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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의 쓰라림은 얼마나 기다려야 가실까
상흔의 쓰라림은 얼마나 기다려야 가실까
  • 고대신문
  • 승인 2014.05.0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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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그 이후

 4월 16일 전국을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생존자 생환의 염원은 세월호 침몰 지점에서 4km이상 떠내려갔지만 여전히 유족들에게 힘이 돼주는 사람들이 있다.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와 서울시청 합동분향소에는 자원봉사자들과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본교 안팎에서도 미약하나마 희생자들에게 위로가 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본인의 재능을 살려 추모의 마음을 담은 창작물을 만든 대학생 연합동아리와 캘리그래퍼도 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힘을 보태는 이들을 만났다.

 수백 개에 달하는 흑백의 추모 현수막이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안산 화랑유원지 앞 대로변을 에워싸고 있다. 안산 시내에는 유가족의 사그라진 희망을 반영하듯 수백 개의 플래카드에는 ‘무사귀환’의 말은 사라지고, ‘미안하다’, ‘명복을 빈다’는 말만 남았다. 화랑유원지에 공식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이튿날인 30일 오후 4시, 가슴에 노란 리본, 검은 리본을 단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화랑유원지 입구까지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목탁소리와 염불 외는 소리 고요하게 울리고, 붉은 눈시울의 추모객들은 조용히 훌쩍였다.
 합동분향소에 들어서 꽃에 둘러싸인 200여 개의 영정과 위패를 마주한다. 영정과 위패 앞에 높이 쌓여있던 국화 더미 위에 국화 한 송이를 더하고, 한 무리의 사람들과 같이 묵념과 묵례를 하고 줄을 따라 합동분향소를 나간다. 오후 6시, 퇴근한 이들이 잠시 줄었던 합동분향소 앞 추모 행렬을 다시 이었다.

 
피해자의 발이 되기 위해
 화랑유원지 내 중심부에 위치한 합동분향소를 빙 둘러싸고 있는 부스 중 ‘안산 개인택시 운송사업조합’ 부스는 주차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돼 있다. 노란 조끼를 입은 택시운전기사들이 맞은편 주차장에 ‘세월호 유가족 수송차량’ 종이가 붙은 택시를 세워놓고 지부장의 지시를 기다린다. 안산 개인택시 무료봉사를 총괄 지휘하는 나상균 안산시 개인택시조합 지부장은 “세월호 사건 다음날인 17일부터 24시간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료봉사를 진행하는 택시의 역할은 하루 평균 다섯 번 안산 외곽에 위치한 헬기 착륙장과 안산 시내 장례식장을 오가며 희생자 유가족의 이동을 돕는 것이다.
 현재 안산시 개인택시조합의 조합원 총 2,000여 명 중 450명이 자발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중 하루에 15대의 택시가 봉사를 진행한다. 나상균 지부장은 “내 휴대전화가 진도 팽목항, 시청 상황실, 분향소 본부 등과 연결돼 있어 상황을 전달받으면 적절한 장소로 택시를 보낸다”고 말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 봉사자로 참여하는 만큼 그들은 유가족과 정신적 고통을 나누고, 육체적 피로와 싸우고 있다. 나 지부장은 “택시기사들의 경우 매일 4~5시간씩 유족들과 함께 택시를 타지만 유족들에게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마음 아파 한다”며 “또, 24시간 대기를 하기에 최근엔 잠을 거의 못 잔다”고 말했다.
 개인택시 봉사자들은 사태가 종료된 후라도 안산 심리지원센터와 보건소를 이용하는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을 도울 계획이다. 나 지부장은 “조합원 중에서도 실종자 가족이 3명 있다”며 “정부가 앞으로는 이번과 같이 사고 발생 후 수습에만 치중하기보다 예방에 힘써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유가족의 손이 되기 위해

 단원고 학부모지원팀 본부에서 봉사한 윤재은(한양대 정보사회학12) 씨는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오다가다 마주쳤을 수 있는 피해자와 희생자를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았다”며 “단원고에서 안산 내 대학에 리더급 봉사자들을 파견해달라는 요청이 와 봉사를 자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은 씨는 4월 22일에서 28일 사이, 5일 간 지원팀 본부에서 △장례식장의 빈소 상황과 진도 현장 상황 파악 △희생자 발인 명단 체크 △봉사지원자 배치 등의 업무를 맡았다. 장례식장 파견 때는 실의에 빠진 유족을 대신해 조문객을 받고, 그들의 식사준비, 이후 정리 등을 했다. 그녀는 국민들의 관심이 한창이던 화(22일), 수(23일)에는 자원봉사 안내로 하루 종일 밥 한 끼 못 먹고 일을 계속했다. 학교시험기간이 겹쳐 봉사 후 밤늦게 들어가 공부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하고 시험을 봤다. 시험은 잘 봤냐는 걱정스런 기자의 물음에 “기본은 봤죠”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런 재은 씨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몸이 피곤할 때가 아니라 유족이 쓰러졌다거나 시신이 바뀌었다는 비보를 들을 때였다. 그녀는 “나도 심적으로 동화가 돼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했는데 유족들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며 “그 때문에 자리를 더욱 떠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그녀는 현장에서 만난 선의의 봉사자에게 감사의 안부를 전하고 싶다 말했다. “홍익대 분이 저번주 화요일부터 4~50명의 봉사자들을 모아 야간 봉사활동을 전부 맡아주셨어요. 빈 곳 있으면 더 충원할 테니 연락 주라고 하신 게 기억이 나요. 지금이라도 정말 감사해요.”

글·사진│이소연, 우다현 기자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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