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공군본부가 일반사망 판정을 뒤집고 故 김지훈 일병(정경대 경제12)의 순직을 의결했다. 김 일병의 순직 의결에는 군을 상대로 한 유가족의 기나긴 사투가 있었다. “현재 의문사 처리가 된 병사가 순직처리 되기 위해선 그의 유가족이 일반사망이 아님을 입증해야 합니다. 군은 절대 불가능한 일을 유가족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어요.”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다른 유가족들에게 아들의 순직처리가 선례가 되면 좋겠다는 故 김지훈 일병의 아버지 김경준(남·53·두원공과대 교수) 씨에게 아들의 순직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날에 대해 들었다.

  지켜지지 않은 순직 약속
  2013년 7월 1일, 故 김지훈 일병의 유가족에게 한 통의 연락이 왔다. 2월 달 공군에 입대해 제 15비행단에서 복무하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공군본부의 연락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미약하나마 위안이 됐던 건 헌병대 소속 수사관과 제 15비행단 인사처장이 김 일병의 순직(공상)처리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말이었다. 당시 사건 경위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었지만 유가족은 헌병대의 수사를 믿고 공군본부의 결정을 기다렸다.

  하지만 사건 발생 7개월이 지난 1월 29일, 공군은 유가족에게 김 일병이 순직이 아닌 일반사망 처리가 됐음을 통보했다. 1월 29일 유가족 앞으로 도착한 서류에는 일반사망 시 받는 위로금에 대한 내용과 정보공개, 행정소송, (순직)재심의절차 등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공군본부는 ‘구타·폭력 또는 가혹행위는 없었으며 입대 이전부터 있었던 병리적인 성격이 자살의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일반사망 판정의 이유로 밝혔다. “당시 공군은 순직을 약속하며 수사를 위해 언론과의 접촉도 자제해달라고 했어요. 언론 보도가 수사의 초점을 흐릴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해 언론사의 취재요청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일반사망 결정이라뇨. 공군은 순직처리를 해주겠다는 미명하에 유가족의 입을 막았어요.”

  공군본부는 일반사망 결정 후에도 유가족에게 사건 경위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다. 공군본부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방부에 김 일병 사건에 대한 수사 자료를 요구했다. 4월 9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공개된 자료에는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 조서가 담겨있었고 비로소 유가족들은 김 일병이 사망하기까지의 사건들을 알 수 있었다. “진술 조서를 받고 한 달 동안 수천 번을 읽었어요. 하나라도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처음엔 진술 조서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어요. ‘이 진술은 뭘 뜻하지, 이 말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며 읽고 또 읽으니 차차 이상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미흡했던 수사
   수사 자료에 들어있는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서와 심리 부검서등을 보며 아버지는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먼저 수사가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22일 얼차려에 대한 진술은 오직 H중위의 진술 하나 뿐이었으며, 故 김지훈 일병의 해리현상을 심화시켰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3일에 대한 진술은 아예 빠져있었다. “K상병이 휴가를 나간 23, 24, 25일에는 사건의 핵심 인물인 H중위와 지훈이 둘 만이 부관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보세요, 지훈이가 해리현상을 호소하고 병원을 예약한 게 26일이에요. 이 3일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26일에 병원을 예약할 정도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 공군본부에 수도 없이 얘기했지만 아무런 답도 없어요.”

  그는 일반사망 판정근거로 채택된 심리 부검서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 당시 자살 원인에 대해 공군본부는 5개 기관(국군 수도병원, 국군 대전병원, 공군 항공우주의료원, 자살예방전문심리사, 일산병원)의 심리 부검을 참고했다. 이 중 네 곳은 군 입대 이 전의 정신 병력을 추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군본부는 유일하게 입대 이전의 정신 병력을 자살의 원인으로 밝힌 공군 부설기관 항공우주의료원의 소견을 일반사망 판정의 근거로 제시했다. 항공우주의료원의 소견서에는 ‘김 일병이 입대이전부터 심한 자기비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자살에 대한 깊은 고민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긴 스트레스가 이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구타·폭력 또는 가혹행위가 없었다는 공군의 판정근거와 달리 진술 조서에는 부관 H중위가 김 일병에게 지속적으로 가혹행위를 가한 사실도 담겨있었다. “H중위는 1달 동안 지훈이를 매일 질책했어요. 6월 30일 단체 얼차례 시 공개적으로 ‘너희가 얼차려 받는 이유는 김 일병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하기도 했어요. 가혹행위는 ‘육체 외에도 정신적 고통이나 인격적 모독을 주는 일체의 행위’를 뜻합니다. H중위의 행위는 분명한 가혹행위에요. 심지어 H중위는 얼차례를 줄 권한이 없었고 규정시간도 위반했어요.”

