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 벡 교수의 공개강연이 8일 오후 3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강연은 ‘해방적 파국, 기후변화와 위험사회에 던지는 함의’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울리히 벡 교수는 “세계적인 위험에 숨어있는 ‘해방적 부작용’이라는 탈바꿈과 그로 인한 변화를 설명하고자 한다”라며 “기후변화와 위험사회 간의 관계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다”고 강연의 운을 띄웠다.


  ‘글로벌 위험세대’와 한국의 20대

  탈바꿈을 위해선 ‘세대’를 위험사회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벡 교수는 “세계적으로 위험이 만연해진 요즘, 글로벌 위험세대는 국제 사회를 그 내부적 국가의 맥락이 아닌 전 세계적인 맥락으로 파악하고 새로운 탈바꿈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벡 교수는 독일의 사회학자인 칼 만하임(Karl Mannheim)의 ‘세대 이론’에 기반해 세계적 위험사회 속 세대교체에서 발생하는 탈바꿈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세대(generation)’는 ‘계급(class)’과 대비되는 개념”이라며 “계급으로 구성된 기존 사회에서는 사회적, 정치적 질서가  이전의 것을 답습하는데 그쳤다면, 세대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세대의 교체에 따라 사회의 질서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말했다.

  울리히 벡 교수는 세대의 개념을 비슷한 사건이 계속 일어남에 따라 분노와 깨달음이 반복되며 이내 궁극적 변화를 야기하는 탈바꿈 개념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탈바꿈이 일어난 사례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젊은 세대가 빈부격차, 청년실업 등을 이유로 반정부 시위를 일으킨 ‘아랍의 봄(Arab Spring)’을 들었다. 벡 교수는 이를 ‘세대 분열’이라 지칭하며 “각 세대의 서로 다른 지평과 세계관이 충돌한 것”이라 평했다. 

  이러한 세대분열이 ‘탈바꿈’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범세계적인, ‘세계시민화’ 된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벡 교수는 “세계시민화 된 사회에서 세대 간의 충돌은 제도에서부터 개인의 삶까지 모든 차원에서 발생한다”며 “분열된 세대를 유지하며 탈바꿈을 이뤄내는 것이 세계적 위험사회에서 필요한 성찰 및 반성”이라고 말했다

  울리히 벡 교수는 위험사회에 대한 한국의 20대의 인식이 높아 세대적 탈바꿈을 이뤄낼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벡 교수는 “각 대륙별로 국가를 선별해 위험사회에 대한 20대의 인식도를 알아보는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며 “그 중 아시아의 20대가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대해 가장 높은 인식 수준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한국 20대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자주 보는 등 정보를 많이 접한다”며 “최근 많은 뉴스가 세계적 문제와 관련이 있으므로 이를 접하는 젊은 층이 세계적 이슈에 대한 우려를 갖게 돼 결국에는 탈바꿈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울리히 벡 교수는 세월호 사고를 언급하며 현 세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벡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위험사회 이론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며 “사건 발생 시 무조건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과거의 정치와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될 때마다 국민은 분노와 깨달음의 과정을 반복한다”며 “이 모든 과정이 모여 탈바꿈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적 위험과 해방적 부작용
  울리히 벡 교수는 “기후변화 또는 금융 위기와 같은 전 세계적인 위험은 21세기에 대한 새로운 방향 또는 새로운 나침반을 우리에게 제공했다”며 “지금까지 부작용으로 치부됐던 것에 중요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기후 변화는 사고방식, 생활방식 및 소비자의 소비 습관, 법률, 경제, 과학 및 정치의 개혁과 같다. 벡 교수는 “사람들은 기후 변화의 문제라고 하면 기후변화의 원인은 선진국에 있는데 그에 대한 피해를 후진국이 받는다는 기후 정의(justice) 문제를 꼽는다”며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후 변화가 이 시간에도 우리의 존재와 전 세계의 정치 행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후변화는 사회 구성원 자신을 보호하고 발전시킬 다양한 정치활동에 참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이것이 기후변화의 ‘해방적 파국(emancipatory catastrophe)’으로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울리히 벡 교수는 최근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거래를 급격히 증가시키고 있는 중국의 사례를 통해, 기후변화라는 위험요소가 해방적 파국을 이끄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에너지 자원 거래 증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환경을 이용하는 점을 이유로 든다”며 “이들과 중국 정부 간의 갈등은 결국 이윤창출과 친환경 에너지자원 거래의 증가 사이에서 최선을 찾아가게 만들며 이것이 곧 근대화의 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카트리나의 카타르시스

  울리히 벡 교수는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재해가 예상치 못한 긍정적 부작용을 만들어 해방적 파국에 이르게 하는 ‘사회적 카타르시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해악의 부작용으로 생산된 바람직한 요소들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규범적 지평을 등장시킨다는 것이다. 벡 교수는 ‘인류학적 충격’은 사람들이 끔찍한 사건에 처해있다고 느낄 때, 그러한 사건에 대한 영구적으로 기억이 남을 때, 그 기억으로 인해 사람들의 미래가 바뀔 때 발생한다”며 “‘사회적 카타르시스’는 이런 인류학적 충격에 있어 문화적 작업, 의미 작업, 변혁 작업에 성공적으로 참여하는 지식인 집단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벡 교수는 사회적 카타르시스가 발생한 예로 2005년 미국 남부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제시했다. 벡 교수는 “카트리나는 전미대륙에 큰 인명피해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미국은 경제 침체가 지속돼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등 세계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며 “하지만 카트리나 이전에 환경 정의의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자연재해는 ‘결국 자연재해 앞에 인종차별은 없다’는 맥락에서 미국 사회의 인종 불평등과 연결됐고, 이는 곧 '사회적 카타르시스'를 일으켜 환경 정의의 규범적 지평을 변화시켰다”고 설명했다.

  개인적 변화에 정치 변혁이 수반돼야

  울리히 벡 교수는 진정한 사회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정치 변혁에 앞서 개인적 변화가 우선시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벡 교수는 “개개인의 변화가 빠른 시일 내에 일어나긴 어렵기 때문에 정치적 변화가 먼저 진행되는 것일 뿐,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들의 변화”라고 말했다.
 
  벡 교수는 앞서 언급한 카트리나 사례에서도 개인들의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카트리나가 야기한 사회적 변화 요구는 국가 정책과 법률 등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면서도 “이러한 과정은 일부일 뿐, 대재앙의 인류학적 충격이 진정 나아가야 할 방향은 시민들이 세계시민으로서 거듭나는 개인적 변화를 스스로 실현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벡 교수는 앞서 언급한 ‘기후 정의’를 다시 제시하며, 기후 정의의 논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를 포함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세대는 스스로의 개인적 변화를 실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벡 교수는 “이 세대는 의사 결정에 있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음에도, 그들 세대 이전에 발생한 사태가 야기하는 고통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다”며 “이런 상황에도 그들에게는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울리히 벡 교수는 이와 같은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적, 개인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위험사회를 오직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비관주의적 관점은 늘 존재한다”며 “하지만 정치적 조치는 세계적인 위험을 다양성의 개념으로 방관하던 기존의 관점을 뒤집기 위해 선행돼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치적 조치를 취한 후에는 긴 시간을 두고 개개인의 변화에 노력해야한다”며 “어떤 위험에 대해 각 개인이 어떻게 인식해야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내리고 행동한다면 결국 제도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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