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부터 6일간 본교 법학관 신관에서 아세아문제연구소(소장=최장집 교수·정경대 정치외교학) 주최로 제3회 한국민주주의 특강이 진행됐다. 이번 특강에서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비판적 접근과 새로운 모색>이란 주제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각도로 조명해 보고 이에 대해 모색해본다.이번호에서는 최장집(정경대 정치외교학과)교수의 특강 내용을 통해 현재의 정치와 사회 문화 상황을 진단해본다.

(1)김우창 - 정치변화의 이상과 현실
(2)임희섭 - 한국 사회의 시민성과 한국 민주주의, 한국 시민사회 운동과 한국 민주주의
(3)최장집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 디자인


한국민주주의의 딜레마는 체제자체에 내재된 딜레마와 민주주의 외부로부터 발생하는 딜레마가 있다.

체제자체에 내재된 딜레마는 △특수이익의 조직을 집단 이기주의로 비난 △정당리더와 정부의 수장으로서의 이중적 역할 △무임승차 △정치의 경제 △국가기구 내에서의 기능적 자율성 등을 들 수 있다.

정당리더로서의 역할과 정부의 수장으로서의 역할 사이의 딜레마는 한국정치의 긴장과 갈등의 원천이 된다. 선출된 정부는 대체로 집권 전의 개혁적인 것에서 집권 후에 보수적인 것으로의 선회를 특징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태도 변화가 ‘열망-실망 사이클’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민주화 이후 한국 대통령들의 공통된 특징은 두 가지가 있다. 대통령이 된 후에 한 정당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한다는 점과 갈등을 적극적이며 민주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회피하려 한다는 점이다. 선출된 대통령은 일차적으로 지지한 투표자들이 그를 선출함으로 투표자들의 요구를 위임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를 책임지지 않고 정당의 대표가 아닌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역할을 취하게 된다. 정당은 위임과 책임을 연결시키는 연계의 고리이다. 대통령은 정당리더와 정부수장으로서 양자역할의 적절한 균형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무임승차는 자기 희생을 하지 않고 혜택을 보는 경우를 말하는데 민주주의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개개인은 자발적으로 공공재 창출에 기여할 유인이 없으므로 직업적 정치인에게 참여의 대부분을 맡기고 있다. 그래서 정치적 무관심이나 냉소주의 및 불참여가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민주주의는 그 자체 내에 군이나 사법기구, 검찰 등의 비민주주의적인 전문적 특수기능을 갖는 기구들에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기구가 효율적으로 원활하게 운영되려면 파당적 이해와 대중적 압력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

민주주의 외부로부터 발생하는 딜레마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와 분배 △과부하와 통치능력의 부재 △부패와 퇴락 등을 들 수 있다.

자본주의는 사적영역에서 기업들의 결정에 의해서만 작동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규칙이나 법에 의해서 작동된다. 이러한 시장의 틀은 정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상호 제약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통치능력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통치체제이다. 지금까지는 시민들이 얻을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정치적 복종을 해왔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유지돼 왔다. 정치 부패는 구조적인 문제로 우리나라 최대의 문제이며 민주주의 내부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부패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부패의 문제를 통제 가능한 범위의 문제로 줄이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제도문제와 관련해서는 △단기적 파당적 이해의 관점 △반지역주의 △신자유주의적 원리 △반부패담론 이 네 가지 특성이 두드러진다.

권위주의는 정치 경쟁 결과의 확실성을 보장하는 체제이며 민주주의는 정치 경쟁의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체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권위주의 하에서 선거는 선거 과정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정당화의 기제에 지나지 않으며 민주주의에서는 결과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치행위자들이 경쟁에 참여할 유인을 갖는다. 한국에서 선거의 패자는 결과를 수용하기 보다 언제나 규칙의 변화를 시도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아직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반지역주의는 사태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만들어내며 정치적 경쟁자를 공격하는 논리나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게 한다. 기존의 대통령제가 지역당 구조를 유지·존속하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면 (그것이 엘리트간 게임의 제도화인 한) 변화된 어떤 체제 역시 지역당 구조를 재생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원리의 반영으로 제도개혁을 들 수 있으며 이것은 시장근본주의의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장원리가 강력하게 작용한 결과물의 예로 김대중 정부가 국회의원 수를 줄인 것을 꼽을 수 있다. 반부패담론은 정치를 매우 부패한 것으로 보며 이는 강한 도덕주의적 시각을 담고 있다.