  언론보도 후 시작된 재수사
  공군본부의 일반사망 판정으로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H중위는 제 13비행단의 35전대로 보직 이동했고 단장은 이미 소장으로 진급해 공군본부 감찰실장이 됐다. 국방부 훈령 제1661호 제 281조 ‘사고관련 지휘, 감독 책임과 개인책임을 명확히 구분하여 개인적 사유로 인한 사고로 지휘, 감독자의 억울한 문책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규정에 의거해 일반사망 판정 후 H중위와 단장은 문책을 받지 않았다. “지훈이가 죽고 15비행단에 있는 관련자 중 처벌받은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지훈이의 죽음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 자신들의 권력을 보호한 겁니다.”

  이에 유가족은 군 인권센터와 변호사를 찾아갔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국방부, 공군본부, 국가인권위에도 진정서를 제출해 사건 관련자들의 처벌을 위한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국방부는 유가족에게 진정서 철회를 유도했다. 이때부터 유가족들은 언론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본교에 5월 21일 가해자와 공군본부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은 것을 시작으로 23일 중앙일보, 26일 경향신문과 SBS, CBS 등에서 이 사건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사건이 세상이 알려지자 27일, 공군참모총장의 사건 재수사 지시가 내려졌다.

  한 시간 반 만에 결정된 순직
  처벌을 위한 재수사 절차와는 별도로, 일반사망에서 순직처리가 되기 위해선 전공사망 재심의를 거쳐야했다. 재심의는 더 어려웠다. 재심의가 이뤄지기 위해선 국방부 조사본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군본부에 재심의를 권고해야 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두 기관에 진정서를 보내 사건을 재조사하고 재심의를 권고할 것을 요청했다. “재심의 권고를 요청하자 국방부 조사본부는 권고를 위한 사건 재조사 기간이 1년 6개월 정도 소요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는 내부 규정을 들며 권고할 수 없다고 했어요.”
 
  이후 임 병장 사건과 윤 일병 사건이 발생하면서 故 김지훈 일병의 사안이 언론의 조명을 다시 받았다. SBS, MBC 등의 언론사가 취재를 시작했고, 경향신문은 김 일병의 1주기 기사를 실었다. 유가족들은 본교 정경대 신문 ‘HOANS’를 포함한 여러 언론보도와 사건 정리자료 등을 언론사와 국방위원회에 보냈다. 이어 유가족이 보낸 자료를 보고 김성찬 국방위원회 간사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김 의원과 면담을 갖고, 동아일보와 채널A에서 인터뷰를 하자 처음으로 공군본부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8월 12일 재심의가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국회의원과 접촉하자 권고 절차도 없이 재심의가 결정됐다. 진정서 접수 100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8월 12일 재심의 당일 날, 유가족에게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1시간 30여 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아버지는 그간 정리한 자료와 언론보도 등을 토대로 일반사망 판정의 문제점과 사건 관련자에 대한 미흡한 수사 등을 발표했다. 이틀 후 8월 14일 공군본부 인사부는 유가족에게 재심의 결과 순직 의결을 통보했고 이에 대한 공식기자회견을 가졌다. “한 시간 반 만에 순직이 결정됐어요. 한 시간 반 만에. 이걸 5개월, 6개월씩이나 끈 거예요.”

   아직까지도 가해자 처벌에 관해 공군본부는 사건 당시 가혹행위는 없었으며 관계자들 모두 혐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28일 공군본부 법무실 검찰부는 유가족에게 재수사 결과를 설명하며 H중위를 기소유예처분하고 단장에게 서면경고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유가족은 “순직처리 관련규정으로 ‘가혹행위 등이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됐을 때’라고 명시해 놓고 이제 와서 가해자 없는 순직도 있다는 말인가”라며 반발했다. 8월 29일, 유가족은 H중위의 기소유예처분 이유서와 단장의 서면경고 이유서, 수사내용에 관한 모든 기록물 공개를 요청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