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술의 세계적 흐름을 읽고, 혁신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문화기술(CT) 포럼이 20일 코엑스 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디자인 △애니메이션 △전시 등의 문화 콘텐츠에 기술이 적용된 사례를 알아보고, 그 발전 방향을 다루는 강연이 진행됐다. 또한 각 콘텐츠 전문가들의 강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참여자가 현장에서 직접 체험해보는 부스도 마련됐다. CT 포럼의 본격적인 세션 시작에 앞서 뮤지컬 <고스트>의 무대감독인 폴 키에브가 기조연설을 했다. 마술가이자 무대감독인 그는 “미래 감동을 주는 콘텐츠는 하나의 장르가 아닌 음악, 공연, 기술이 복합적으로 뭉쳐 나타나는 것으로, 마술은 그 콘텐츠의 재미를 극대화 하는 대표적인 도구”라고 밝혔다.

 기술과 예술의 만남
 구글 creative lab 디자이너 아이작 베르트란(Ishac Bertran)은 기술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과 현재 구글에서 진행하는 기술과 예술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했다.

 과거에는 아티스트가 기술을 활용해 예술 작품을 생산했다. 즉, 예술이 원 재료였다면 기술은 이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였다. 최근에는 이 관계가 뒤 바뀌어  예술이 기술창조 과정에서 하나의 도구가 됐다. 베르트란은 등산을 비유로 들어 기술의 발전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진화, 혁신, 창조 3단계로 설명했다.

 A, B, C라는 사람이 산을 오른다고 가정하자. A는 주어진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올랐고 가까스로 중턱에 다다랐다. 그 결과 A는 ‘진화(evolution)’를 이뤄냈다. B는 정확한 사고와 전략을 갖고 길을 택해 정상까지 올라 ‘혁신(innovation)’에 성공했다. 반면 C는 새를 보고 열기구를 만들어 정상보다 높은 곳에 도달했다. 영감과 기존의 틀을 깨는 사고를 통해 ‘창조(invention)’를 이끌어 낸 것이다.

 베르트란은 기술을 통해 창조될 미래의 예술 콘텐츠를 빙산의 모습에 비유했다. 그의 비유에 따르면 바다에 잠겨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빙산의 아랫부분은 ‘실제 기술’을 의미한다. 예술 컨텐츠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실제 눈으로 인지하는 부분인 빙산의 윗부분은 스토리에 비유됐다. 배르트란은 이러한 스토리에 상당히 강조점을 둔다. 베르트란은 “기술은 다른 기술이 나오게 되면 계속해서 대체가 되는 속성을 지니지만 스토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항상 기억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술이 어떻게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로 기술은 오감을 뛰어넘어 다른 차원의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에 도달하게 해준다. 그 다음으로 기술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표현의 양식과 방향을 넓힐 수 있다. 세 번째는 기술이라는 것은 우리가 기술을 가지고 무엇을 꼭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미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구글은 기술적인 요소가 예술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느냐에 대해서 그들이 진행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A minute with in 프로젝트’는 사람마다 시간을 어떻게 인지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개인의 고유의 인식을 현재 이미지로 표현해준다. 파스 어 파스(pas a pas)는 기하학 혹은 물리학 적 표현을 현실에 구현해준다. 마지막으로, 제너레이티브 포토그래피(generative photography)는 파생 사진인데,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빔 프로젝터의 빛 영상을 카메라로 잡아서 표현을 하는 방식이다.

 헐리우드 애니메이션 제작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가 ‘렛잇고’ 부르는 장면은 화려한 영상 효과로 유명하다. 이 장면에서 얼음 입자가 날리고 엘사의 드레스가 변하는 등의 모든 특수효과는 한국인 유재현 아티스트의 손에서 나왔다.

 유재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아티스트는 이펙츠(Effects)를 주로 다룬다. 그는 자신의 일을 ‘마법사의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펙츠 기법은 그래픽 입자들 하나하나를 움직임으로 재현해서 자연현상 같은 영상으로 재구성해 내는 것을 말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물의 요동, 땅이 갈라지는 것, 화염, 바람 등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이펙츠 기법으로 구현해 낸다.

