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우리 민족 5000년 역사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인류 문화의 흐름과 함께했다. 시간을 표시하는 법, 지도 제작, 텔레비전, 휴대폰, 컴퓨터까지 인류 역사에는 늘 수학이 함께해왔다. 인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인간이지만 인간을 지배하는 사고는 수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박형주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은 “수학은 사고의 부딪힘을 통해 인류에 진보를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수학은 우리 생활의 어디에서 응용되고 있을까. 브리지스 컨퍼런스의 대중강연회를 토대로 생활 속 수학을 재조명했다. 아래 제시된 사례는 상황을 가정해 수학적 원리에 초점을 맞춰 설명한 것이다.

 텀블러가 원통형인 이유
  #1. 개강 후 첫 휴일, 동기와 오랜만에 약속을 잡고 집을 나섰다.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형형색색의 텀블러들이 눈에 띈다. 겉으로 볼 땐 디자인도 색깔도 다 달랐는데 열어보니 모든 텀블러가 원기둥 모양이다.(사진 1)

  바로 효율성 때문이다. 원기둥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재료는 윗면과 아랫면이 있는 입체도형 중 가장 적지만, 담을 수 있는 액체의 양은 가장 많다. 예를 들어 밑면의 면적이 100㎠인 텀블러가 필요하다고 하자. 정사각형 모양의 텀블러를 만들기 위해선 둘레의 길이가 40cm, 정삼각형 모양의 둘레는 45.6cm가 필요하다. 하지만 같은 면적을 원기둥으로 만들게 되면 둘레의 길이가 약 35.4cm로 각진 모양들에 비해 짧다. 때문에 재료 사용 측면에서 더욱 효율적이다.
 
  이론적으로는 원기둥보다 재료가 더 적게 드는 모양이 있다. 바로 구(球)다. 하지만 구 모양의 용기는 각진 부분이 없어 보관이 힘들다. 때문에 차선책인 원기둥 모양의 용기가 텀블러로 많이 사용된다.
구글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2. 친구가 카페에 도착했다. 커피를 마시고 나가려 하는데, 막상 어디서 놀지 모르겠다. 동대문에 디자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검색결과
플라자가 새로 생겼다던데 거기를 가볼까? 구글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검색해보니 가는 방법에 약도까지 내가 원하던 정보들이 첫 페이지에 바로 제시된다.(사진 2)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만든 기술이 페이지랭크(PageRank)다. 이 기술은 ‘좋은 웹페이지는 많은 사람이 다른 웹사이트에서 하이퍼링크를 달았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페이지랭크는 웹페이지처럼 하이퍼링크 구조를 가지는 문서에 상대적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다. 가중치가 높은 페이지일수록 검색 시 상단에 제시된다. 수식으로 알아보자.

  “PR(A) = (1-d)/N + d (PR(T1)/C(T1) + … + PR(Tn)/C(Tn))”
  PR은 PageRank의 줄임말이다. PR(A)는 ‘A’라는 웹페이지의 페이지 랭크를 의미한다. T1, T2, … Tn은 A라는 페이지를 하이퍼링크 걸어 둔 다른 웹페이지들이다. C(T1)는 T1이라는 페이지가 가지고 있는 하이퍼링크의 총 수를 의미한다. d는 감쇠율(damping factor)로 ‘마구잡이로 웹서핑을 하는 어떤 사람이 그 페이지에 만족하지 않아 다른 페이지로 가는 하이퍼링크를 클릭할 확률’을 뜻한다. 이는 반드시 0과 1 사이의 값에서 정해진다. 감쇠율이 1이면, 해당 페이지에 만족하지 못해 무한히 링크를 클릭한다는 뜻이다. 반면 0은 처음 방문한 페이지에 무조건 멈춘다는 뜻이다.

  다른 변수를 배제하고 하이퍼링크의 수로만 페이지 랭크를 나타내보자. 그렇다면 PR을 제외한 나머지는 없애야 하기 때문에 d를 1로 가정한다. A의 페이지 랭크는 그 페이지를 링크 걸어 놓은 T1, T2, T3…Tn이 가진 페이지 랭크를 정규화(Normalize) 시킨 값의 합이다. 다시 말해, 일정한 규칙에 따라 변형하여 더하는 것이다. 위 수식에선 C(Tn)이 C(T1) + … + PR(Tn)을 나누는 것이 정규화라 할 수 있다. 때문에 T1 자체의 페이지 랭크가 높아도, C(T1)값이 높으면 그 페이지가 A페이지의 페이지 랭크에 기여하는 비중은 낮아진다. 하지만 페이지 A의 페이지 랭크는 더 많은 사람이 클릭해서 들어갈수록 더 높아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수식에서 모든 웹페이지의 페이지랭크 값을 합산한 값은 항상 1이 된다. 모든 페이지를 페이지랭크 등수에 따라 미리 정렬하면 검색어를 입력하는 순간에 웹페이지는 그 검색어가 포함된 페이지들을 순위별로 나열해 보여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웹페이지는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우선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알고리즘은 구글의 창립자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의 새로운 검색 엔진에 대한 연구 기획 중 일부다. 페이지와 브린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구글 사를 설립했다.
기하학은 곡선도 세웠다

