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복판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부지에 은색 건물이 똬리를 트고 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풍경이 변화하는 이 곡선형의 건물은 21일 개관하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다. 총 5개의 구역(△살림터 △상상놀이터 △배움터 △알림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이뤄진 DDP는 세계 최대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다.  
 

▲ 녹지가 보이는 DDP 옥상

 곡선을 사용한 유기적인 건물 디자인으로 유명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DDP 설계의 컨셉을 ‘환유의 풍경’이라고 말했다. ‘환유의 풍경’이란 역동적인 분위기의 패션중심지인 동대문의 풍경을 건축물로 재현한 것이다. 자하 하디드와 설계협업을 맡은 한종률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부사장은 “자하 하디드는 자신만의 건축 디자인에 장소에 대한 해석을 더했다”며 “24시간 변화하는 동대문의 모습을 액체의 흐름으로 비유했다”고 말했다. DDP는 역동적 분위기를 곡선으로 강조하고자 외부와 내부에 직선적인 요소를 전혀 넣지 않았고 수직 형태의 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곡선의 연속으로 이뤄진 DDP는 직각의 고층 건물이 즐비한 주변 환경과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한종률 부사장은 “DDP 디자인의 핵심은 건물 전체를 구성하는 곡선”이라며 “딱딱한 주변의 건물들과 곡선으로 이뤄진 DDP가 대조되도록 하는 것이 디자인 의도”라고 말했다. 직선 건물만이 존재하는 획일화된 도시 속에 원형의 곡선 건물을 지어 시민의 시선을 환기하고 갑갑한 도시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는 목적이다. 한종률 부사장은 “도심의 번잡함 속에 물 흐르듯 자리 잡은 DDP가 도시민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말했다. 건물 옥상에 녹지가 들어설 공간을 마련한 것도 이러한 맥락의 일부다. 시공에 참여한 삼성물산 임명수 과장은 “고층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DDP를 내려다 봤을 때 신선함을 느끼도록 녹지를 마련했다”며 “고층 건물에서 녹지를 볼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고 말했다.

 장소가 지닌 역사적 의미 보존
▲ DDP 외관을 감싸고 있는 4만 5133장의 알루미늄 외장 패널

 DDP가 위치한 동대문운동장은 시공과정에서 한양 도성의 성곽과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다. DDP의 시공을 맡은 임명수 삼성물산 과장은 “시공과정에서 발견된 유물과 성곽의 잔해를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고자 했다”며 “이를 위해 자하 하디드가 최초의 설계안을 일부 수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곽이 있는 문화재 지역은 훼손될 우려가 있어 구조물을 땅에 박지 않고 위에서 지탱하는 시공 방법을 사용했다. 또한 유물을 보존할 전시관을 만들고 시공 과정 중에 발견된 훈련도감의 터를 복원했다. 한종률 부사장은 “동대문 운동장 부지에서 발견된 한양 성곽을 디자인에 반영했다”며 “21세기 건축물인 DDP와 과거의 성곽이 대비를 이루는 동시에 흐름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2수문을 보존하고 동대문 운동장의 전광판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해 과거 역사 속의 동대문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시공과정 중에 많은 유물이 발견됐는데 공사 기간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시공을 진행했다는 비판도 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가치 있는 유물이 상당수 발견됐음에도 2년이 안 되는 복원기간을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발견된 유물과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성을 DDP가 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알루미늄 패널 4만5133장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부어 외벽을 만들지 않은 DDP는 곡선의 유연함을 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알루미늄 패널로 외장을 덮었다. 또한 비정형 건물의 특성상 동일한 크기의 패널이 존재할 수 없어 4만5133장의 알루미늄 판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시공에 참여한 임명수 과장은 “모든 알루미늄 패널을 수작업으로 만들면 공사 기간이 20년으로 추정돼 알루미늄 패널을 만들기 위한 특수 절단장비를 개발했다”며 "각 알루미늄 패널에 각기 다른 유형과 곡률, 조명 등에 따라 고유 번호를 지정해 놓았다”고 말했다. DDP는 곡면을 최적화하기 위해 편평한 곳은 큰 패널로, 곡선이 급한 곳은 잘게 나눠 작은 패널로 구성됐다.
 DDP의 또 다른 특징은 기둥이 최소화 됐다는 점이다. 건물의 용도가 다양한 유형의 전시장과 회의장인 만큼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을 대공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기둥 없는 대공간을 만들기 위해 메가트러스 공법과 스페이스프레임 기법이 사용됐다. 임 과장은 “메가트러스와 스페이스프레임은 고려대 화정체육관 천장에도 사용된 공법으로 무게를 지탱하는 볼(ball)에 삼각형 구조를 이어 붙이는 공법”이라고 설명했다. 
▲ 물 흐르는 듯한 곡선이 돋보이는 DDP 외관