 자신의 직업을 소개한 그는 헐리우드 애니메이션 기술 계보를 간략히 설명했다. 헐리우드에서 3D 애니메이션 기술이 처음 사용된 영화는 셜록홈즈(1986)다. 이어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1991)에선 최초로 3D 배경이 사용됐고, 파이널 판타지(1998)에 처음으로 3D 사람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후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해 폴라 익스프레스(2004)에서는 360도로 촬영한 얼굴과 몸의 움직임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구성했다. 영화 아바타(2009)는 최초로 얼굴표정 캡처로 이모션 캡처링을 사용했고, 애니메이션 랭고(2011)에서는 라이브액션 비쥬얼 이펙츠가 최초로 결합됐다.

 유재현 아티스트는 한국 애니메이션 아티스트의 역량과 헐리우드 애니메이션 아티스트의 역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기술도 라이센스 비용만 지불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력의 차이도 없다. 그럼에도 한국 애니메이션이 일본이나 할리우드에 뒤처지는 이유는 비용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재현 아티스트는 “매 영화마다 새로운 기술이 사용될 만큼 급속도로 기술이 발전하는 요즘, 도구로써의 기술력은 중요하지 않다”며 “한국에는 헐리우드 아티스트보다 훌륭한 역량을 가진 분이 많지만 비용 지원과 인력이 풍부한 해외로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영감과 발상이다. 유재현 아티스트가 정의하는 ‘영감적 발상’은 내가 믿는 것을 사람들이 믿게 하는 것이다. 즉, 관객과 제작자 간의 소통의 도구이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참신한 스토리를 제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스토리나 레이업 등의 기술적 역량이 독보적이지 않는데도 헐리우드나 일본에서 감동을 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영감적 발상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열린 입’ 현상을 설명하며 강연을 마무리 했다.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을 때 보통 입을 열게 되는데, 이런 ‘열린 입’ 현상은 마음이 열렸을 때 나옵니다. 저는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지만 기술을 적용함에 앞서 사람의 마음을 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감적 발상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갤러리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미술관이지만 작품 앞에만 서면 놀라운 일이 펼쳐진다. 그림 속 조명이 깜빡이고, 나비와 꽃들이 살아 움직인다. 백지성 디지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독자적인 기술을 발전시켜 살아있는 미술관을 만들었다.  

 움직이는 미술관은 고전 명작에 움직임과 스토리를 부여해 관객과 작품과의 소통을 돕는다. 미술관의 대표작은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와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디지털로 재탄생 시킨 작품이다. 반 고흐의 그림 앞에 관람객이 서면 카페의 조명이 모두 꺼진다. 잠시 후 불이 다시 켜지면서 작품 속 인물들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불이 꺼진 카페의 모습과 명백한 대비를 이뤄 원작만 감상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모나리자>에는 세 작품과 연결돼 있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두 소녀의 초대를 받은 모나리자는 고개를 숙여 초대장을 읽는다. 옆 작품에는 두 소녀를 찾으러 프랑소와 밀레의 <건초더미> 사이를 지나는 모나리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어 르느와르의 <두 소녀>에 도착한 모나리자는 두 소녀와 아니에르에서 다과를 즐긴다.

 그는 “우리의 기술을 기반으로 컨텐츠의 예술성을 극대화 하고 싶었다”며 “움직이는 갤러리를 그 첫 시작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움직이는 갤러리의 핵심 기술은 동작인식 기술이다. 움직이는 갤러리의 작품들은 동작인식 센서를 통해 관람객의 동작을 실시간으로 그림에 반영한다. 관람객의 움직임과 작품 간의 소통이 자연스러워지려면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수집돼 프로그램화 돼야 한다. 백 대표는 이를 위해 해당 작품을 몇 명이 얼마나 봤는지 기록으로 남긴다. 또한 향후 효율적인 작품 배치를 위해 관람자의 키와 체형까지 기록해 데이터를 수집한다. 

 박 대표는 미술 작품에 기술을 부여할 때 주의할 점으로 ‘기술이 작품 위로 올라가지 않아야 함’을 뽑았다. 여러 사상을 배경으로 미술을 천천히 봤을 때, 그 미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조금 더 역동적이고 재미있게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했다”며 “작가들의 메시지를 해치면서 까지 기술을 부여하면 그 작품은 더 이상 미술이 아닌 게임이 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을 활용해 미술관을 세우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위해 카메라 같은 하드웨어를 마련하고, 프로그래밍 개발 등의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발로 뛰어 저가형 카메라를 지원 받고, 직원들과 자체 시스템 툴을 개발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이처럼 국산 기술에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외국 기술이 사실 툴도 잘 마련돼있고 좋은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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