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개념화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 가치는 양성 불평등 체제의 변혁을 목표로 하는 실천성과 운동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페미니즘의 새로운 정치 기획은 68혁명을 전후하여 다른 사회적 소수자 그룹들의 인권 운동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1975년 ‘세계여성의 해’를 계기로 세계행동계획이 채택되었고, 같은 해, 멕시코시티에서 제 1차 세계여성대회가 개최되었다.  유엔을 매개로 한 국제사회의 역동적 움직임에 한국 여성운동계는 큰 자극을 받았으며, 여성문제를 비가시화하고 은폐하려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고 다양한 층위에서 문제의 해결을 모색해왔던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적 궤적은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시기를 거치며 진보와 보수의 갈래로 분화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페미니즘 이론의 실천적 측면이 두드러진 영역은 섹슈얼리티, 노동, 가족 등이다. 이와 관련된 젠더 이슈에 대한 분석과 함께 국가를 매개로 한 양성평등정책의 실현에 있어, 이론과 실천의 합일을 자기 학문의 정체성으로 새롭게 구성하려 했던 여성학 연구자들은 큰 역할을 담당했다. 페미니스트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여성 경험에 입각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함으로써 사회운동의 핵심 의제를 프레임하거나 운동과 운동의 주체를 재생산하고 확장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수적인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을 대학 제도권 안팎에서 구성했다. 199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문화정치학이라는 개념이 여성운동의 한 영역으로 담론화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여성주의 문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이들은 ‘일상’을 드러내면서, 기존의 여성운동단체들이 설정한 한국사회 보편적 여성대중이라는 여성주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다양한 여성 내부의 차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과 논의를 시작할 것을 주장하였다.

 2014년 봄,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 진보여성운동 및 운동주체의 재생산 전망이 지극히 불투명해진 혼돈의 시점이다. 지난 대선, ‘여성’이라는 범주는 핵심적으로 동원되고 또 활용되었으며, 박근혜시대는 다시 여성주의 정치에 새로운 물음과 과제를 던지고 있다. 현재, 역설적으로, 양성평등의 가치와 정책들은 지체 또는 퇴보하고 있으며, SNS를 통해 여성들을 일반화시켜 비하하는 여성혐오 담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여성학 관련 강좌들의 남녀수강생들의 수는 점점 줄고 있으며, 대학내 페미니즘 모임들의 역량도 축소되고 있는 듯하다.

 단기적 예측들은 불안정해지고 불안정성이 불안으로 귀결됨으로써, 사람들은 불안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특권과 위계질서 내의 서열을 지키기 위하여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 과정은 매우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이행의 시기, ‘새로운’ 여성운동의 내용과 형식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위기의 한복판에서, 한국 가부장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왔던 한국 여성운동의 그 뜨거운 열정과 투쟁의 궤적을 기억하는 ‘역사화’의 작업이 필요하다. 사적인 것들, 사회적 소수자의 ‘타자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공감, 적극적 개입이 페미니즘의 시작점이자 핵심 동력이었다. 무한경쟁 속에 감각이 무뎌지는 일상을 성찰하며, 젠더 감수성을 정련하는 일이 한국 페미니즘의 미래를 위하여 지금,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김영선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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