  #3. 도착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평소에 보던 건물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곡선이 주를 이루는 외관과, 아래보다 넓은 위층이라니! 마치 액체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이런 건물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걸까?(사진 3)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모습

  이는 비유클리드 기하학 덕분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유클리드 공간이 아닌 공간에서 다루는 모든 기하학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유클리드 공간은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생각했던 거리, 길이, 각도를 임의 차원의 공간으로 확장한 것으로, 직각 좌표계만 사용할 수 있었다.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 그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뿐이다”라는 유클리드의 말 때문이다. 유클리드는 평행선은 아무리 연장시켜도 서로 만나지 않는다고 가정했다.

  그런데 19세기에 수학자 야노시 보여이(Jnos Bolyai)와 니콜라이 로바체프스키(Nikolay Lobachevsky)가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는 직선은 무한히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따르면 평면상의 두 직선은 모두 만난다. 이후 리만은 무한한 구면을 2차원으로 설정할 수 있다고 주장해 리만기하학을 만들었다. 로바체프스키는 4차원을 2차원으로 표시하는 기하학을 만들어 ‘로바체프스키의 공간’이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속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설명한 이론을 통해 휘어진 공간도 2차원으로 표시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건축 도면에 응용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같은 곡선 건물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원근법은 회화기법이 아니다
  #4. 친구와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다 <최후의 만찬 전시회> 포스터를 보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안으로
두치오의 최후의 만찬
들어갔다. 전시회에는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각기 다른 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최후의 만찬’이 전시돼 있었다. 내가 알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말고도 최후의 만찬이 또 있었다니! 같은 주제를 다뤘지만 표현기법이 사뭇 다르다.

  우선 잘 알려진 15세기 다빈치의 작품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벽면을 따라 연장선을 그었을 때 선과 선이 예수의 오른쪽 눈 주변에서 만난다. 이번엔 천장을 따라 눈대중으로 연장선을 그었다. 이번에도 선은 예수의 얼굴 위에서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그림의 중심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예수가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반면, 13세기에 두치오(Duccio di Buoninsegna)가 그린 그림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붕은 평행하게 그렸지만 테이블은 비스듬해 물건들이 붕 떠있는 듯 쏟아질 것 같다.(사진 4)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두치오의 그림이 어색해 보이는 건 13세기 당시, 원근법이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근법은 3차원의 물체가 위치하는 공간과의 관계를 2차원적 평면에 묘사하는 기법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원근법을 회화기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원근법의 이론적 바탕에는 사영기하학이 깔려있다.

  사영이란 주로 불투명한 물체에 의해 투시된 그림자를 말한다. 그리고 사영기하학은 기하도형과 이를 사영한 상(像) 또는 사상(寫像)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분야다. 프랑스의 공학자 장 빅토르 퐁슬레(Jean Victor Poncelet)가 이 이론체계를 구축했다. 사영기하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각도, 길이, 형상의 뒤틀림에도 상이 보존되는 물체의 수학적 성질을 강조한다.

  사영기하학에서는 기존 기하학이 다뤘던 공간에 ‘무한원점’이라는 새로운 점을 추가했다. 무한원점은 서로 평행한 직선들이 만나는 점이다. 이런 무한원점이 그림 속에 나타나는 것이 ‘소실점’이다. 공간의 입체감은 소실점의 존재를 통해 파악된다. 두치오의 그림이 어색한 것은 아직까지 사영기하학이 구현되지 않았던 시대의 작품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실제로 사영기하학은 13세기 말, 데잘그(Girard Desargues)에 의해 처음으로 조직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동그란 바퀴 안엔 세모가 있다
  #5.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제대로 즐겼다.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 다 됐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때마침 버스가 도착한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녔는데 버스에 앉으니 정말 편안하다. 아, 바퀴가 없었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바퀴는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물건 중 하나로 손꼽힌다. 실생활에 사용되는 바퀴가 원 모양인 이유는 효율적인 움직임과 안정성 때문이다. 원모양의 바퀴는 바퀴의 중심이 위아래로 움직여 직선모양을 그린다.(사진 5) 이렇게 되면 각이 있는 바퀴보다 힘이 덜 들어 효율적이다. 바퀴는 외부의 하중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이어야 한다.

  바퀴의 안정성은 바퀴살에서 나온다. 바퀴살은 삼각형이 겹쳐진 모습을 띈다.(사진 6) 바퀴가 바퀴살 없이 원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원 위의 한 점에서 중심방향으로 힘을 가했을 때 전체하중은 지름 반대편 대응점에 모인다. 이렇게 되면 바퀴가 찌그러질 수 있어 위험하다. 사각형은 어떨까. 사각형은 한 꼭짓점에서 힘을 받으면 그 점이 마주보는 꼭짓점으로 힘이 향한다. 하지만 삼각형은 하중이 세 꼭짓점으로 골고루 분배된다. 바퀴살이 삼각형이 겹쳐진 모습을 가진 데엔 이런 원리가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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