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 -이석 <비둘기 집>

 <비둘기집 신문>은 포근한 사랑이 있는 가정의 가족신문이다. 13살 소년이 동생과 만들기 시작한 신문은 그 소년이 중년이 돼서도 계속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은 여느 집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하지만 비둘기집 신문에서는 모두 ‘소중한’ 사람이 된다.
 너도나도 신문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요즘, 가족신문을 통해 가족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비둘기집 신문 편집장, 에디페서(Edifessor=editor+professor) 조영헌 교수(사범대 역사교육과)를 만났다.

 - 올해가 창간 30주년이라고 들었다

▲ 조영헌 교수. 사진│이영현 기자 imstn@

“1984년 5월 25일 창간해 올해로 30년이다. 시작할 때부터 편집장을 맡아 올해로 30년째다. 1984년 후로 10년간은 매달 나오다가 그 이후로는 격월로 발행하고 있다. 올해 4월에 나올 30주년 기념호가 241호다.
처음 시작했을 땐, 가족과 친척들만 보다 신문이 유명해지면서 독자도 늘었다. 처가와 이웃들도 보고 아버지 친구들, 내 친구들, 동생 친구들 등 해서 우편으로 70명, PDF로 만들어 이메일로 80여 명에게 보내고 있다”

 - 비둘기 신문은 어떤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가
“기획과 작성은 일상에서 이뤄진다. 기성 신문처럼 형식적인 과정은 없다. 일요일 저녁에 식사를 하면서 누가 어떤 기사를 쓸지를 정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1면 커버스토리가 들어가는데 대부분 우리 집 소식이고 가족들이 쓴 시와 일기를 넣기도 한다. 요즘은 항렬자로 ‘수’를 쓰고 있는 친척들을 만나, 탐방 기사를 쓰고 있다”

 -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내용과 형식이 많이 변했을 것 같다
 “가족신문은 가족 구성원의 성장을 따라 논조가 계속해서 바뀐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때는 청년 시절의 혈기를 담아냈다. 그 당시엔 과외가 불법이었는데 집에 누군가가 와서 불법과외를 받으라며 어머니를 꼬드기고 있더라. 그래서 신문에 2호 연속으로 ‘과외학습을 반대하며’라는 글을 실었다. 대학생 때는 레포트, 석사·박사 논문을 정리해서 게재했는데 글이 어려워서 인기가 없었다. 그 후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 딸 바보 편집장의 ‘딸을 위한’ 신문이 시작됐다. 내용만큼 형식도 달라졌다. 초창기엔 손으로 기사를 썼지만 1993년부터 워드 프로그램으로 신문을 만들었다“

 
- 종이 신문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독자와의 약속이다.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처럼 연배가 높은 분들에게는 아직 종이 신문이 편하다. 종이가 편한 사람이 있는 한 계속 종이로 발행할 생각이다. SNS로 매체는 바뀔 수도 있지만 가족의 가치는 끝까지 지키고 싶다. 공유할 일이 많아야 만나더라도 할 이야기가 많다. 친척들과 한 해에 겨우 한 두 번 보는데, 가족신문이 있어 오순도순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 가족신문은 가족을 연결해주는 힘이 있다.”

 - 비둘기 집 신문에서 기사의 경중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나
 “거창한 원칙이 있진 않지만, 기사의 주제와 독자가 가족이니 만큼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사를 쓴다. 얼마 전에 동료 교수가 어느 잡지에 본인의 어머니에 대한 글을 실었다. 찡한 내용이 가슴이 와 닿아 양해를 구한 뒤 비둘기 집 신문에 실었다.”

 - 비둘기 집 신문이 서울 정도(定都) 600년 기념 타입캡슐에 들어갔다
“TV에 출연했을 때 사회를 보던 손석희 아나운서가 ‘시장님 (타임캡슐에 넣게) 비둘기 집에 연락 좀 주시죠’라고 멘트를 했고 그 다음날 서울시에서 연락이 왔다. 1994년이 서울이 수도가 된지 600년 되는 해라 서울시에서 시민들의 생활상을 담는 타임캡슐을 만들고 있었다. 유물은 말을 하지 않는데, 우리 가족신문은 평범한 가정의 일상사를 직접 말해주기 때문에 들어갈 만한 가치가 있었고 생각한다”

 - 30년 동안 지속된 원동력이 있다면
“아버지의 집요함과 두 아들의 유약함이랄까(웃음). 아무래도 타임캡슐이 가족신문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400년 후에 보일 우리 신문을 생각하며 역사학자로서 기록문화의 자부심을 느꼈다. 조선의 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비둘기집 신문도 ‘꾸준함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계획은
“세계화 시대가 됐으니 가족신문을 만드는 세계 여러 가족들과 동호회를 만들고 싶다. 일본에는 가족신문을 만드는 가정이 꽤 많다고 들었다. 그 외에도 중국, 아프리카 등 서로 교류할만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소망이다. 언어도 내용도 많이 다르겠지만 가족이라는 가치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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