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가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제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54명뿐이다. 이에 점점 사라져가는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시위, 집회 등 사건 규명과 사과를 촉구하는 직접적인 방식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젠 간접적이면서도 많은 이들에게 문제를 알리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유도하는 문화기획이 늘어난 추세다.

  ‘기억’하려는 문화적 움직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적 활동은 모두 ‘기억’이란 키워드로 통한다.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국내 최초 뮤지컬인 <꽃신>은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제작을 맡은 이종서 <꽃신> 대표는 “극의 끝자락에 나오는 순옥의 대사 ‘우리를 오랫동안 기억해 주이소.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길거 아니요’가 바로 뮤지컬 <꽃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밝혔다.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을 응용한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인 ‘희움’도 일상에서의 소비를 통해 그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호가주 블루밍 프로젝트 매니저는 “모두 함께 참여해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희움’의 뜻을 반영하듯, 의식팔찌에 새겨진 문구 ‘Blooming their hopes with you(할머니들의 못다핀 희망을 당신과 함께 꽃피웁니다)’는 ‘나’의 참여가 할머니들의 희망, 나아가 모두 희망을 꽃피울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일상에서 기억하고, 해결하자’는 희움의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브랜드 설립 이후 희움은 약 20억 원의 수익을 거뒀고, 8월 30일 착공한 대구 ‘위안부 역사관’에 수익금의 상당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대학생연합 ‘평화나비 네트워크’ 또한 ‘기억’, ‘행동’, ‘함께’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활동한다. 스스로 고민하고 되새기고,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찾아 행동하며, 다른 이들의 마음을 한 자리에 모으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김샘 평화나비 대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할머니들의 활동, 나아가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연대의 활동을 기억하는 것이 ‘행동하는 기억’”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화되는 문화기획은 세월이 흘러도 할머니들의 삶과 아픔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연극을 통한 아픔의 공유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고통 받았던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연극은 생생한 상황재현과 표현으로 시대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인 첫 영어 연극 <컴포트>, 한일합작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재능기부로 이뤄진 창작 뮤지컬 <꽃신> 등 올해만 해도 10여 개의 ‘위안부’ 연극이 전국

▲ 사진제공 | (주)뮤지컬 '꽃신', 희움
각지 무대에 올랐다.
 
  이중 <꽃신>은 2014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창작 뮤지컬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뮤지컬 <꽃신>은 일제강점기 말 결혼을 약속한 두 남녀주인공이 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가며 겪는 이야기다.
<꽃신>은 뜻을 함께한 55명의 배우와 30여 명의 스텝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해 완성됐다. ‘위안부’ 피해자 ‘혜순’ 역할을 맡은 배우 김현숙 씨는 “처음에는 A4 두 장도 안 되는 대사로 할머니의 인생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공연을 하면서 온몸으로 느껴지는 슬픔에 가슴이 먹먹했다”며 “모두 모여 할머니의 슬픔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로서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말했다. 
8월 17일에 서울 공연을 마친 <꽃신>은 4일부터 6일까지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다시 시작한다. 이후에는 대전, 포항 등에서도 무대를 준비할 예정이다. 이종서 대표는 “내년에는 전국투어를 준비하고 있고, 꽃신이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세계투어까지 이어진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품소비를 통한 기억
  가방, 파우치, 카드지갑까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제품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이 수 놓였다. ‘희움’은 대학연합경영학회 인액터스(Enactus)의 블루밍(Blooming) 프로젝트로 2012년 2월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 사진제공 | (주)뮤지컬 '꽃신', 희움
2010년 세상을 떠난 故김순악, 故심달연 할머니가 희움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 디자인의 원작자다. 할머니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잊기 위해 수년간 원예치료를 받았다. 꽃을 하나하나 분리하고 말려가며 만든 작품에 할머니들은 ‘푸른꿈’, ‘자유’, ‘비상’, ‘바램’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 자유를 꿈꾸고, 멀리 날아가기를 바랐던 할머니들의 소원이 제품에 새겨진 것이다.
 
  소비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제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위안부’ 문제를 접하고 해결할 수 있다. 호가주 블루밍 프로젝트 매니저는 “제품군을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물건으로 선정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쉽고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주제로서 접근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희움의 수익금 전액은 할머니들의 복지비, 운영비, 대구 ‘위안부’ 역사관 건립비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쓰인다. 현재 희움은 의식팔찌, 클러치, 파우치, 펜케이스, 카드지갑, 에코백 22종을 판매하고 있으며, 앞으로 제품군을 확대해갈 예정이다. 

   ‘서포터즈’를 통한 적극적 홍보
  연극과 희움이 ‘위안부’ 문제에 ‘보여주기(showing)’식이라면 ‘서포터즈’는 ‘말하기(telling)’식의 접근 방법이다. ‘위안부’ 서포터즈는 대학생을 비롯한 일반인 홍보대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앞장서는 활동을 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연합 ‘평화나비 네트워크’는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준비한다. ‘평화나비 네트워크’는 2013년 제1회 ‘평화나비 콘서트’를 마친 후 당시 활동했던 서포터즈들이
▲ 사진제공 | 평화나비 서포터즈
각 대학에 동아리를 만들어 2014년 초 연합 네트워크를 발족하며 만들어졌다. 현재 전국 대학생 100여 명이 정회원으로 활동하는 평화나비는 거리캠페인, 플래시몹, 콘서트, 문화제 등의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콘서트나 문화제와 같은 행사 기획 시엔 수백 명의 서포터즈가 추가로 모인다. 
  
  김샘 평화나비 대표는 “평화나비의 궁극적인 목표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대학생이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대학문화로서 자리 잡도록 다가가기 쉬운 형식의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랫동안 끝나지 않는 할머니들의 싸움을 지지하기 위한 대학생만의 프로젝트를 만들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것, 대학가 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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