 과거와의 ‘조화’를 택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위치한 종로구 삼청로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다. 조선시대에는 종친부(조선시대 종실제군(宗室諸君)의 일을 관장하던 관서)와 규장각이 있었고, 한국근대사의 주요무대인 국군기무사령부가 들어섰던 자리다. 그리고 현재 서울관이 들어서면서 종침부와 기무사건물은 또 다른 어울림을 보여준다. 때문에 장소가 내포한 역사적 의미는 디자인 공모의 중요한 심사항목 중 하나였다. 현대미술관 서울관 디자인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맡았던 서현(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디자인 공모 당시 기무사령부 건물의 보존과 종친부가 내부로 재이전해 오는 것이 결정됐다”며 “모든 디자인 안들은 장소가 지닌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했다”고 말했다. 
▲ 빨간 벽돌로 외벽을 리모델링한 과거 국군기무사령부 건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과거 건축물과의 공존하면서도 이질감이 없다. 서현 교수는 “민현준 교수의 작품은 주변을 압도하기 보다는 배경으로 존재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해보였다”며 “건물의 유연하게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고 말했다.
 경복궁과의 조화를 위한 노력도 돋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전체 디자인이 단조롭고 튀지 않아 주변의 고건물들이 가진 고유의 느낌을 준다. 민현준 교수는 “미술관이 경복궁과 함께 녹아들어 관객들이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생각나도록 만들고 싶었다”며 “주변의 아름다운 고건물들이 풍기는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자 화려함을 최소화 했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중심 ‘일상’속 미술관
▲ 건물 외관을 감싼 테라코타에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일상 속의 미술관’, ‘관람자 중심형 미술관’을 컨셉으로 디자인됐다. 민현준 교수는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이 쉽게 드나들도록 디자인했다”며 “쉽게 놀러올 수 있는 놀이터와 같은 미술관”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내부에 ‘마당’이라는 공간을 마련한 것도 일상 속의 미술관을 위한 요소 중 하나다. 미술관에는 △종친부 마당 △도서관 마당 △미술관 마당 △전시 마당 △경복궁 마당 △열린 마당 등 총 6개의 마당이 있다. 민현준 교수는 “들어가도 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닌, 편안히 들어와서 구경하도록 마당을 설치했다”며 “굳이 관람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쉽게 방문하게 푸드코트와 커피숍 등도 입구에 밀접하게 배치했다”고 말했다. 
 관람객의 작품 감상을 배려하는 외관과 내부디자인도 돋보인다. 외관의 디자인이 단조로운 것은 주변과의 조화와 더불어 관람객들이 작품이 아닌 ‘미술관’ 자체에 너무 많은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민현준 교수는 “미술관의 외관이 강하면 강할수록 관객들이 관람을 마치고 돌아갈 때 미술관의 외부가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며 “외관이 심플하면 할수록 관객들이 미술관 안 작품들에 더욱 관심을 쏟을 수 있다”고 했다.
 자유로운 관람을 위해 내부 공간에 미술관 동선도 과감히 없애버렸다. 일반적인 미술관은 동선을 통해 시대순적인 작품 배치를 한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정해진 틀에 따라 작품을 구경해야 했다. 민현준 교수는 “동선의 존재는 앞사람들을 쫓아가는 형식으로 작품관람에 타인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며 “동선을 없애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작품에만 몰두하게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디자인의 핵심요소, 외장재
 미술관의 외장재도 경복궁과의 조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교육동에는 테라코타로 만든 외장재를 사용했다. 테라코타는 ‘구운 흙’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는 미술 조각 작품의 소재로 사용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테라코타를 기와 형태로 제작해 조화를 강조했다. 기와형태의 테라코타는 전 세계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유일하다. 민현준 교수는 “경복궁의 기와와 같은 재질로 이뤄진 테라코타를 사용해 경복궁과 미술관의 통일성을 나타냈다”며 “미술관을 위해 새롭게 제작한 형태”라고 말했다. 굴곡진 기와모양의 테라코타는 해의 위치에 따라 색이 변하고 광택도 난다. 민현준 교수는 “자연의 원료로 만들어 계절의 변화와 빛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최적의 외장재”라고 테라코타를 소개했다. 기무사령부 건물의 리모델링에 쓰인 붉은 색 벽돌도 ‘흙’이라는 재질적 특성을 고려해 사용됐다. 그런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총 3개의 건물이 흙이라는 재질에서 통일을 이뤘다.
▲ 조선시대 건축물인 종친부가 위치해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풍경
글│이상욱·박현범 기자 news@kukey
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민현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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