또한 분권형 대통령제가 대통령의 권력축소를 위해 필요하다면 △정부 내의 다른 기구와의 힘의 분산과 배분관계-힘의 수평적 분산과 수직적 분산 △삼권분립의 문제 △대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힘의 배분 및 균형관계 등의 세 가지 문제가 고려돼야 한다. 국가권력이 강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가권력을 너무 축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책임총리제를 언급했는데 한국이 대단히 경쟁적인 정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가능할 것인지 우려가 든다. 삼권분립의 문제에서는 견제가 너무 강하고 균형도 없는 것이 한국 실정이다.

민주주의의 발전이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어느 한 쪽에서 극단적으로 치우칠 때 민주주의는 위태롭게 된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영향 하에서 제도화의 기준과 규범이 자유주의의 극단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개혁의 방향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균형을 잡도록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맞춰줘야 한다.

제도개혁의 기본원리는 효율성, 생산성, 저비용의 가치를 핵심으로 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원리를 압도하면서 정치개혁을 주도하는 원리로 나타나게 된다. 정치개혁의 목표와 가치는 참여나 정부에 대한 접근 및 선출된 정부의 책임성과 응답성 등의 민주적 원칙들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돼야 한다. 개혁의 또 다른 중요 기준인 부패는 민주화와 그로 인한 투명성의 증대로 인해 적어질 수 밖에 없다. 민주화는 부패를 구조적으로 축소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패가 정치를 잘못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부족이 부패를 조장하는 것이다.

집권 후 노 대통령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정당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당파적 이해 관계를 초월하는 초당적 리더로서의 이미지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 대표로서의 역할을 부정한다는 것은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한 투표자, 사회, 시민사회와의 관계의 고리를 차단함을 의미한다. 이는 오도넬이 말하는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를 지향하는 것이다.

선거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분권형 대통령, 최근에는 미국식 대통령제를 언명했지만 한국의 대통령제와 미국의 제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로버트 달은 “미국의 제도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매우 독특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누구도 모델로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국가 수장 ·최고 행정 수반으로서의 기능이 합쳐진 것으로 왕과 수상을 합친 지위를 직접 선출한다는 면에서는 한국과 유사하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떠받치는 독특한 체제로 구성됐기 때문에 한국과는 다르다. 로버트 달에 의하면 미국대통령제는 불균등대표를 제도화한 것으로 다수결의 원리를 실현하지 못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민주정보다 공화정이라고 정의된다. 따라서 미국을 모델로 생각할 수 없다.

제도개혁의 목표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어떤 사회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지나치고 무엇이 모자라는가 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설정돼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열정을 포함한 여러 사회적 갈등과 문제점들을 제도의 틀에 담는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논의민주주의의 기반의 되는 공론의 장이 넓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에 대응하는 시민사회가 대안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에 구속력을 갖고 정치적 강제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최종적·집합적 결정은 곧 정치 사회에서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율적 결사체와 운동은 정당을 대체할 수 없으며 시민 사회 위의 정치 사회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한다. 정치 개혁은 정당과 사회의 관계를 바꾸는 것이며 협애한 정당 체제를 사회의 균열, 갈등, 이익, 열정에 광범하게 기반을 갖게 하고 그로 인해 대표성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할 때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정당 연계가 강화되고 참여·대표성·책임성의 거리도 좁혀질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1943년 강원 강릉 출생 
△1983년 미국 시카고대 사회과학부 정치학 박사
△1983~1987 본교 정경대 조교수, 부교수
△1986~1988 한국산업사회연구회 회장
△1987년 본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0~1991 한국정치연구회 회장
△1998.04~1999.04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1998.10~1999.12 미국 코넬대 초빙교수
△ - 현 본교 정경대 정경학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3.08~현 본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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