고, 대선불법개입 쟁점과 정권 퇴진 구호가 가장 우선시 됐다”며 “이는 정치 성향 상 호불호가 매우 나뉘는 사안이기에 공감대 확산을 더욱 낮추게 했다”고 말했다.

 정치파업의 정당성
 이번 파업은 민주노총의 최대 노조인 현대·기아차 노조가 집회 전 진행한 투표에서 전체 노조원의 3분의 1만이 파업참여에 찬성했다. ‘정치파업’의 성격을 핀다는 이유에서다. 조동근(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의 총파업 불참은 명분 없는 정치파업에 더 이상 동원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동원 본교 노동대학원장은 “정치파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국민에게로부터 지지를 받는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반대로 생각했을 때 독재정부의 집권 시기에 노조가 정치파업을 하지 않고 왔다면 더욱 외면 받았을 것“이라며 “국민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한 주장이 국민을 설득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유병홍 교수는 노조를 바라보는 사회적·정치적 시각에 대해 견해를 표했다. 유 교수는 “노동자는 유권자이자, 납세자, 시민으로서 정치적 견해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들의 외침을 정당성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국민’파업≠국민적 공감
 국민총파업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미진한 지지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시각을 보였다.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교수는 현장에서의 시민들의 싸늘한 반응에 대해 민주노총이 주로 규탄해온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에 대한 국민의 동의가 높지 않은 점을 꼽았다. 유 교수는 “대선개입 규탄을 중심으로 하는 집회가 지속됐지만, 선거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김성희 교수는 대중적 공감대를 확산할 계기나, 쟁점이 없는 시기적 문제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민여론이 뒷받침 됐던 철도파업이 일단락 된지 두 달 가까이 지난 시점과 국민의 공통된 관심사가 있는 올림픽 직후라 총파업으로서 결속력도 국민의 공감대도 다소 떨어졌다”고 말했다.
 25개의 요구사안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김 교수는 “요구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공분(公憤)의 지점이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한 조동근 교수는 “현재 경제상황을 고려치 않고 TPP추진을 반대하는 등의 요구는 국민파업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말하며 요구사안의 비현실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거부감을 유발하는 사퇴구호
 이날 집회에는 ‘박근혜 OUT’이 적힌 피켓과 “박근혜는 사퇴하라”라는 구호를 앞세웠다.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띄는 구호에 반감을 갖는 시민도 있었다. 33세 회사원이라고 밝힌 이·모씨는 “집회의 정치적 성격이 부담스러워 촛불시위에만 참가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구호에 대해 의문을 갖는 시민도 있었다. 정민규(남·25) 씨는 “민영화에 반대해 오긴 했지만,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할 정도인지까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퇴를 요구하는 구호를 쓴 이유에 대해 민주노총 측은 “대통령의 퇴진을 구호로 거는 것에 있어서 신중한 입장이었으나, 철도사태를 볼 때 정책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에 대한 한계가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며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퇴구호에 김동원 교수는 우려를 표했다. 김 교수는 “취임 후 1년의 지지율이 60%가 넘는 현 정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사퇴하라는 것은 국민적 공감을 얻기 힘들다”며 “이것이 지속된다면 전반적 여론과 동떨어지고, 고립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교수는 “‘국민총파업’이라는 이름으로 요구사항들을 모두 합해 놓았는데, 촛불은 오히려 반 박근혜 정서가 강한 것 같다”며 ”구호가 아닌 표출방식과 주도세력에 대한 이질감이 커질 수 도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향방은
 민주노총 측은 이러한 지적들을 일부 인정했다. 박준형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정책팀장은 다양한 의제들의 수합으로 인한 구심점 약화를 인정했다. 박 팀장은 “노조 탄압의 중단, 민영화 반대, 연금개악중단 추진하는 입장이 분명히 있었는데 주장이 흐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향후 투쟁을 위한 요구로 모으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과연 무엇이 나쁜지, 집중도를 가려내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것이 민주노총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김상희 교수는 ”‘총파업’과 ‘국민’은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며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위험을 경고하는 자세로 대중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채증: 각종 집회나 시위 및 치안 위해사태의 발생 시 정확한 진상파악과 위법자의 사법처리를 위한 증거자료의 확보 및 치안자료의 축적을 위하여 촬영·녹화·녹음 등의 방법으로 위법상황과 관련된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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