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저의 삶 그 자체입니다.”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안병대(한양여대 영어과) 교수는 30년 넘게 셰익스피어만을 연구해온, 국내 셰익스피어 연구의 전문가다. 안 교수를 만나 셰익스피어와의 인연, 셰익스피어의 철학 그리고 진위설을 물었다. 

 ▶안 교수는 그의 저서 <셰익스피어를 읽어주는 남자>를 통해 셰익스피어와의 ‘독한 인연’을 소개했다. 학부 시절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셰익스피어 연구를 통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을 여러 번 다녀왔다. 30년이 넘는 연구에도 그는 여전히 ‘셰익스피어를 껴안고 있다’고 말한다.

 - 셰익스피어와의 인연을 말해달라.
▲ 안병대 한양여자대학교 영어과 교수. 사진| 이지민 기자 mint@

 “대학교 3학년 때, 셰익스피어 수업 시간에 처음 <햄릿>을 접했다. 그 전에도 연극에 관심이 많았는데, 햄릿은 다른 연극과는 뭔가 ‘달랐다’.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계속 던지던 햄릿이 주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었다. 이후 셰익스피어는 내 삶 속에 지금까지 스며들어있다. <셰익스피어를 읽어주는 남자>에 ‘인생의 외로운 길을 걸어갈 때, 햄릿을 기억하라’라는 구절을 썼는데, 나에게 있어 대학시절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적용되는 구절이라고 본다. 그는 나에게 ‘깊은 호수’다. 햇살이 비치면, 호수의 표면은 반짝반짝 빛나고 투명해보이지만 사실 호수에 한 발짝만 들어가도 깊은 어둠 속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삶과 죽음에 대한 복합적인 세계관을 셰익스피어는 보여주고, 느끼게 해준다.”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 인상 깊었던 일이라면
 “스트랫퍼드에 머무르는 동안 버밍엄 대학 여름학기에 참여한 적 있었는데, 그 지역 초등학생들이 셰익스피어 연극을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문화를 ‘기억과 상상의 산물’이라고 본다. 이렇게 연극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셰익스피어를 몸으로 체득하고, 그를 기억하며 동시에 더 상상할 수 있으니 셰익스피어 관련 문화 활동이 더욱 꽃 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또한 우리의 문화를 기억하고 창조하기 위해서 직접적인 문화 활동을 많이 하면 좋을 것 같다.”

 - 한국인에게 셰익스피어란
 “한국셰익스피어 학회는 셰익스피어 출생 400주년의 1년 전인 1963년에 국내 원로 영문학자들을 중심으로 창립됐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탄생 400주년을 맞아 떠들썩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셰익스피어 학회가 행사를 주도하자는 결집 하에 모든 문화, 예술계가 모였고, 전국 중·고등학교 연극 공연대회도 열었다.
한국인에게, 좁혀 말하면 특히 연극계에서 셰익스피어는 ‘연극계의 전범(典範)’이다. 연중무휴 어디에선가는 셰익스피어 연극을 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연극의 배역을 적절히 소화하면 연극계의 스타가 될 정도니, 셰익스피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연극을 말하기 힘들다.”

 ▶안 교수는 그의 저서 <셰익스피어를 읽어주는 남자>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삶, 죽음, 인간, 우주’로 표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슬픔이 있되 우울하지는 않다’고 말하며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단순한 새드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를 가르켜 ‘400년이 지나도 여전히 감각을 건드리는 언어’를 구사했다고 표현하는데
 “사람들은 그의 언어에 감탄해 그를 ‘만 가지 마음’을 가진 셰익스피어라고 불렀다. 그의 작품 속에 있는 언어는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선명한 비유를 통해 드러난다. 셰익스피어의 유려한 언어구사는 한 줄 걸러 한 줄씩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맥베스> 5막 5장에 ‘인생이란 단지 걸어가는 그림자 (Life’s but walking shadow)’, <햄릿> 1막 5장에 ‘시대가 어그러져있어 (The time is out of joint)’등을 보면 얼마나 비유가 적절했는지 알 수 있다. 엉망진창인 시대(time)를 관절(joint)이 어긋나서, 사람 몸이 망가진 상태처럼 표현했다.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이해하면 충격 받을 정도로 그의 언어 감각은 따라잡기 힘들 정도이다.”

