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카페는 우리 대학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됐다. 학교 안팎으로 다양한 종류의 카페가 넘쳐나고, 교내에도 카페가 들어섰다 사라지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불과 10년, 20년 전만 하더라도 ‘민족고대’에 카페가 들어선다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큰 관심거리였다. 당시 학생들은 카페 입점을 저지하기 위해 카페 앞에서 뱃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건물을 훼손하기도 했다. 과거 고대신문 보도와 당시 재학생이었던 교우의 증언을 통해 10년 단위 카페 인식 변천사를 살펴봤다.

 1994년 보디가드
 개업부터 口舌戰(구설전)에 시달렸던(?) 보디가드가 급기야는 虎患(호환) 일보 직전이라고. 밤만 되면 그 카페 언저리가 막걸리로 거듭난 虎兄(호형)들의 連坐籠城(연좌농성)으로 무법천지로 변한 지 꽤 오래라는데... 호사스런 내부 장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널찍한 창유리 앞에서 憤氣中天(분기중천)한 호형들이 ‘응원가’, ‘민족고대 정기가’ 등을 부르며 으르렁거린다니 ‘보디가드’, 꼭 구지가 듣는 거북이 마냥 오싹하겠소.(하략)

 고대신문 1994.3.14. 석탑춘추
 
1994년 안암동 참살이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최고급 카페인 ‘보디가드’의 등장 때문이다. 흥행에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 <보디가드>에서 이름을 딴 이 카페는 압구정에 본점을 둔 고급 카페였다. 당시 본교를 다녔던 대다수 학생들은 ‘보디가드’에 적잖은 반감을 표출했다. 1994년에 제 27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정재관(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학 문화가 대안 문화적, 저항적 성격을 형성했던 80년대와 달리, 90년대는 대학에 노래방 등 오렌지족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그 일부라고 볼 수 있는 ‘보디가드’는 학생들로부터 큰 반감을 샀다”고 말했다. 이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27대 총학생회는 대자보를 붙이고 항의 시위를 하는 등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학생들의 거센 반대운동으로 보디가드는 상호를 한글인 ‘목신의 오후’로 바꾸고 일부 메뉴의 가격을 내리고, 사과를 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2004 타이거플라자와 스타벅스
 현재는 투썸플레이스, 커피빈, 스타벅스 등 유명 프렌차이즈가 대학에 입점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지만, 10년 전만 해도 유명 프렌차이즈의 대학 입점은 학생들로부터 빈축을 사는 일이었다. 2004년 본교 타이거플라자에 스타벅스가 입점하는 것만 해도 그랬다. 

 타이거 플라자는 돈 벌려고 지은 건물이 아니다. 남는 땅에 좀 더 좋은 쉼터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스타벅스의 비싼 커피를 사 먹지 않아도 4층의 좋은 시설에서 자판기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고급화도 필요하다. 고대도 이제 다양한 학생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고대신문 2004.11.8 어윤대 총장 인터뷰
2004년에는 어윤대 총장의 ‘고려대 개혁’ 중 하나로 국제관 옆에 타이거플라자가 세워졌다. 학생 복지를 위한 단독 건물로 기획은 야심 찼지만, 모든 학생의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타이거플라자 내 입점한 업체가 지나치게 상업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소비주의 문화의 상징인 스타벅스는 타이거플라자에 입점한 여러 업체들 중에서도 비판의 표적이 됐다. <고려대 주변 카페 소비 문화(조윤상, 2007)> 연구에 따르면, 최초로 스타벅스가 대학에 입점한 사건이었으며 특히 입점하는 대학이 전통적·민족적 성격이 강한 본교였다는 점이 큰 화제였다고 서술돼있다.

 학생들의 반대활동도 거셌다. 타이거플라자를 바꾸는 모임(타바사)이 조직돼 서명운동, 대자보, 항의 시위 등 상업시설이 교내로 유입되는 것을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다. 당시 타이거플라자 문제를 취재한 김연정(국어교육과 03학번) 전 고대신문 기자는 “2004년만 해도 스타벅스 같은 커피점이 교내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며 “교문만 나가면 상업시설이 많은데 굳이 교내에 들어와야 하는가에 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2004년 11월 4일에는 타이거플라자의 1,2층 유리가 고의로 파손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상욱·이영현 기자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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