 -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가
 “<햄릿> 3막 2장 22행에 ‘자연의 거울을 비추는 것이 연극(to hold, as’twere, the mirror up to nature)’이라는 대사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역시 자연의 거울을 비추는 작품들이다. 햄릿은 진실을 추구하는 삶, 리어왕은 노년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삶, 오셀로는 사랑을 추구하는 삶, 맥베스는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이 작품들은 주인공이 파국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의 죽음과 몰락을 통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게 한다. 또한 <햄릿>에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도 특별한 신의 섭리가 있는 법. 죽음이 오지 아니하면 내일 올 것이고, 내일오지 아니하면 오늘 올 것이네(There is a special providence in the fall of a sparrow. If it be now, ‘tis not to come; if it be not to come, it will be now; if it be not now, yet it will come)’ 라는 대사가 있다. 우주에서의 인간의 겸손한 한계를 보이며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를 없으며, 죽음은 언제나 공평하고 운명처럼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슬픔이 있되 우울하지는 않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비극의 역설(The paradox of tragedy)이다. 비극에서 주인공이 몰락하는 결말을 보고 관객은 죽음에 관한 슬픔은 느끼지만, 우울해하지는 않는다. 4대 비극에서 비록 주인공들이 죽지만, 고난의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인간다움’과 ‘인간의 존엄성’을 관객에게 상기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우울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오늘날까지도 여러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셰익스피어의 생애는 의문투성이다. 유년기의 기록은 전혀 없으며 ‘Shakespeare’라는 이름의 철자도 확실치 않다. 때문에 가상 인물설, 대행 작가설 등 여러 진위 논란이 있었다. 또한 <베니스의 상인> 등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종차별, 여성 차별적 성격 때문에 혹평을 받기도 했다.

 - 셰익스피어 가상 인물설에 대해 말해 달라
 “몇 백년 동안 계속돼왔던 이야기다. 프란시스 베이컨, 옥스포드 백작, 엘리자베스 1세, 크리스토퍼 말로 등등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의 후보자로 등장한다.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핵심은 결국 ‘시골 고등학교 학벌 밖에 안 되는 작가가 이런 불멸의 작품을 남길 수 있는가?’ 라는 편견이다. 이에 저명한 셰익스피어 전문가 스탠리 웰스(Staley Wells)는 ‘모든 것은 편견의 소산’이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여성차별, 인종차별 논란의 의미는
 “문화를 떠나고서는 작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400년 전 르네상스 시대의 차별을 작품에서 찾을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시 일방적으로 소수자를 차별적으로 작품에 담았던 작가들과 달리, 셰익스피어는 소수자나 타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한다.
 당시의 고정화된 차별로는 여성과 종교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시대 여성은 결혼 전에는 아버지, 후에는 남편의 소유물이었기에, 아버지 허락이 없는 결혼은 죽음까지 각오해야했다. 또한 기독교 문화 속에서 ‘악마의 존재’로 규정된 유대교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이 존재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인종적·여성적·종교적 차별에 대해 이중적 목소리를 담았다. 그의 희극 대부분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욱 강한 성향을 지닌다. 이를테면 <베니스의 상인>의 포샤는 남성보다 더 기지가 넘치는 여인으로 나온다. 또한 유대인인 샤일록의 목소리 또한 충분히 담았다.”

 - 왜, 어떻게 셰익스피어를 읽어야하는가
 “‘왜 소설을 읽는가, 왜 문화 생활하는가?’와 동일한 선상의 질문이다. 사람이 영혼과 육체로 이뤄진 존재라면, 우리가 육체에 신경 쓰는 것만큼 영혼을 위해야한다. 인생을 대충 묻어 살며 무리들 속에서 어울려 살아갈 때 고독한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아,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너무 타협적이고 속물적인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햄릿>을 기억해야 한다. 햄릿이 왜 고독하게 진실을 추구하며 살았는지를. 이렇게 셰익스피어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생각하고, 의문을 품고, 상상하며 읽는다면, 인간과 세상에 대해 더 깊고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이럴 때 우리의 영혼의 밭을 일굴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셰익스피어는 읽혀져야 한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